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영화 상영관 世態

선우정 논설위원 2017. 5. 30.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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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가 작년 10월 호소문을 냈다. '2년 동안 애써 만든 영화가 큰 벽에 가로막혔다'고 했다. '큰 벽'은 CJ·롯데처럼 '상영관을 가진 대기업'이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절하다. '힘을 보태주세요! 윗선 눈치를 보지 말고 당당하게 문을 열어 달라고 해주세요.' 이들이 만든 영화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을 다룬 '무현, 두 도시 이야기'였다. 메아리가 없었다. 스크린 34개에서 겨우 출발했다. 그래도 두 달 동안 19만 관객이 들었다.

▶며칠 전 똑 닮은 다큐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상영을 시작했다. 나흘 동안 59만 관객을 모았다. 전체 2위였다. 다큐 영화론 개봉 관객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수작(秀作)이라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노무현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몇 달 전처럼 대기업들이 상영관 문을 열지 않았다면 어림없었을 것이다. 이번엔 대기업 스스로 배급을 맡았다. 차이가 엄청나다. '노무현입니다'는 첫날 579개 스크린에서 출발했다. 할리우드 영화급 대접이라고 한다.

▶4년 전 참수리호 6용사를 다룬 '연평해전' 제작자 역시 '큰 벽' 앞에서 좌절을 겪었다. 투자자와 상영관을 찾았지만 "애국 영화론 흥행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군을 비롯해 많은 이가 도왔다. 그러다 상영관 메이저 대기업이 뛰어들었다. 비자금 문제로 수사받던 기업이다. 그 기업이 가진 방송이 "창조 경제를 응원한다"는 광고를 날마다 틀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이번엔 제작자가 거절했다. 정부에 잘 보이려고 대기업이 지원한 '애국 영화'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을 것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첫날 스크린 579개 중 245개가 CGV, 137개가 롯데시네마, 142개가 메가박스였다. '빅3' 점유율이 90%를 넘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작년 "국뽕" 논란과 혹평에도 700만 관객을 모은 것 역시 국민 정서만이 아니라 투자와 배급을 맡은 대기업 힘이 컸다.

▶기업은 돈에 따라 움직인다. 특히 문화는 정치 변화가 소비 행태의 변화로 직결되는 분야다. 세계 어느 나라나 문화 산업은 좌파 색채가 강하다. 기업이 이런 시장을 보고 돈을 벌려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이걸 정치의 힘으로 억지로 돌리려다 '블랙리스트' 파동까지 겪었다. 하지만 우리 영화계는 대기업이 지배하는 과점(寡占) 시장이다. 그들의 선택이 관객의 선택을 바꾼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애국'이든 '인권'이든 잘 만든 영화를 가까운 곳에서 쉽게 관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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