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블록체인에 대한 불편한 진실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천정부지로 뛰자 국내 채굴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GPU인 라데온 480은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 기업은 애널리스트들을 내보내고 아예 한 층을 채굴농장으로 만들 정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성능 좋은 컴퓨터에 전기요금만 감당할 수 있으면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투자처를 찾아 떠돌던 목돈들이 채굴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겨울에는 채굴하면서 GPU의 열기로 회사의 난방비를 절감하겠다는 아이디어까지 속출한다. PC방의 노는 PC들도 속속 채굴에 투입되고 있다.
비트코인의 열기가 뜨겁자 블록체인 열기도 덩달아 뜨거워지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블록체인으로 못할 게 없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결코 만능이 아니며, 그것을 이용해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도 그리 많지 않다. 블록체인 논객인 기디언 그린스펀은 경량(lightweight)금융, 원조(provenance)추적, 기관 간 기록 보관, 다자 공유 등을 블록체인의 유망한 응용분야로 꼽았다.
블록체인을 사용해서 비용을 절감한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분산환경에 무임승차해서 빨대만 꽂을 요량이라면 비용이 저렴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결코 공짜 점심은 없다. 게다가 무결성을 검증하는 데 드는 노력은 중앙집중식에 비할 수 없이 비효율적이다. 중앙집중식은 즉시 확인해 주지만 분산환경에서는 다수가 합의에 도달해야 하므로 마냥 기다려야 한다.
거래량이 증가하면 거기에 비례해서 검증량이 늘어나고, 합의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블록의 모든 거래 내용을 다 검증해야 바른 검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원래 검증할 필요가 없던 것까지 검증해야 한다. 그래서 요약하면 비용이 더 들고 느리다.
신뢰할 수 없는 다자 환경에서 합의를 이루어 무결성을 확보하는 것이 블록체인의 출발지점이었다. 그래서 참여자들은 반드시 공유한 정보의 검증과 합의 과정에서 엄정히 자기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걸 소홀히 하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책임을 져야 할 일들이 생긴다.
블록체인 옹호론자들은 중앙집중식 시스템 하나가 고장이 나면 전체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논리를 편다. 그래서 분산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가 쓰고 있는 시스템 대부분은 중앙집중식이면서 분산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DNS 서버는 중앙집중식인데 미러 서버들이 분산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보안에서는 기밀성, 무결성, 가용성, 프라이버시 등 다양한 요소를 따진다. 블록체인은 안전하고 중앙집중식 시스템은 해킹에 취약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블록체인이 해결한 것은 무결성이 전부다. 블록체인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기밀성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부품 주문 리스트를 블록체인에 올리면 경쟁사들은 차기 삼성의 스마트폰 모델을 예측할 수 있다. 당연히 삼성전자는 정보공유를 거부할 것이다. 그래서 암호화와 난독화가 고려된 블록체인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 채택되면 투명성을 전면에 앞세웠던 블록체인의 존립기반이었던 축 하나를 잃게 된다.
프라이버시 보호도 중요한 과제이다. 금융정보는 3년까지 보관할 수 있고 목적을 달성한 개인정보는 즉시 삭제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블록체인에서는 비가역성을 이유로 지난날의 쓰라린 파산 사실 등을 삭제할 수 없다.
스마트 계약은 블록체인에 실행 가능한 코드를 포함시킬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최근 전문가가 작성한 스마트 계약에서조차 보안취약점이 허다하게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니 비전문가들이 적성한 코드들이 악성코드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에 쓰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블록체인을 다른 용도로 쓸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1. 정보의 분산과 공유가 집중과 독점보다 더 효율적인 응용분야에 적용해야 한다. 2. 개인정보나 기업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 3. 사용자 편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4. 시작단계에서부터 보안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5. 많은 참여자들이 쓰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확장성이 고려돼야 한다.
블록체인이 꼭 가야 할 길이라면 수많은 난관이 있더라도 그곳으로 길이 날 거다. 블록체인이 만능의 보검처럼 알려지고 있다.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지금은 혼돈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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