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라진 '인간고유영역'..거꾸로 '알파고 바둑' 배우기 나서

2017. 5. 2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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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구본권의 디지털프리즘_알파고, 인간바둑계 평정 뒤 은퇴

[한겨레]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 커제 9단이 23일 중국 저장성 자싱시 우전에서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결을 펼치고 있다. 구글제공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바둑 세계랭킹 1위 커제 9단이 알파고와의 세차례 대국에서 0-3으로 완패했다. 지난 23일부터 중국 저장성 우전 국제인터넷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는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에 비해 다양하게 진행됐다. 커제 9단과 알파고의 세차례 대국, 프로기사 5명이 팀을 꾸려 알파고와 겨루는 대국(상담기), 프로기사와 알파고가 짝을 이뤄 대국하는 페어경기 등 세가지 형식으로 치러졌다. 형식은 다양했지만 모든 영역에서 알파고의 완벽한 승리였다. 27일 커제는 209수 불계패로 끝낸 세번째 대국 뒤 기자회견에서 “알파고의 극도로 냉정한 모습에 바둑 두는 것이 고통 그 자체였다”며 “알파고와 바둑을 둘 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전혀 갖기 어려웠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바둑 세계1위도 속수무책 무너져
고수 5명과 붙은 5대1 대국도 완패
“알파고-알파고 대국 경이롭다”
인공지능 바둑 배우기 새로운 흐름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는 27일 이번 대결을 끝으로 알파고가 바둑계에서 은퇴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5번기, 올해 초 인터넷에서 ‘마스터’라는 아이디로 한중일 정상의 프로기사들과 대결한 60번기, 이번의 4번기 등 모두 69차례 대국을 치른 뒤 은퇴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이세돌의 4국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인간이 승리한 유일한 바둑으로 기록됐다. 허사비스는 이날 “전세계 바둑팬을 위한 선물”이라며 “그동안 알파고를 훈련시키기 위해 알파고끼리 대결한 기보 50건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알파고는 바둑에서 사람은 인공지능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14개월 만에 사라졌다. 커제가 “바둑의 신 같다”고 한 알파고가 은퇴한 바둑계는 평화와 질서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알파고가 바둑계에 끼친 영향

이세돌 9단이 2016년 3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2차 대국에서 패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알파고와 커제의 대국은 1년 전 이세돌-알파고 대결이 안긴 충격에 비하면 미미하다. 지난해 1승을 거뒀지만 바둑에서 인간 최고수가 인공지능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커제의 승리를 예상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프로기사들은 1년 전에 비해 더 강력해진 알파고의 기력에 “빈틈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수”라며 놀랐고, 딥마인드가 공개한 알파고-알파고 대국 기보 50건을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알파고-알파고 기보를 접한 중국의 스웨 9단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대국이다. 상상하던 먼 미래의 대국 같다”고 경탄했으며, 구리 9단은 “알파고-알파고 대국은 정말 놀랍다.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사비스도 “이세돌 9단과의 대국 이후 알파고는 스스로의 선생님이 되어 수백만건의 연습경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실력을 향상시켜 왔다. 이 대국들은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전략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기사들은 1년 전 바둑에서 컴퓨터는 사람 상대가 못 된다고 자신했으나, 알파고 14개월 만에 인공지능 따라하기에 나섰다. 알파고가 알려준 묘수 덕분에 인간 바둑은 더 창의롭고 풍요로워질까, 아니면 기계에 경이와 신비로움을 빼앗겨 무기력해질 것인가. 이세돌은 1년 전 “바둑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컴퓨터가 사람을 이길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라는 신비감이다. 그게 무너진다면 바둑계는 큰 타격을 입는다. 체스도 컴퓨터에 패한 뒤 인기가 몰락했다”고 말한 바 있다.

딥러닝 인공지능이 던지는 물음

알파고의 진정한 영향은 바둑판 바깥에 있다.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의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며 범용 인공지능으로 발달시켜 과학, 의료, 에너지 분야의 연구개발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존에도 컴퓨터와 다양한 기기를 사용해온 분야이지만, 범용 인공지능이 뛰어들면 바둑처럼 차원이 다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알파고 같은 최근의 딥러닝 인공지능은 인간 뇌처럼 심화신경망 방식의 기계학습을 활용하는 게 특징이다. 기존의 도구와 컴퓨터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고 그 결과를 예상하는 방식으로 설계했지만, 알파고나 최근의 딥러닝 인공지능은 다르다. 딥러닝은 설계자가 인공지능에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인공지능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다. 그 방법은 알파고가 보여주듯 일찍이 인간이 생각지도, 시도해보지도 못한 새로운 접근법이지만 놀랍게 효율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알파고의 대국에서 보듯 효율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알파고나 개발자는 그 효율성이나 승리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고 추론한 결과가 인간의 결과물을 추월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는 도구를 만들어 쓰는 존재(호모 파베르)인 사람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제껏 호모 파베르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해왔으나,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도구로 인해 도구와 맺어온 오랜 관계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인간은 기계의 작동 방식과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월등한 결과에 압도당해 더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다.

허사비스는 27일 “커제 9단과의 대국은 인공지능의 최고 수준을 구현함으로써 인류가 인공지능을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잠재력을 확인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인류의 새로운 지식영역 개척과 진리 발견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는 인공지능을 도구로 쓸 수 있는 극소수와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으로 구분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알파고가 알려준 딥러닝 인공지능은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에 강력한 기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커다란 질문과 책임을 던진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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