[리포트+] 44억 쓴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교육부 사과는 없었다

김도균 기자 입력 2017. 6. 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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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가 지난달 31일 공식 폐기됐습니다. 2014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를 개발하라"고 지시한 이후 3년 3개월 만의 일입니다. 지난달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했습니다.

교육부는 지시 3주 만에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국·검정 혼용'에서 '검정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개정 고시를 관보(官報)에 게재해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정교과서 실무 부서인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은 해체됐고,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홍보하기 위해 개설했던 '올바른 역사교과서 홈페이지'도 폐쇄됐습니다. 추진 과정에서부터 숱한 논란을 겪었던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올바른 역사의식 길러주자"던 박근혜 전 대통령

지난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 교육을 통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길러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많은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 있는 내용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당시 검정 역사교과서들이 '좌편향'돼있다는 주장이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제기됐습니다.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세력은 "적화통일 의도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부 측도 이 같은 움직임에 가세했습니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에 앞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습니다. 황 전 총리는 "일부 검정 교과서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비판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며 국정 교과서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 '올바른 역사 교과서' 밀어붙인 교육부

대통령과 국무총리, 여당의 공세에 교육부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정 교과서를 '올바른 역사 교과서'로 명명하고 국정화를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의 여파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내용을 공개한 뒤 한 달 만에 '국정교과서 단일'에서 '국정·검정 혼용' 체제로 변경했습니다.

교육부는 올 초까지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할 연구학교를 모집하는 등 국정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학교에서 국정 교과서를 보조교재로 사용할 경우, 무상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방침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 국정 역사교과서에 낭비된 예산만 44억 원

교육부의 예비비 사용 신청서(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국정 역사교과서 개발을 위해 교육부가 신청한 예산은 총 43억 8,780만 원에 달합니다. 홍보비에 25억 원, 교과서개발비 17억 1천만 원, 일반수용비 6,900만 원, 연구개발비 5천만 원, 자산취득비 3,700만 원, 여비 1,300만 원, 업무추진비 880만 원 등이 쓰였습니다.

항목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국정 역사교과서 사업에 들어간 총예산의 절반 이상인 25억 원이 홍보비로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개발비로 사용된 17억 원과 연구개발비 5천만 원을 합친 것보다 많은 돈이 국정 교과서 홍보에 사용된 겁니다.

■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국정 역사교과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지시를 내리자, 교육부는 곧바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국정 교과서는 폐지됐지만, 교육계에서는 정책 방향 수정 이전에 교육부 차원의 사과나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 지 일주일 만에 임명된 이영 교육부 차관이 국정 교과서가 폐지된 지난달 31일 퇴임했습니다. 교육부의 최종 결재권자 중 한 명이었던 이 전 차관은 이날 이임식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전 차관의 이임사는 성과만 나열한 '자화자찬식'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국정화를 주장하던 이들이 모두 입을 닫은 상황에서 44억 원이라는 혈세를 낭비하고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국정 역사교과서의 책임 소재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김도균 기자getse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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