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마크롱이 쥔 양날의 칼

장일현 런던 특파원 입력 2017. 5. 30. 03:13 수정 2017. 5. 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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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이 누구야?"

2014년 8월 올랑드 대통령이 신임 경제장관에 에마뉘엘 마크롱을 임명하자 프랑스 언론은 '의외' '파격'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만 37세에 정치 경력이라곤 2년간 대통령 경제 비서관을 지낸 게 전부인 마크롱은 프랑스 정계와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다.

3년 뒤 마크롱은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키며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이 됐다. 그를 대통령에 올려놓은 건 기성 정치권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실망과 분노였다. 유권자들은 전후 60여 년간 정계를 양분해 온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를 1차 투표에서 탈락시켰다. 언론은 이를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구체제)의 몰락"이라고 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을 좌우한 '핫 이슈'는 테러·이민과 실업·경기침체였다. 프랑스는 2015년 1월 시사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총기 테러(12명 사망)를 시작으로, 그해 11월 파리 동시 다발 테러(130명 사망), 지난해 7월 니스 트럭 테러(86명 사망) 등 대형 테러 사건을 겪었다. 테러는 이민·난민 문제와 결합하면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켰고, 극우 포퓰리즘 세력은 이를 에너지 삼아 급성장했다. 하지만 테러·이민 이슈는 극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 정도까진 이르지 못했다. 프랑스 국민 중엔 "누가 대통령이 돼도 테러를 완전히 막을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에서 처음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프랑스 국민이 가장 분개한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나아지지 않는 실업난과 경기침체였다. 작년 초 올랑드 대통령은 "높은 실업률은 극단적 테러리즘만큼 중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프랑스 경제를 '국가 비상사태'라고도 했다. 올랑드는 실업률 낮추기에 모든 정책적 자원을 집중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지율이 4%까지 떨어지자 올랑드는 지난해 12월 "권력에 취해 제정신을 잃진 않았다"며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은 1958년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처음이었다.

마크롱의 전략은 기업 경쟁력을 되살려 '취업 공간'을 넓히고, 기술·재취업 교육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노동자들 역량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역사적 인식에 기반한 전략이다. 사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은 고졸 정도 학력을 가진 사람이 무난히 잘살 수 있는 사회였다. 그러다가 세계화를 맞아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기업과 상품·서비스, 노동력과의 경쟁에서 지는 일이 속출했고, "남 때문에 내가 못살게 됐다"고 느낀 사람들이 투표소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트럼프 대통령을 택했다. 그중엔 보호무역주의와 막무가내식 노동자 보호 정책으론 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런 선택을 한 이도 많다.

대안을 찾아 헤매는 절망적 심리가 프랑스에선 기존 정당 후보 배제로 나타났다. 마크롱 신화를 만들어낸 실업률은 '양날의 칼'이다. 프랑스 국민이 마크롱에게 큰 기대를 건 만큼, 그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거센 역풍이 불 것이다. 언론도 마크롱이 헛발을 디디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럴 경우 다음 대선 때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이 엘리제궁 주인이 될 가능성은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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