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는 왜 '민다나오'를 쐈나

박효재 기자 입력 2017. 5. 30. 17:54 수정 2017. 5. 3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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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이슬람 세력 독립운동에 필리핀, 40년째 반군 소탕
ㆍ분쟁 탓 빈곤·마약 악순환…주민 희생 슬픈 역사 반복

29일(현지시간) 필리핀 정부군 저격수가 쏜 총알에 구멍이 뚫린 유리창으로 내려다본 남부 민다나오섬 마라위의 한 거리 풍경. 23일부터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 마우테와 정부군 간 교전으로 섬 전체에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마우테는 가톨릭 신부와 신자들을 인질로 잡고 계속 저항하고 있다. 마라위 | EPA연합뉴스

필리핀 정부가 계엄령을 내리고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남부 민다나오섬은 40년 넘게 크고 작은 유혈분쟁이 벌어졌던 곳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 ‘마우테’가 마라위 교도소, 병원 등을 점거하고 불을 지르자 바로 섬 전체에 계엄령을 내리고 전면 소탕작전을 지시했다.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할 수도 있다고 했다. 30일 GMA뉴스 등에 따르면 군사작전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일주일 만에 100명을 넘어섰다.

필리핀 국민들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에서 계엄령의 엄혹한 시절을 보냈지만 대부분 두테르테의 노선을 지지한다. 야권 성향의 매체 래플러조차도 칼럼을 통해 민다나오 계엄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마우테 소탕작전은 무슬림이나 소수민족 전체를 적대시하는 정책이 아닌 테러조직과의 싸움이며 결국은 민다나오의 개발을 위한 첫 단계라고 보는 것이다.

시리아, 이라크의 이슬람국가(IS)처럼 독립된 이슬람 국가를 세우겠다고 주장하는 마우테는 2013년 민다나오섬 라나오 호수 부근의 소도시 부티그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지역 소수민족인 마라나오족 출신의 오마르 마우테 형제가 만들었다.

오마르는 이집트에서 이슬람 사상을 공부하고 인도네시아 이슬람 성직자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단에서 이슬람 신학을 배운 동생 압둘라는 중동 극단주의자들과 마우테의 연결고리다. 막내 하심은 정부군에 체포돼 마라위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해 탈옥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테러조직 제마이슬라미야(JI),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의 배후인 줄키플리 빈 히르와도 연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우테는 조직을 결성한 해에 섬 북부 카가얀데오로의 나이트클럽에서 폭탄테러를 저질러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9월에는 두테르테의 고향인 다바오의 시장에 폭탄을 터뜨려 14명이 숨졌다. IS의 ‘라나오 지부’를 자처하기도 했다. 마우테는 정부군 작전이 시작되자 주민들이 피란을 가도록 놔뒀지만 가톨릭 신부 한 명과 신자 수십명을 인질로 붙잡고 있다.

필리핀 남부에서는 이전부터 이슬람 세력의 분리독립 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가 주류인 필리핀에서 소수집단으로 핍박받아온 무슬림, 일명 ‘모로족’은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1972년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을 결성했다. 1976년 마르코스 정권은 MNLF와 민다나오, 술루제도 14개주에 자치를 약속하는 트리폴리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정부가 협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거기에 조직 내부갈등이 겹치면서 이듬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이 갈라져 나왔다.

정부는 1993년 다시 MNLF와 협정을 맺고 조직원들을 군과 경찰에 편입시켰다. 이때 제외된 조직원들이 MILF에 합류했다.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중동의 극단주의가 스며들었고, 마우테 형제가 MILF에서 다시 뛰쳐나와 만든 것이 마우테 그룹이다. 모로족의 독립운동, 이슬람 무장세력의 조직화, IS식 극단주의가 합쳐져 생겨난 부산물인 셈이다.

민다나오에는 마우테 외에도 아부사야프, 방사모로이슬람해방전선 등 여러 반군 분파들이 있다. 스페인 점령기부터 시작된 억압과 차별에서 역사적 연원을 찾는 이들도 있다. 필리핀에는 가톨릭에 앞서 아랍 상인들로부터 이슬람이 전파됐다. 스페인은 가톨릭으로 개종을 거부한 무슬림들을 민다나오 등지로 내몰았다. 현재 민다나오의 무슬림 수는 약 400만명으로 섬 전체 인구의 20% 정도다. 이들은 미국 점령통치를 거쳐 필리핀이 독립한 뒤에도 분리를 주장하며 격렬하게 저항해왔다.

분쟁 탓에 민다나오는 필리핀인들조차 방문을 꺼리는 곳이 됐고, 인프라나 경제기반은 취약하다. 문맹률과 실업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빈곤층은 마약 거래와 극단주의에 빠져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부가 반군들과 협상을 하려 해도 이제는 전국 여론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전임 베니그노 아키노 정부가 2014년 MILF와 평화협정을 맺고 이듬해 자치권을 주는 법안을 내놨으나 의회에서 부결됐다.

마우테 격퇴작전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될 것이라는 우려는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이슬람 반군 전체가 아닌 ‘테러조직 마우테’를 타깃으로 삼고, 지역 발전을 약속하며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김동엽 부산외대 동남아지역연구원장은 “두테르테는 마우테를 공격하는 동시에 이슬람 세력을 모두 아우르는 평화협정을 따로 전개하고 있다”며 “결국은 지역의 저발전과 심각한 빈곤을 해결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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