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 배에서 강렬한 신호가 왔다

한유사랑 입력 2017. 5. 2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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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체력 미대언니의 쿰부 히말라야 기부트레킹 ⑤] 절박했던 그날 밤

[오마이뉴스한유사랑 기자]

※ 아래 글은 생리현상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은 다음 글을 기다려 주세요!

첫 번째 고비

산길을 걸을 때는 괜찮더니 남체 롯지에서부터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생리통도 심해지는 것 같았다. 네팔 출발 전 생리를 걸렀다. 생리가 나오지 않는 몸의 상태는 긴장의 연속이다. 자궁뿐만 아니라 주변의 장기들도 긴장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에 신체, 감정 리듬이 엉망이 된다. 출발 전 한 달간을 생리 전 증후군으로 고생을 한 나는 생리가 터져서 몸은 힘들겠지만 잘 되었다 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몸을 계속 쓰다 보니 내장기관이 다 놀란 것 같다.

'얼른 쉬어야겠다.'

평소 잘 먹지 않는 생소한 이름의 생리통 약을 두 알 먹고는 10시쯤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깐 잠이 드는 듯했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끙끙 앓다 안되겠다 싶어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 40분.

"화장실에 가야겠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현기증 때문에 똑바로 설 수 없고 오한이 나며 이가 딱딱 부딪쳤다. 화장실에 가려면 문을 열어야 하는데 머리 위에 있는 잠금장치에 손이 닿지를 않는다. 벽을 잡고 겨우 손을 뻗어올리고는 문을 열었다. 네발로 벌벌 기어 화장실로 갔다.

"같은 층이라 다행이야."

하지만 화장실도 잠금 고리가 엉망진창이다. 아무리 힘을 줘도 잠기질 않는다.

"젠장, 문 잠그다가 바지에 똥 싸겠네."

문을 겨우 잠그고 앉자 곧 헬 게이트가 열렸다. Welcome to hell-gate! Bam!!! 땅이 머리 위로 솟구치고 온몸이 식은땀에 젖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토가 올라온다. 위 아래 위위 아래 위 아래 위위 아래. EXID 뺨치겠다. 손은 덜덜 떨리며 마비되기 시작했다. 심장의 펌프질이 온몸으로 느껴지다 못해 귀가 아플 지경이다.

"안돼. 옆에서 도와줄 누군가가 없어. 정신 차려."

이렇게 가다가는 의식을 잃을 게 불 보듯 뻔하다. 한국에서야 아무데서나 쓰러져도 좋은 분들이 많아 도움을 받기도 하고 엄마가 계시니 오랫동안 방치되지 않도록 신속한 처리를 해주시지만 이곳은 네팔의 히말라야다.

"변기 위에 쓰러져있는 걸 누가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변기 위에서 혹시나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안돼!! 내 마지막이 변기 위라니!"

나는 겨우 정신줄을 잡았다. 산모들이 하는 라마즈 호흡을 하며 겨우 방으로 돌아왔는데 앉자마자 배가 또 아프다. 난소가, 자궁이 나 여기 있다며 큰소리로 나팔을 부는 것 같다. 변기 위에서 동사할 수 없어서 손난로 세 개를 빠르게 뜯어 주머니 속에 구겨 넣고는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잠그고 다녀야 하는데... 가방에 돈이 백만 원 가까이 있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야 내가 죽겠는데... 아... 젠장 안 죽으면 돈이 있어야 해..."

그 와중에 망할 잠금장치를 기를 쓰고 잠갔다. 잠깐 그냥 열어둘까 하는 유혹이 있었는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피쓰- 반 시간 동안 설사와 피를 쏟으며 위 아래를 하다가 방에 돌아와보니 몸 상태가 심각하다. 호흡을 계속하는데도 의식이 자꾸 먼 곳을 향해 간다.

"고산병인가... 헬기를 불러야 하나... 와디즈 이타 펀딩은 어떡하지... 어차피 아직 안 올라갔으니 올리지 말라고 연락을 하고... 그리고 페북에는 사과문을 올리고... 우리 가이드 아저씨는 잘 테니까 밑에 층에 내려가서 이름을 크게 불러야 하나... 다른 가이드들이랑 같이 자니까 쪼그맣게 불러야 하나... 아 이게 무슨 민폐 오브 더 진상질일까..."

몇 번을 더 화장실을 기어 다니며 겨우 정신줄을 잡고 있다 보니 설사와 구토가 좀 잦아들었다. 이젠 무슨 변고가 생겨도 변기 위에서 발견될 일은 없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핫팩을 북북 찢어 여기저기 더 붙이고는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빌린 침낭. 더럽고 냄새나는 침낭. 어젯밤, 침낭 라이너를 속에 넣고 침낭을 얼굴과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도록 얼마나 노오력했던가.

거기다 롯지에서 주는 담요. 물과 전기가 모자라 빨지 않고 널었다가 다시 쓰는 더럽기로 소문난 담요. 어깨 밑으로만 덮으려고 반을 접어서 침낭 위에 얹었었는데... 그게 뭐시 중한디! 그게 뭐시 중하냐고! 침낭에 얼굴을 묻고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었다. 혹시라도 죽을까를 대비해 방 불을 켜뒀는데 불빛이 정말 1도 들어오지 않는다. 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바람도 들어오지 못한다. 내 체온과 몇 개의 핫팩들이 모여 열을 냈다. 그래도 심장은 살을 뚫고 나올 기세로 쿵쿵대고 오한과 통증은 심해져만 갔다.

"주 기도문을 외우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자꾸 기도가 다른 곳으로 간다.

"하늘에 계시지만 마시고 저랑 같이 계셔요. 뜻이 이뤄지도록 제가 열심히 살게요. 살려주세요. 일용할 양식을 주시면 나눠먹을게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그러다 보니 의식이 멀어지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두 시간쯤 지나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살았다. 죽지 않았다. 그제야 서러워졌다. 꺼이꺼이 울다가 벽이 얇은 것을 깨닫고는 끅끅 울었다. 내가 하겠다고 결정해서 시작한 일인데 왜 이렇게 서러울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한참을 울다 보니 감기에 걸릴까봐 겁이 덜컥 났다.

"안돼, 감기 걸리면 촐라패스를 어떻게 넘어!"

진짜 살아났는지 헬기 어쩌고 사과문 어쩌고 하던 게 쑥 들어가고는 촐라를 넘는단다. 헛웃음이 난다.

"경고일 수 있어.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잊으면 안 되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이렇게 아픈 거야.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게 약속을 지키는 거야. 약속은 지키는 거니까! 나는 유치원 나온 배운 녀자니까!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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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사랑
다시 만난 세계

지난 밤,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 나는 아침에 형석이와 짓에게 오늘은 무리한 일정을 소화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원래 남체 고소적응을 할 때 에베레스트 호텔 뷰 포인트에 올라간다 하는데 우리는 그 목전까지만 갔다가 돌아와 남체 시장에서 놀고 카페에서 히말라야에서 가장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누나 없이 러닝을 하는 이타 멤버들을 응원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프립(frip)의 수열대표의 지원사격을 부탁했다. 살아돌아가면 은혜를 갚는 까치가 될 것이다고 짹짹거렸다. 그렇게 꿀 떨어지는 연애 초 같은 휴식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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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사랑
다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오늘 걸어야 하는 길은 13km. 그리고 500m의 고도를 높여야 한다. 출발을 하고 걷다 보니 또 잘 걸어진다. 괴물 개미는 잘도 걸어갔다. 한 두어 시간쯤 걸으니 변의가 느껴진다.

'음 이건 엊그제의 여파인 듯한데?'

괴물 개미의 걸음이 빨라지고 혼자 멀찍이 앞에서 네비가 알려주는 길로 걷기 시작했다. 지나치는 마을은 있었지만 화장실이 없어 막 걸었다. 짓(가이드)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르는 마을에 도착해야 트레커들을 위한 화장실이 있다고 했다. 괴물 개미는 더 힘을 냈다. 길에서 변을 쌀 수는 없잖은가. 아무리 트레킹 첫날 야크처럼 걸었다고 해서 야크처럼 길에다 똥을 뿌릴 수는 없는 일.

한참 가다 보니 마을이 보였다. 뒤에서 짓이 우리가 갈 레스토랑을 손짓으로 알렸다. 오예 화장실 가야지! 가야지! 울룰루 랄랄라. 랄라. 랄라. 얼레? 화장실이 길 위에 있네? 응? 응???? 짓에게 한 걸음으로 달려가 소리쳤다.

"짓! 저거 화장실이 길 위에 있어! 안에 화장실 있는지 물어봐 줘!"
"여기 화장실 저기 말고는 없어. 그냥 저기 들어가서 일 봐"
"(아니 이 아저씨가..) 나 생리 중이라니까? 여기서는 못해!(생리 중인 여자가 화장실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오!!) 다음 마을에는 화장실 있어?"
"다음 마을에도 길 위에 있어."
"왓 더!!!"

진심 욕이 나오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더러운 화장실은 지난 열하일기 다큐 여정에서 몇 번이나 경험했다. 중국의 더러운 화장실의 위엄은 그 어떤 나라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문도 없이 꺾어들어간 화장실에는 뒤처리한 화장지가 허리만큼 쌓여있고 변으로 변을 밀어내는 물 없는 수세식 화장실의 충격적인 모습을 목도했다. 화장실을 사용한 후에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이곳의 화장실은 용변이 밖에서 보인다. 수상가옥처럼 짧은 낭떠러지에 나무 골자로 지어진 화장실 밑에는 오물과 낙엽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 오물이 바깥 레스토랑과 길에서 다 보인다. 화장실은 자기도 무슨 풍경의 한 부분인 양 다소곳이 앉아있으나. 앉은 자리 밑에는 똥산이 있는 것.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이걸워쪄.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가야지 워쪄겠나.

멘탈이 탈탈 털린 채 화장실로 간 나는 중국보다 덜 더러운 이곳 화장실에서 많은 일을 해냈다. 수치와 고통은 잠깐이었다. 몇 시간 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던 신체의 아우성이 사라지자 몸도 가볍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나는 또 고비를 이겨냈다. 이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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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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