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 문무왕, ‘수중릉’ 지시한 이유는?

입력 2017.06.0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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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이었지만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룩한 신라. 천 년이 지났지만, 경주 곳곳에는 신라인들의 숨결이 살아있다. 역사 강사 최태성과 개그맨 이윤석이 경주를 방문해 신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신라 시대 리더들의 염원이 담긴 곳들을 찾아 나섰다.

문무왕, "죽은 뒤 바다의 용이 되겠다!"

삼국을 통일한 주인공은 신라였다. 그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릉은 감포 앞바다에 위치한 바위 무덤이다. 문무왕릉을 찾는 사람들은 무덤이 바다에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무덤의 정체가 바위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문무왕릉은 왜 바다에 있을까.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당나라와 전쟁을 통해 힘겹게 통일을 이뤄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본이 걱정된 문무왕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짐은 죽은 뒤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한다."

문무왕은 외세의 침입을 걱정하며 자신의 무덤을 바다 위에 장사 지낼 것을 지시했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바다에 묻히면서까지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 한 문무왕의 모습에서 온몸을 바쳐 위기를 극복하려는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은 대왕암에 직접 올라가 가운데 위치한 수중릉을 찾았다. 수중릉에서 볼 수 있는 신비한 풍경이 있다는데 어떤 광경일까.

21세기에 다시 만나는 황룡사 9층 목탑


경주에 들어서면 낮은 건물들 사이로 아파트 30층 높이(80m)의 건물 두 개가 보인다. 경주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건축물 높이를 제한하는 7~25m의 고도 제한을 두다 보니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 두 타워만큼은 고도 제한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지어졌다. 하나는 9층 탑의 음각 모양인 경주 타워, 또 하나는 실제 탑 모양을 한 중도 타워다.

두 건물 모두 신라 시대의 한 탑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바로, 1500여 년 전 신라의 발전을 염원하며 선덕여왕이 지은 황룡사 9층 목탑이다. 굳건히 신라를 지키던 목탑은 1238년 몽골의 침입 때 황룡사와 함께 불타 소실됐다.

황룡사 목탑은 사라졌지만 목탑 모양이 새겨진 경주 타워에서 선덕여왕이 세운 황룡사탑의 면모를 3D 입체 영상으로 체험해 본다. 또한, 80m에 달했던 황룡사의 면모와 전체 9층의 누각 각층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다.


경주하면 신라, 신라 하면 화랑!

신라 하면 떠오르는 존재 '화랑'. 삼국통일의 기반을 만든 김춘추와 김유신 역시 화랑이었다. 선덕여왕의 남자로 불패의 신화를 가진 김유신의 유적을 찾아 나선다.

전장에 나가던 김유신이 말을 멈추고 마셨다는 우물인 '재매정'에 얽힌 이야기와 왕릉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김유신의 무덤을 찾아 김유신의 비석에 물을 뿌리면 안 되는 이유도 들어본다.


경주 함월산은 화랑들이 심신수련을 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한 골굴사는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석굴사원이다.


골굴사에서 불교의 실천수행법이자 무술인 '선무도'를 배울 수 있다. 선무도는 신라 시대에 시작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며 국난 때마다 빛을 발했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이 선무도를 통해 나라를 지키기도 했다. 최태성과 이윤석은 화랑정신이 깃든 함월산에서 선무도를 직접 배워본다. 수련 도중 윤석이 "하산!"을 외친 까닭은 무엇일까.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기행 그곳' 경주 2부 '천 년의 염원' 편에서는 약소국으로 살아남아 통일을 이룩하고 그 이후에도 앞날의 대비를 잊지 않았던 신라인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경주'를 찾았다. 자세한 내용은 3일(토) 밤 8시 KBS 1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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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통일 문무왕, ‘수중릉’ 지시한 이유는?
    • 입력 2017-06-02 08:01:24
    문화
약소국이었지만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룩한 신라. 천 년이 지났지만, 경주 곳곳에는 신라인들의 숨결이 살아있다. 역사 강사 최태성과 개그맨 이윤석이 경주를 방문해 신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신라 시대 리더들의 염원이 담긴 곳들을 찾아 나섰다.

문무왕, "죽은 뒤 바다의 용이 되겠다!"

삼국을 통일한 주인공은 신라였다. 그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릉은 감포 앞바다에 위치한 바위 무덤이다. 문무왕릉을 찾는 사람들은 무덤이 바다에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무덤의 정체가 바위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문무왕릉은 왜 바다에 있을까.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당나라와 전쟁을 통해 힘겹게 통일을 이뤄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본이 걱정된 문무왕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짐은 죽은 뒤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한다."

문무왕은 외세의 침입을 걱정하며 자신의 무덤을 바다 위에 장사 지낼 것을 지시했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바다에 묻히면서까지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 한 문무왕의 모습에서 온몸을 바쳐 위기를 극복하려는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은 대왕암에 직접 올라가 가운데 위치한 수중릉을 찾았다. 수중릉에서 볼 수 있는 신비한 풍경이 있다는데 어떤 광경일까.

21세기에 다시 만나는 황룡사 9층 목탑


경주에 들어서면 낮은 건물들 사이로 아파트 30층 높이(80m)의 건물 두 개가 보인다. 경주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건축물 높이를 제한하는 7~25m의 고도 제한을 두다 보니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 두 타워만큼은 고도 제한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지어졌다. 하나는 9층 탑의 음각 모양인 경주 타워, 또 하나는 실제 탑 모양을 한 중도 타워다.

두 건물 모두 신라 시대의 한 탑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바로, 1500여 년 전 신라의 발전을 염원하며 선덕여왕이 지은 황룡사 9층 목탑이다. 굳건히 신라를 지키던 목탑은 1238년 몽골의 침입 때 황룡사와 함께 불타 소실됐다.

황룡사 목탑은 사라졌지만 목탑 모양이 새겨진 경주 타워에서 선덕여왕이 세운 황룡사탑의 면모를 3D 입체 영상으로 체험해 본다. 또한, 80m에 달했던 황룡사의 면모와 전체 9층의 누각 각층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다.


경주하면 신라, 신라 하면 화랑!

신라 하면 떠오르는 존재 '화랑'. 삼국통일의 기반을 만든 김춘추와 김유신 역시 화랑이었다. 선덕여왕의 남자로 불패의 신화를 가진 김유신의 유적을 찾아 나선다.

전장에 나가던 김유신이 말을 멈추고 마셨다는 우물인 '재매정'에 얽힌 이야기와 왕릉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김유신의 무덤을 찾아 김유신의 비석에 물을 뿌리면 안 되는 이유도 들어본다.


경주 함월산은 화랑들이 심신수련을 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한 골굴사는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석굴사원이다.


골굴사에서 불교의 실천수행법이자 무술인 '선무도'를 배울 수 있다. 선무도는 신라 시대에 시작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며 국난 때마다 빛을 발했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이 선무도를 통해 나라를 지키기도 했다. 최태성과 이윤석은 화랑정신이 깃든 함월산에서 선무도를 직접 배워본다. 수련 도중 윤석이 "하산!"을 외친 까닭은 무엇일까.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기행 그곳' 경주 2부 '천 년의 염원' 편에서는 약소국으로 살아남아 통일을 이룩하고 그 이후에도 앞날의 대비를 잊지 않았던 신라인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경주'를 찾았다. 자세한 내용은 3일(토) 밤 8시 KBS 1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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