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청와대

정의용 "사드 4기 들어왔나"… 한민구 "그런게 있었느냐"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31 17:52

수정 2017.05.31 22:11

사드 보고 누락 파문.. 28일 오찬서 사드관련 대화 韓장관 애매한 답변 논란.. 靑은 "의도적 누락" 규정 한민구.김관진에 조사 통보
軍의 반발심 작용했나
안보실장 대대로 軍이 독점.. 외교부 출신 임명에 반발.. 軍 인적쇄신 대한 불안감도
사드 발사대 배치 보고를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5월 31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사드 발사대 배치 보고를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5월 31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사드 4기 들어왔나"… 한민구 "그런게 있었느냐"
외교관 출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장관급)은 임명된 지 닷새째인 5월 28일 서울 시내 모 식당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정 실장은 새 정부 출범 후 단 한 차례도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가 국내에 추가로 반입됐다는 사실을 확인코자 말문을 열었다.

"사드 4기가 들어왔다면서요?"

한 장관의 답변은 "그런 게 있었습니까"였다.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에 대한 두 사람 간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군 출신이 아닌 외교관 출신 국가안보 사령탑이 '사드 4기'가 아니라 "사드 1개 포대 중 4개의 발사대가 추가로 더 반입된 거냐"고 정확하게 묻질 않아서 국방부 장관이 그 의미를 몰라 똑바로 대답을 못한 것인지, 알면서도 교묘히 불성실하게 대응한 것인지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해야 하나 상식 선에서 볼 때 국방부 장관이 지휘보고 체계상 윗선인 국가안보실장에게, 그것도 새 정부의 최대 외교안보 현안인 사드 문제에 이같이 대응한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靑, 최초 인지시점부터 닷새간 차근차근 반격 준비

청와대는 그간 국방부의 사드 보고 누락 문제에 차근차근 신중히 접근해왔다. 5월 26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이상철 1차장이 사드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감지한 때부터 정의용 실장 보고(27일), 정 실장의 한민구 장관 대면확인 시도(28일), 정 실장의 문 대통령 보고(29일), 문 대통령이 한 국방장관에게 직접 확인(30일)에 이르기까지 무려 닷새나 걸렸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5월 31일 이번 사태를 "사드 보고 의도적 누락"이라고 규정하고, 그간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간 나눴던 대화와 보고서를 작심한 듯 상세히 공개한 것은 일종의 괘씸죄와 함께 군통수권상 지휘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기선 제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청와대의 이런 초강수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드 문제를 외교적 지렛대로 삼아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에 따르면 정의용 실장이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처음 포착한 건 5월 27일이다. 전날 청와대 여민관에서 정 실장은 국방부 위승호 정책실장(1급)을 불러 국방 현안에 대해 약 1시간30분간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위 실장은 사드 추가 반입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국방부의 이런 태도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판단한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배석한 국방부 관료를 따로 불러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여부를 따져 물었고, 오후 7시30분에야 관련 사실을 인지했다는 게 청와대의 주장이다. 이 차장은 다음 날인 5월 27일 정 실장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으며, 정 실장이 이어 28일 한 국방장관과 오찬에서 직접 대면확인을 시도한 것이다.

한 장관의 '동문서답'식 부인은 29일 문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올라갔고, 문 대통령이 다음 날인 30일 한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드 4기가 추가로 반입됐느냐"고 물어 최종적으로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국방부는 구두보고뿐만 아니라 보고문건에서도 고의 누락한 흔적이 발견됐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국방부 실무자가 당초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이라는 문구가 명기돼 있었으나 (국방부 내에서) 수차례 강독 과정에서 문구가 삭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최종적으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는 '6기' '캠프명' '4기' '추가 배치' 등 문구 모두가 삭제됐고 두루뭉술하게 한국에 전개됐다는 취지로만 기재됐다"고 설명했다. 윤 수석은 "이 부분은 피조사자 모두 인정했다"고 말했다.

■軍의 보고누락…靑 김관진.한민구에 조사 통보

이번 사태는 박근혜정부에서 군 출신이 독식해온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외교부 출신 인사가 임명된 점, 국방부가 개혁대상으로 낙인 찍힌 점 등에 대한 군내 반발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정의용 실장 임명 전까지 무려 보름 가까이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에서 문 대통령을 수시로 접촉하고 보좌했던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이나 오찬까지 함께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역시 보고를 누락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청와대로 와서 조사받으라고 통보한 상태다.
청와대는 일단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사드 반입.배치 과정과 이번 보고 누락에 관련된 관계자를 조사하고 있으나, 사건이 커지면 검찰의 '돈봉투 만찬' 사건처럼 대규모 합동조사단을 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 사드 반입.배치 과정을 조사하던 중 리베이트 등의 비리 혐의가 포착될 경우 전방위적 방산비리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한 국방장관은 정 실장과의 오찬에서 사드 발사대 4기 반입에 관해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했다는 청와대 측 발표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관점이 차이 날 수 있고, 뉘앙스 차이라든지 이런 데서 그런 차이점이 있다고 얘기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ehcho@fnnews.com 조은효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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