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역습에 돌고래가 당했다

2017. 6. 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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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를 먹다가 질식사한 돌고래가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됐다.

나히드 스테판 서호주 머독대 교수(수의학) 등 국제연구팀이 서호주 번버리 해안에서 문어를 삼키다가 질식사한 남방큰돌고래의 부검 결과를 학술지 <해양포유류과학> 최근호에 보고했다.

케이트 스프로기스 머독대 교수 등 연구팀은 올해 초 <해양포유류과학> 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이 지역 남방큰돌고래들이 문어를 삼키기에 앞서 잡아서 흔들고 때려서 제압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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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주 퍼스 남쪽 사는 문어 먹는 남방큰돌고래들
제압한 뒤 먹는 '문화' 전승..이번엔 먹다가 질식사

[한겨레]

남방큰돌고래 ‘길리건'이 바닷가에서 죽은 채 발견된 모습. <해양포유류과학> 제공

문어를 먹다가 질식사한 돌고래가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됐다.

나히드 스테판 서호주 머독대 교수(수의학) 등 국제연구팀이 서호주 번버리 해안에서 문어를 삼키다가 질식사한 남방큰돌고래의 부검 결과를 학술지 <해양포유류과학> 최근호에 보고했다. 문어로 인한 돌고래나 바다사자의 죽음이 일반인에 의해 보고된 적이 있지만, 과학적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돌고래는 2015년 8월30일 서호주 번버리의 스트래트함 해변에서 문어를 문 채 발견됐다. 문어가 입에서 시작해 인두와 후두, 식도부에 걸쳐 있었다. 돌고래를 죽음에 이르게 한 문어는 ‘마오리문어'로 호주 연안에서 가장 크고, 지구에서는 세 번째로 큰 문어다. 무게는 최대 약 12㎏, 길이는 2m에 이르는 대형 동물이다. 연구팀은 돌고래가 삼킨 문어가 구강에서 분수공(돌고래 등 위에 달린 숨구멍)으로 이어지는 통로인 식도부, 인두부를 감싸 안으면서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남방큰돌고래 ‘길리건'의 부검에서 식도와 인두부에 걸쳐 있는 문어의 다리가 발견됐다. 즉 문어는 돌고래에 잡힌 뒤 저항하면서 분수공(숨구멍)으로 연결되는 부분에 달라붙어 질식사를 일으켰다. <해양포유류과학> 제공

‘질리건’Gilligan)이라는 이름의 돌고래는 과학자들이 잘 아는 개체였다. 우리나라 제주 지역에서 서식하는 종과 같은 남방큰돌고래다. 이 지역에서는 2000년대부터 남방큰돌고래 계군 조사가 시작돼 상당수 개체의 식별이 이뤄진 상태다. 20살 수컷의 질리건은 2007년 7월 처음 발견돼 주로 다른 두 마리의 수컷과 함께 다니곤 했다.

이 무리가 문어를 잡아먹는 사실도 앞서 연구된 바 있다. 케이트 스프로기스 머독대 교수 등 연구팀은 올해 초 <해양포유류과학>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이 지역 남방큰돌고래들이 문어를 삼키기에 앞서 잡아서 흔들고 때려서 제압한다고 밝혔다.

사실 사냥감을 잡은 동물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압하여 먹는 행동은 자연에서 낯설지 않다. 악어는 물론 범고래도 바다사자나 돌고래를 잡아 흔들고 공중에 던지는 경우도 있다.

2008년 3월 서호주 퍼스 남쪽 번버리 해안가에서 남방큰돌고래 어미와 새끼가 헤엄을 치고 있다. 문어를 ‘때려 잡아먹는’ 문화가 있는 돌고래 무리다. 일반적으로 어미가 새끼에게 행동을 학습시킨다. 번버리(호주)/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서호주 번버리의 남방큰돌고래가 마오리문어를 잡아먹는 모습. 일단 문어를 잡아 낚아챈 뒤 공중에 던지고 수면에 내려친다. 약 5분 동안 던지고 때리는 행동이 12번 관찰됐다고 스프로기스 교수는 밝혔다. <해양포유류과학> 제공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 재미있는 건 문어를 잡아먹는 기술이 자손에게 ‘학습’되어 전승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스프로기스 교수의 관찰 결과, 이런 방식으로 문어를 먹는 돌고래 26마리 중 20마리가 성체였다. 또한 이 성체 20마리 중 60%가 암컷이었고, 수컷은 20%밖에 안 됐다. (20%는 식별 불가)

이러한 사실은 돌고래들 사이에 문어를 때려 잡아먹는 ‘문화’가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일반적으로 동물행동학에서 문화는 특정 행동이 후손(수직적 전승)이나 동료(수평적 전파)로 학습되어 확산하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사냥기술 등은 수직적 전승이 이뤄지면서 새끼를 가르치는 암컷에서 자주 관찰된다. 또한 특정 행동을 받아들이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이 병존하는 것도 문화의 특색이다. 서호주 몽키미아 남방큰돌고래 무리에서는 해면류를 도구로 사용해 물고기를 잡아먹는 그룹이 관찰된 바 있다.

그런데 왜 질식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돌고래는 문어를 선호하는 걸까? 위험보다 보상이 크기 때문이라고 나히드 스테판 교수는 추정했다. 문어가 양질의 단백질 섭취원일뿐더러 추격 과정에서 빨리 지쳐서 늙은 돌고래들도 손쉽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양동물이 질식사하는 경우는 종종 관찰된다. 대부분은 너무 큰 물고기를 삼키거나 물고기의 뼈에 걸려 죽는 경우다. 해양쓰레기인 그물도 질식사를 일으킨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문어로 인한 질식사도 서호주 퍼스 주변의 록킹햄 섬의 생태관광업체 직원들이 돌고래와 바다사자에서 목격했다고 보고한 적이 있지만, 과학적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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