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빙하기 덕에 폭풍 성장한 대왕고래 "내 똥으로 온난화 막아줄게"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17. 6.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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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32m·몸무게 181t.. 지구 최대의 몸집 가진 이유 밝혀져
처음 몸길이는 5m 남짓
450만년 전 빙하기 시작.. 영양분 풍부한 민물, 바다로 흘러들어가
크릴·플랑크톤 등 급증.. 수염고래류 덩치 커져

공룡이 살던 때에는 모든 게 다 컸다. 초식공룡은 몸길이가 4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때 하늘을 날았던 잠자리는 지금의 독수리만 했고,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도 수십m 높이로 자랐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은 무엇일까. 수억년 전 어느 공룡이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정답은 지금 바다를 누비는 대왕고래(blue whale)이다. 몸길이는 32m로 공룡보다 작지만 몸무게는 최대 181t으로 추정돼 100t이 안 되는 공룡을 압도한다.

어떻게 대왕고래는 그처럼 거대한 몸집을 갖게 됐을까. 과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고래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영국 왕립학회보 B' 최신호에 "고래는 수천만년 동안 그리 크지 않은 몸집으로 있다가 450만년 전부터 갑자기 몸길이가 10m를 넘어서며 급격히 커졌다"고 밝혔다. 공룡 시대가 저물면서 세상이 모두 줄어들었지만 유독 고래만 거꾸로 몸집을 키운 셈이다.

◇450만년 전부터 고래 몸집 커져

고래의 기원은 5000만년 전 발굽을 가진 육지 동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동물이 다리가 지느러미로 변하면서 바다로 갔다. 대왕고래처럼 입에 있는 빳빳한 수염으로 바닷물을 걸러 먹이를 먹는 수염고래들은 3000만년 전부터 나타났다. 2010년 미국 시카고대의 그레이엄 슬레이터 교수는 이때부터 거대한 수염고래와 중간 크기 부리고래, 몸집이 작은 돌고래로 나뉘었다고 주장했다. 작은 먹이를 쫓다 보니 돌고래의 몸집은 점점 작아졌고 대왕고래 같은 수염고래는 바닷물을 걸러먹는 습성을 그대로 유지해 큰 덩치가 이어졌다는 주장이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니컬러스 피언슨 박사는 슬레이터 교수의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고래의 덩치는 점점 커진 것이지 처음부터 거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슬레이터 교수에게 함께 정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둘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보관된 멸종 고래류 63종의 화석과 현존 고래 13종의 골격을 조사했다. 앞서 피언슨 박사는 고래의 두개골 크기가 몸길이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분석 결과 고래는 수염고래류든 아니면 먹이를 뜯어먹는 이빨고래류든 3000만년 전에는 모두 몸길이가 5m를 넘지 않았다. 그러다가 450만년 전부터 갑자기 몸길이가 10m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30m가 넘는 사상 최대의 대왕고래가 바다를 누비고 있다.

◇빙하기 닥치면서 바다 먹이 급증

고래가 갑자기 덩치가 커진 시기는 빙하기가 시작된 때와 겹친다. 피언슨 박사는 "바다에 갑자기 먹이가 풍부해지면서 한 번에 많은 먹이를 삼킬 수 있는 덩치가 큰 고래가 유리해졌다"고 설명했다.

빙하기에 육지에 얼음이 쌓이면서 영양분이 풍부한 민물이 바다로 밀려났다. 빙하 때문에 바닷물이 심해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순환도 시작됐다. 이로 인해 바다 깊이 가라앉아 있던 영양분이 바다 표면으로 올라왔다. 바다가 기름지게 되면서 식물성 플랑크톤과 크릴 같은 작은 바다생물이 급증했다.

그렇다고 바다의 모든 곳에서 언제나 먹이가 폭증한 것은 아니다. 특정 시기, 지역에 한정됐다. 이 역시 덩치를 키우는 원인이 됐다. 덩치가 크면 먼 바다를 쉽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왕고래가 바닷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면 좀 미련해 보인다. 수염으로 크릴을 거른다고 하지만 많은 수가 다시 물과 함께 빠져나간다. 차라리 참치 같은 큰 물고기를 먹는 게 에너지 효율 면에서 낫지 않았을까. 실상은 정반대였다.

이번 연구에도 참여한 스탠퍼드대 제러미 골드보겐 교수는 2010년 대왕고래가 바닷물을 걸러 먹는 방식으로 투입 대비 90배 에너지를 얻는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대왕고래 265마리를 추적했다. 속도를 감안하면 한 번 크릴 떼를 덮칠 때 3200킬로줄의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렇게 해서 한입에 들어온 크릴은 투입 에너지보다 237배 많은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래가 잠수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까지 감안해도 투입 대비 90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왕고래 똥은 온난화 막을 구원투수

지구 최대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대왕고래도 인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1900년만 해도 전 세계 바다에 35만~40만마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1만5000여 마리로 급감했다. 1800년대 중반부터 고래기름이 마가린과 비누, 윤활유 원료로 인기를 끌면서 고래를 잡는 포경(捕鯨) 산업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대왕고래 한 마리에서는 2만L에 이르는 기름을 얻을 수 있다. 대왕고래는 1966년 고래잡이가 공식적으로 금지될 때까지 100년도 안 돼 30여 만마리가 포경선에 잡혀 기름으로 사라졌다.

과학자들은 대왕고래를 되살리는 것은 결국 지구를 구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고래 똥 때문이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돼 지구온난화를 불러왔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바다에서도 그런 생물이 있다. 바로 식물성 플랑크톤이다. 지상의 모든 식물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의 60%에 맞먹는 양을 흡수한다. 대왕고래의 똥이 이 식물성 플랑크톤을 번성하게 해 온난화를 늦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 버몬트대와 하버드대 공동 연구진은 2010년 고래가 영양물질을 바다 깊은 곳에서 표층으로 뽑아 올리는 펌프 역할을 한다고 발표했다. 바로 '고래 펌프' 이론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해수면에서 햇빛을 받아 자라고 동물성 플랑크톤의 먹이가 된다. 이어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서 새우, 어류로 먹이사슬이 이어진다. 대왕고래는 수심 100m에서 엄청난 양의 크릴을 먹고 해수면으로 올라와 배설을 한다. 고래 똥에 포함된 인과 철분은 해수면 식물성 플랑크톤에게 최상의 비료가 된다.

하지만 대왕고래가 급감하면서 식물성 플랑크톤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버몬트대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2015년 대왕고래 같은 대형 고래가 급감하면서 심해에서 해수면으로 이동하는 인의 양도 77%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전체 해양 생태계의 생산력도 약화된다. 이러다간 지구 역사상 최대의 동물이 우리 세대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대왕고래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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