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SNS, 증오 퍼뜨리는 도구" 온라인 혐오 발언 규제 논란

이상혁 2017. 5. 3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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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공격 차단" VS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 / 지구촌, 페북 등 업체 방관행태 비난 / 獨, 삭제 권고 불이행 땐 벌금 폭탄 / 英 의회, 삭제 비용 청구 방안 추진 / 시민단체 "정부 검열수단" 비난 속 / 혐오 표현 기준·근거 잇따라 공표

 

지난 5월1일 영국 내무부는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Hate Speech) 실태’와 관련해 의회가 초당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조사는 지난해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투표를 일주일 앞두고 발생한 조 콕스 노동당 의원 피살사건이 계기가 됐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토머스 메이어는 극우 온라인 잡지 ‘흰색 코뿔소 클럽’ 등을 구독하며 극우성향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의회는 혐오 표현을 담은 온라인 게시물이 제2의 메이어를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11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구글의 유튜브에선 미국의 백인우월주의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의 전 지도자 데이비드 듀크의 반유대주의 발언을 담은 영상 등이 검색됐고, 페이스북에서도 무슬림 증오를 조장하는 페이지가 발견됐다. 앰버 러드 내무장관은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악의를 전파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데 미디어가 사용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업체들의 실망스러운 행태를 비난했다.

메시지의 전파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한 확장성을 지닌 SNS가 일상이 되면서 온라인 혐오 표현의 규제 형태와 범위 등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 등 서유럽에서는 혐오 표현을 지우지 않는 SNS 업체들에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법안을 만드는 등 적극적인 규제방안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는 법적인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단으로 오용돼 검열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온라인 혐오 표현 규제 적극 나서는 국가들

뉴욕대 제러미 월드론 교수는 인종, 종교, 성, 민족, 성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구두, 문서 등을 통해 증오를 선동하는 것을 혐오 표현으로 정의한다. 혐오 표현은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가진 유럽 등에서 이미 처벌 대상이다. 유럽은 최근 혐오 표현이 SNS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보고 적극적인 규제책을 마련하고 있다.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지난 4월 불법적인 게시물이나 이용자가 신고한 혐오 표현물을 24시간 내 지우지 않을 경우 SNS 업체 등에 최대 5000만유로(625억여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네트워크 강제법’을 발의했다. 2015년 12월부터 페이스북 등을 대상으로 혐오 표현물을 지우라고 권고했지만, 올해 초 조사 결과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문제된 게시물을 각각 39%, 1%만 삭제한 것으로 조사되자 벌금 부과란 강수를 꺼내든 것이다. 독일 정부는 ‘자발적인 방법으로는 혐오 표현으로부터 독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영국 하원 역시 이달 SNS 업체들이 혐오 표현이나 무슬림 극단주의자, 신나치 그룹이 올린 게시물을 방치하고 있다며 벌금을 부과키로 했다. 독일과 같이 벌금을 직접 부과하는 건 아니지만 경찰이 혐오 게시물을 삭제하는 데 사용한 비용을 추산해 업체 측에 전가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이베트 쿠퍼 하원의원은 “페이스북 등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고,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모인 회사들이지만 테러리스트 모집, 아동 학대와 같은 게시물을 지우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서방문화를 혐오하며 조직원을 모집하는 게시물의 경우는 테러가 확산하는 원인이 된다는 측면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영국 테리사 메이 총리는 지난 26~27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규제되지 않은 극단주의자들의 온라인 게시물이 맨체스터에서 발생한 테러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회원국의 강력한 정책을 촉구했다.

◆“혐오 표현 규제 대 표현의 자유” 논쟁

하지만 온라인 내 혐오 표현을 강제로 규제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해치고, 더 나아가 정부 등 공공기관이 인터넷을 무분별하게 검열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독일에서는 SNS 업체에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된 직후 독일기자협회 등이 성명을 통해 비난했고, IT 기업들이 소속된 ‘글로벌 네트워크 이니셔티브’ 역시 이 법안이 민주주의 담론 형성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앨런 브라운스타인 UC 데이비스대 교수는 “캐나다, 호주와 거의 모든 서유럽 국가들은 혐오 표현을 금지하지만 미국은 아니다”며 “나쁜 표현은 좋은 표현으로 맞서야 한다. 사람들이 나쁜 표현에 대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며 이를 정부가 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FP는 “SNS는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이 될 것으로 생각됐지만 최근 수년 동안 오히려 증오와 고통을 퍼뜨리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악명을 얻게 됐다”며 “온라인 혐오 표현을 둘러싼 논쟁도 결국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와 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EU 등은 어디까지가 혐오 표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기준과 근거를 공표하고 있다. 지난 3월 발간된 유럽인권재판소의 보고서 ‘혐오 표현’에 따르면 혐오 표현은 토론 등의 외형을 갖췄더라도 유대인, 성소수자 등 특정 대상을 혐오하거나 테러리즘을 적극 옹호하는 경우 주로 적용됐다.

프랑스 극우 코미디언 디외도네 음발라가 2008년 12월 자신의 공연에서 2차대전 당시 유대인 복장을 한 배우가 학자 로버트 포리슨에게 상을 주는 장면을 넣어 기소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포리슨은 유대인 학살에 사용됐던 가스실의 존재를 부정해 프랑스 정부로부터 수차례 기소된 인사였다. 재판소는 음발라가 풍자의 의도를 갖고 쇼를 진행했다고 주장하지만 포리슨의 존재 등을 감안할 때 유대인 희생을 부정하는 정치적 회합으로 판단된다며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 내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소는 극우성향의 영국 국민당 당원 놀우드가 자신의 집 창문에 ‘이슬람은 영국에서 나가라-영국 국민을 지키자’라는 문구와 함께 화염에 휩싸인 쌍둥이 빌딩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걸어 기소된 사건도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재판소는 “특정 종교를 향한 이런 공격은 관용, 사회적 평화, 차별 배제 등 유럽인권보호조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터키의 종교인 군두즈가 텔레비전 토론에 나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터키 사회가 매우 불경하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전면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재판소는 표현의 자유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소는 민주주의가 이슬람과 공존할 수 있느냐 하는 주제는 이미 터키 언론에서 다뤄졌고, 이 주장이 즉각적인 폭력을 조장하거나 종교적 불관용에 근거한 혐오 발언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 온라인 혐오 표현 특성은

혐오 표현이 제재 대상으로 논의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한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제러미 월드론 교수의 말을 인용해 혐오 표현이 두 가지 메시지를 보낸다고 지적했다.

우선 혐오 표현은 타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지니는데 “당신이 이곳에서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어리석다. 당신이 필요한 곳은 없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추방되고 쫓겨날 것이다. 우리가 현재 이런 행동을 직접 보이지 않더라도 너무 편안해하지 마라. 두려워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혐오 표현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혐오감을 개인이 아니라 그룹 차원으로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당신들도 (혐오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혐오 표현을 가진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다”는 생각을 대중에 심어주는 해악을 끼치게 된다는 게 월드론의 설명이다.

혐오 표현의 일반적인 해악에 더해 유네스코는 온라인 혐오 표현이 더욱 심각한 파장을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우선 온라인 혐오 표현은 글이란 형태뿐만 아니라 영상 혹은 가짜 뉴스 등 다양한 형태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고, 삭제되더라도 다른 아이디를 가진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나타날 수 있다. 혐오 포스터나 현수막 등은 제거가 가능하지만 온라인 혐오 표현은 ‘지속성’과 ‘이동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네스코는 인터넷이 사생활의 자유라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 익명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혐오 표현이 더욱 자주 드러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지적한다. 온라인 혐오 표현은 국경선이 없는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어디에 피해를 호소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 ‘법적 관할권’ 문제와도 결부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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