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색] 오고가는 뇌물 속에 '휘어지는' 하천 교량

임성준 2017. 5. 29. 14: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 하천교량 형식 공무원 입맛대로.. 전·현직 공무원 8명 구속

제주시가 하천교량 공사를 발주하면서 교량형식을 심의 과정없이 공무원 입맛대로 선정해 공무원과 업체 간의 금품 로비 등 검은 유착관계가 드러나고 부실공사로 이어지고 있다.

29일 제주지검에 따르면 제주시 하천교량 공사 관급자재 납품을 둘러싼 비리로 공무원 김모(57)씨와 전직 공무원 강모(60)씨 등 전·현직 공무원 8명을 잇따라 구속했다. 특가법상 뇌물 수수, 알선 수재, 직권남용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에게 돈을 주고 하천교량 공사에 참여한 건설업체 운영자 강모(62)씨도 뇌물공여와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업자와 이들 공무원 간 오간 아파트와 현금, 차량 등 뇌물 액수는 수년간 총 7억원이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무원 김씨는 제주시 건설과장으로 재직하던 2013년 10월부터 2014년 5월까지 강씨가 사실상 운영하는 업체가 제주시 한천 한북교 특수공법 자재를 납품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3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시기 제주시 건설과 하천관리를 담당한 좌모(50)씨도 같은 수법으로 건설업체로부터 1500만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시 한천 한북교 교량 구조물이 부실 시공돼 휘어 있는 것을 검찰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제주지검 제공
제주시 재난관리과장과 도시디자인과장을 지낸 김모(61)씨도 같은 수법으로 강씨의 업체를 봐준 뒤 2000만원의 뇌물을 받고 퇴직 후에는 해당 업체에 취업하는 특혜를 받았다.

김씨와 함께 제주시 재난관리과에서 2011년부터 2013년 2월까지 일했던 김모(45)씨는 해당 업체에 납품 등의 편의를 주고 빌라 1채를 특혜분양 받아 차액 8500만원과 현금 800만원 등 9300만원을 수수한 혐의다.

전직 공무원 강모(63)씨는 퇴임 후 해당 업체에서 일하며 급여와 차량 등을 받고 빌라를 싸게 분양받는 등 4억8000만원을 챙긴 혐의다.

또 다른 전직 공무원 고모(61)씨도 해당 업체에게서 돈을 받은 공무원에게 ‘유착관계를 알리겠다’고 협박, 뇌물로 오간 금액 중 1억여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 등 교량 관급자재 납품을 둘러싼 ‘복마전’이 드러났다.

검찰은 또 제주시 와호교 건설에 참여한 모 업체의 대표이며 제주시 국장 출신인 김모(64)씨를 특가법상 알선 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김씨는 2014년부터 1년간 실시된 제주시 화북동 일대 수해상습지 정비공사인 와호교 사업에 있어 비리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김씨는 2012년 퇴임한 후 2014년 도내 한 건설업체 대표로 일하면서 와호교 등의 제주시 관급공사에 자재를 납품해 왔다.

와호교는 구조물이 휘어지는 현상이 나타나 2015년 5월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검찰은 이들 전·현직 공무원이 평소 업자에게 떡값과 선물 등을 받으며 지속해서 유착관계를 형성, 발주 시 특정업체에 ‘공사 밀어주기’ 대가로 돈을 챙겨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교량 공사 외에도 2010년부터 이뤄진 하천정비사업 등 행정에서 발주한 여러 사업에 대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자료를 제출받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다른 지자체는 교량 형식 선정을 위한 심의위원회를 설치·운용하고 있지만 제주지역은 심의위원회를 설치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설치한 뒤 사실상 운용되지 않아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제주도는 교량 형식 선정을 위한 심의위원회를 두지 않았고, 제주시는 2015년 11월 전문가 자문 추진방침을 세운 뒤 지금까지 자문회의를 두차례만 열었다. 서귀포시는 수사가 착수되지 지난 달 기술자문위원회 구성·운영 규정을 마련했다.

제주지검 김한수 차장검사는 “공무원들이 퇴직 후 유착업체 대표 등으로 영입돼 사실상 영업 브로커로 활동, ‘관피아’가 형성돼 부패 고리 역할을 했다”며 “납품 비리는 물론 주민 안전을 담보하는 교량 관급자재의 질을 떨어뜨려 대형사고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업체 로비에 따라 사실상의 수의계약이 가능한 구조가 될 수 있어 보조금 지급과 관리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