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시민도 예술 볼 줄 안다"

신정선 사회부 차장 2017. 5. 3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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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사회부 차장

폐기된 신발 3만켤레로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高架) '서울로'의 설치 작품 '슈즈 트리(Shoes Tree)'가 예정된 9일간의 전시를 마치고 29일 철거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높이 17m, 길이 100m 크기의 작품을 철거하는 데 이틀 정도 걸린다고 했다. 슈즈 트리는 설치를 시작한 첫날부터 논란을 불렀다. 거무죽죽한 신발 폭포 같다, 흉물이다, 지저분하고 냄새 난다는 의견이 많았다. 불과 9일 전시에 시비(市費) 1억3900만원이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은 더 거세졌다.

슈즈 트리 논란은 시민과 작품을 이을 다리가 돼야 할 행정의 감수성이 무뎌서 벌어진 사태다. 작품 설치는 서울시 디자인 담당 부서가 아니라 조경 관리 부서인 푸른도시국이 주도했다. 시에 공공미술자문단이 있지만 푸른도시국은 자문단 심의를 거치지 않고 설치를 진행했다. 한 자문단 관계자는 "설치 검토 후보에 올라왔다면 채택되기 어려웠을 작품"이라고 했다.

푸른도시국은 슈즈 트리를 "도시 재생의 개념을 환기할 신선한 예술품"이라고 홍보했다.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슈즈 트리는 미술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자문단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봤다"고 밝혔다. "관계 부서 내부 회의를 거쳤고 시장님께도 보고됐으며 시장님도 좋아하셨다"고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정책 입안에서 시민을 강조한다. 전문가 영역인 미세 먼지 대책을 정하면서도 시민 3000명이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토론해 의견을 도출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정작 시민이 향유할 예술엔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설치 기간 내내 시민의 반감이 잦아들지 않자 일부에서는 "흉물도 예술"이라며 시민 눈높이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흉물도 때론 예술이 될 수 있다.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작품 앞에서 오히려 미감이 고양될 때도 있다. 그러나 서울역은 보고 싶은 사람만 찾아가는 미술관이 아니라 공공에 개방된 공간이다. 시민 공간에다 시민의 세금으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할 때는 평균적인 대중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보고 싶지 않다는 시민을 향해 "예술을 못 알아보느냐"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공공 미술은 아무리 예술성을 내세워도 존재하기 어렵다. 1979년 뉴욕 맨해튼 페더럴플라자에 세워진 미니멀리즘 대가 리처드 세라의 작품 '기울어진 호(弧·Tilted Arc)'는 "통행에 방해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광장을 반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작품에 시민 1300명이 "공공장소를 볼모로 잡고 있다"며 철거 청원서를 냈다. 존치 여부를 두고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진 작품은 결국 설치 10년 만인 1989년 철거됐다.

슈즈 트리 논란은 공공 미술을 대하는 서울시의 현주소를 돌아볼 기회가 됐다. '흉물도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기사에 달린 한 시민의 댓글은 시 당국에 던지는 따끔한 일침이다. '예술은 지들만 하나. 나도 눈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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