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에 현미경]박지성 존경한다던 'AC 밀란' 혼다의 씁쓸한 퇴장

2017. 5. 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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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 최고의 선수는 누구일까.

대다수의 아시아 축구팬들이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을 뽑지 않을까 싶다. 세계 최고의 구단으로 손꼽히는 잉글랜드의 거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년간 활약했고, 리그는 물론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했고, 자신만의 강점을 앞세워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강팀만 만나면 득점포를 가동하는 치명적인 매력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세워주곤 했다.

그렇다면 박지성 이후 아시아 최고의 선수는 누구일까.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일본 축구 영웅 혼다 케이스케(30·AC 밀란)가 강력한 후보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네덜란드 리그를 거쳐 러시아의 CSKA 모스크바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고, 이탈리아 명문 AC 밀란에서 등번호 10번을 배정받으며 3년 반 동안 활약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일본의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2011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우승은 물론 최우수선수상의 영예까지 차지했다.

러시아 명문 CSKA 모스크바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혼다 케이스케 ⓒAFPBBNews = News1

하지만 그의 축구 인생은 참으로 기구하다. 모스크바 시절에 겪었던 수많은 이적설, 부푼 꿈을 안고 도전했던 AC 밀란에서의 허무한 마무리까지, 재능과 실력만큼은 최고였지만 ‘레전드’란 칭호를 붙이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혼다는 도전의 아이콘이다. 지난 2005년 1월 18세의 나이에 프로 생활(나고야 그램퍼스)을 시작했고, 21세에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그는 빅클럽으로 곧장 향하기보다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네덜란드를 선택했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VVV 벤로에 입단한 지 4개월 만에 강등의 아픔을 맛봤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에이스의 상징인 등번호 10번은 물론 프리킥을 전담했다. 심지어 주장 완장까지 찼다. 혼다는 곧바로 기대에 부응했다.

비록 2부 리그였지만, 36경기 출전 16골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강등 1년 만에 승격을 이끌었다. 1부 리그에서도 맹활약을 이어갔다. PSV 아인트호벤과 개막전에서 1골 1도움 기록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고, 러시아 명문 모스크바의 눈에 들어 그해 겨울 이적에도 성공한다.

성공은 이어졌다. 러시아 무대 데뷔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화려한 시작을 알리더니 챔피언스리그 16강 세비야와 맞대결에서 1골 1도움의 맹활약을 앞세워 팀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장기인 프리킥을 도맡았고, 강력한 무회전 슈팅과 득점을 터뜨리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 아스널, 맨유 등 수많은 클럽이 그를 원한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일본 축구팬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이때부터였다. 혼다의 화려하던 축구 인생은 ‘설’에만 그친 ‘이적’ 때문에 꼬이기 시작했다.

AC 밀란의 혼다. 부푼 꿈을 안고 도전했던 AC 밀란에서는 아쉽게도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AFPBBNews = News1

혼다는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이적을 원했다.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박지성을 꼽을 만큼, 빅클럽에서 활약하며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높은 이적료 책정하는 등 혼다의 이적을 원치 않았다. 결국, 혼다는 계약 기간이 모두 만료된 뒤에야 꿈에 그리던 AC 밀란으로 이적하는 데 성공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2013~2014시즌 후반기 14경기에 나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경쟁력을 보였다. AC 밀란에서의 첫 풀타임 시즌을 맞이한 2014~2015시즌에는 기량이 만개했다. 공격형 미드필드와 스트라이커를 오가며 29경기에 나섰고, 6골 4도움을 기록하며 공격 포인트 두 자릿수 달성에 성공했다. 이때가 혼다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즌이었다.

이후 혼다는 조금씩 내려왔다. 2015~2016시즌 30경기에 나서 1골 3도움에 그쳤다. 부상으로 인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고, 부진까지 겹치며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무엇보다 챔피언스리그는 물론 유로파리그도 출전이 어려운 소속팀 상황도 큰 부담이었다. 2016~2017시즌 자신은 물론 팀의 부활까지 이끌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8경기(선발 2경기) 출전에 그쳤고, 1골만 기록하는 데 머물렀다.

결국 큰 반등 없이 계약 기간이 만료됐고 기적 같은 계약 연장은 없었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찼고 팬들의 큰 박수를 받았지만, 이별이 달가운 이는 없다.

박지성처럼 큰 무대에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다던 혼다였기에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마무리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포츠한국 이근승 객원기자 lkssky02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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