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가 말하는 '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의 탄생기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입력 2017. 6. 1. 11:59 수정 2017. 6. 1. 12: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컷 인터뷰] 'PD수첩' 이영백 PD
지난 5월 30일 방송된 MBC 'PD수첩-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 (사진='PD수첩' 캡처)
"성소수자에게 법적 인정과 인정받지 못하는 불인정은 삶의 질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요. 우리 아이는 지금 사느냐 죽느냐의 경계에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살려주세요."

지난달 30일, MBC 'PD수첩'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란 제목의 방송이 나갔다. 군대 내 동성애자 처벌, HIV/AIDS에 관한 오해와 진실, 퀴어 퍼레이드, '나중에' 논란, 성소수자 부모 모임, 차별금지법 등 이른바 주요 이슈를 빠짐없이 망라한 이 방송은 작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청률은 2.7%(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저조했으나 SNS 상에서의 화제성은 만만치 않았다. 방송 직후 실시간 트렌드에는 아주 오랜만에 '피디수첩'이라는 키워드가 올라 있었고, 현재 'PD수첩' 다시보기가 무료라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자발적인 '다시보기 운동'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정치권뿐 아니라 방송가에서도 '성소수자 이슈'가 '나중'인 건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다루게 된다 해도 기계적 중립이라는 명목 하에 이도저도 아닌 결론으로 맺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PD수첩'은 처음부터 분명한 방향 아래 제작됐다.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왜곡하지 않고 담겠다'는.

CBS노컷뉴스는 'PD수첩-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를 만든 이영백 PD에게 프로그램의 탄생기를 들어 보았다. 인터뷰는 전화통화로 이루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5월 30일 방송된 MBC 'PD수첩-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 (사진='PD수첩' 캡처)
▶ 그동안 징계무효소송, 부당전보소송 등을 거친 것으로 안다. 'PD수첩'으로 온 지 얼마나 됐나.

김재철 사장 시절 파업 끝나고 돌아와 프로그램 하다가 정직 3개월을 받았고, 그 뒤로 'PD수첩'으로 발령이 나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2014년에 또 다시 사업부서로, 그 스케이트장 관리하는 부서로 가게 됐다. 부당전보소송을 했고 얼마 전 대법에서 결론이 나, 4월 중순경 'PD수첩'으로 돌아오게 됐다.

(* 그는 2012년 8월 24일 '금요와이드'라는 프로그램에서 자동차 부품업체 발레오만도에서 일어난 노동인권 탄압 실태를 다룬 '파업이 끝나고 난 뒤'를 방송하려 했으나, 당시 김철진 교양제작국장의 반대로 방송은 나가지 못했다. 사측은 도리어 '지시 불이행'을 이유로 이영백 PD에게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렸으나, 법원은 이 징계가 무효하다고 판결했다. 2014년 10월에는 비제작부서로 발령나 제작현장을 떠나 있었고, 이 또한 지난 4월 대법원 판결로 '부당전보'라는 점이 판명났다.)

▶ 성소수자 이슈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프로그램 하는 입장에서는 사회적 약자, 그늘 이런 것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우리가 뭘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역량을 가졌거나 그런 위치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알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가랑비 노릇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게 저와 저희 동료들의 마음이었다.

지난 대선 기간에 대선 후보들이 되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했지 않나. 노인 복지, 학생들의 교육제도, 육아 문제, 청년실업 등 굉장히 많은 얘기가 있었고, 후보 구분 없이 대한민국 각계각층이 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유독 성소수자 분들만 명시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다. 당선이 유력했던 문재인 후보는 토론회 때 동성애 관련 언급에서 오해할 수 있을 만한 발언을 했다.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가슴 아파했다. 그때 생각했다. 만약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 꼭 (이 주제로) 해야겠다고.

국민 다수는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소수자들은 뭔가 좀 특이하다거나 비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아까도 말했듯 가랑비가 돼서 사람들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걸 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마침 육군에서는 동성애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사건도 있었고, 5월 17일에는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도 있었다. 윗선에서는 '뜬금없이 웬 동성애를 다루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런 이슈에 시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제목도 '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로 달았다.

지난 5월 30일 방송된 MBC 'PD수첩-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 (사진='PD수첩' 캡처)
▶ 성소수자 이슈는 아무래도 민감한 주제로 여겨진다. 제작 단계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저는 사회가 점점 나아질 거라는 전망이 있어서 당당할 수 있었다. 실제 (방송분을) 시사할 때 고위 책임자 분들이 '기계적 중립' 얘기를 해서 언쟁은 있었지만, 프로그램을 할 때는 제작진의 관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흔들리면 프로그램을 할 수도 없는 거고, 이런 사안에서 '중립'이라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기자님도 아시지 않나. (웃음) 평소에 관심있던 주제이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는 시작 전부터 명확하게 나와 있었다.

정치권이나 교계는 여전히 완고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는 공기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로그램 하면서 취재원들 얼굴을 다 가려야 될 줄 알았는데, 여러분의 목소리를 함께 내겠다고 간곡하게 말씀드리니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그럼 우리도 당당하게 (방송에) 나가겠다'고 해 주셨다. 그래서 더 고무적이었고, (방송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취재에 응해주신 분들이 방송이 제대로 나가서 다행이라는 말씀을 해 주시기도 했다.

▶ 트위터 등 SNS에서는 자발적으로 'PD수첩' 다시보기를 하는 분들이 있을 만큼 호평을 받았다. 반면 시청자 게시판에는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는 날선 반응도 많다.

(그런 반응은) 예상했다. 얼굴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육군 관계자도 나오고, 한기총 관계자도 나왔는데 사실 그분들한테 가서 따지거나 비난하려고 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부탁하고 읍소하러 간 것이다. 성소수자 분들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다르게 봐 주십사 하고 간 건데 어떻게 받아들이셨을지는 모르겠다. (프로그램에 대한 호평은) 감사하다.

▶ 'PD수첩'뿐 아니라 지상파 시사 다큐 프로그램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 하지만 이번 방송을 보고 지상파 시사 다큐의 영향력과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아까도 기계적 중립 얘기를 했지만, 어떤 일이든지 간에 명확한 관점과 태도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상파가 의제 설정을 모호하게 하니까 계속 더 영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었다. 핍박받는 소수가, 약자가 있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겠죠.

지난 5월 30일 방송된 MBC 'PD수첩-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 (사진='PD수첩' 캡처)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