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 MLB리포트] 영원한 전설 베이브 루스와 이어지는 경매 신기록

조회수 2017. 5. 30. 13: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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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양키즈로 트레이드 계약서가 경매에 나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

1919년 시즌 베이브 루스(당시 24세)는 130경기에 출전해 3할2푼2리에 113타점, 103득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27개의 홈런을 쳤습니다. 그 시즌 홈런 2위는 12개였습니다. 그 시즌 AL 8팀 중에 루스보다 적은 홈런을 친 팀이 4팀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해 루스는 15번의 선발 포함해 17경기에 등판해 12번의 완투를 하는 등 9승5패 평균자책점 2.97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1916년 시즌에 23승, 1917년 시즌에는 24승을 거둔 발군의 좌완 투수이기도 했습니다. 루스는 월드시리즈에서도 3경기에 나서 3승 무패 0.87의 기록도 남겼는데 14이닝 1실점 완투승 경기도 있었습니다.


베이브 루스의 1919년 양키즈 트레이드 계약서가 경매에 나왔습니다. 원본 두 장 중에 보스턴 구단주 소유이던 서류는 2005년에 99만6천달러에 팔렸습니다. 사진은 1934년 양키즈와 계약하는 모습.


 그러나 1919년 시즌이 끝난 후 해리 프레이지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는 당대 최고의 신성 루스를 뉴욕 양키즈로 양도하고 맙니다. 10만 달러를 받고. 10만 달러 외에도 30만 달러를 융자받았는데, 그때 담보로 잡힌 것은 다름 아닌 보스턴 홈구장 ‘펜웨이파크’였습니다. 만약 영화, 극장 사업도 하던 프레이지 구단주가 파산했더라면 펜웨이파크가 양키즈 소유가 될 뻔 했습니다.

후대에 ‘루스의 트레이드’로만 알려진 이 거래에서는 주전 포수 윌리 샹, 유격수 에버렛 스캇, 투수 웨이트 호잇 등 주전들이 모두 팀을 옮겼고, 양키즈가 본격적으로 강팀으로 올라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음은 물론입니다. 뉴욕으로 건너간 루스는 1920년 5월에만 홈런 12개를 치며 돌풍을 일으켰고, 너무 놀란 양키즈는 외야 펜스를 6미터나 뒤로 옮기는 해프닝도 벌였지만 그 해 루스는 54개의 홈런을 쳤습니다.AL 8팀 중에 단 한 팀도 루스보다 많은 홈런을 치지 못했고, NL 8팀 중에는 필라델피아 한 팀만이 루스 개인보다 많은 홈런을 쳤습니다.


루스를 양키즈로 넘기면서 프레이지 구단주는 “보스턴 팬이 원하는 것은 승리하는 팀이다. 아무리 한 선수가 잘 해도 6위를 하면 소용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늘 사람들과 어울리고 음주를 즐기고 대식가였던 루스의 생활 태도를 프레이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두 팀의 엇갈린 운명은 ‘밤비노의 저주’라는 호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프레이지는 1923년에 보스턴 레드삭스를 팔고 팀을 떠났고, 1934년까지 암흑기를 지낸 레드삭스는 그 후 4번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루스가 뛰던 1918년 마지막 우승 이후 86년 동안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그 레드삭스의 암흑기 동안 동안에 양키즈는 26번의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며 ‘미국의 팀’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보스턴에 남았더라도 그런 역사가 만들어졌을까요?


조지 허만 ‘베이브’ 루스는 1948년 만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Baseball 이라는 스포츠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고, 미국의 삶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까지 받는 루스는 그렇게 비교적 일찍 팬들과 이별했지만 그의 전설이나 영향력, 그리고 시장에서의 파급 효과는 여전히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최근 그와 관련된 서류 하나가 경매에 나와 또 다시 미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1919년 베이브 루스를 양키즈로 트레이드한 서류 원본이 경매에 나왔습니다. 당시 뉴욕 구단주 루퍼트가 소유했던 계약서입니다.


경매회사인 리랜즈.컴(Lelands.com)에 나온 서류는 다름 아닌 베이브 루스의 레드삭스에서 양키즈로 트레이드된 거래를 확정지은 바로 그 서류입니다.

1919년 12월에 성사된 그 트레이드에는 두 개의 서류가 있습니다. 프레이지 보스턴 구단주와 뉴욕 양키즈의 제이콥 루퍼트 구단주가 각각 한 부씩의 서류를 나눠가졌습니다. 조시 에반스 ‘리랜즈.컴’ 사장에 따르면 이 소중한 서류는 1990년대 초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에반스가 유명한 수집가 배리 핼퍼의 집을 방문했다가 ‘Ruth’라고 적힌 서류 보관철을 봤습니다. 서류철을 열었더니 그 안에 두 구단주가 서명한 오리지널 계약서 두 개가 모두 들어있었던 겁니다.

에반스는 그 자리에서 2만5000 달러를 주고 프레이지의 계약서를 구입했고 1993년에 경매에서 9만9000 달러에 되팔았습니다. 그 비슷한 시기에 루퍼트 구단주의 서류도 경매에 나왔는데, 에반스는 익명의 매입자의 요청으로 15만 달러에 그 서류를 구입해 매입자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후 25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루퍼트 구단주가 베이스 루스를 사들였던 그 증빙 서류가 이번에 다시 경매에 나온 것입니다.


과연 이 서류가 얼마에 팔릴 지가 미국 스포츠계와 경매 업계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보스턴 구단주 프레이지의 서류는 12년 전인 2005년에 99만6000 달러에 판매된 기록이 있습니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고, 그보다는 훨씬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될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에반스에 따르면 현 소유주가 과거 500만 달러 제안을 거절했다는데 - 그 정도의 액수가 나올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판매된 루스의 다른 서류들을 보면 이번에 최고 액수가 나올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팔린 루스의 계약서는 1918년 보스턴과 맺은 서류로 2014년에 102만 달러(약 11억)에 팔렸습니다. 지난 14개월 동안에 루스의 계약서가 3부 팔렸는데 1921년에 양키즈와 맺은 3년 계약서가 53만7750만 달러에 팔렸고, 1931년의 양키즈와 2년짜리 계약서는 38만4000 달러, 그리고 1935년 보스턴 브레이스와의 계약서가 36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가치로 볼 때 위의 계약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베이브 루스의 양키즈 이적 서류는 과연 얼마에 팔릴지 궁금합니다.


한편 이번 경매에는 루스의 1927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도 나와 또 다른 관심의 대상입니다.

루스의 미망인이던 클레어씨가 배리 핼퍼에게 판매하고 에반스를 거쳐 현재의 소유주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소유주는 영화배우 찰리 신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스포츠 우승 반지 중에는 1974년 뉴욕 네츠의 ABA 농구 챔피언십 우승을 이끈 줄리어스 어빙, ‘닥터 J’의 우승 반지가 46만471 달러로 역대 우승 반지 최고액에 팔린 기록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고인이 됐지만 전설로 영원히 살아있는 루스는 자신과 관련된 물품들로도 끝없는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Wikipedia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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