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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그게 스트라이크라고?" 오승환의 보더라인에 대하여

조회수 2017. 6. 7. 13: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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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카운트 3-2. (투수 브렌트 수터의) 6구째 커브가 안쪽에서 급격하게 꺾였다. ‘이건 너무 바짝 붙었어.’ 타자는 철석같이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볼넷이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1루로 향했다. 하지만 천만에. 구심은 오른손을 불끈 쥐고 세번째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뭐라고?’ 타자는 펄쩍 뛰었다. 배트를 집어던지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그리고 심판을 향해 강렬한 샤우팅을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두번째 판정이 내려졌다. 구심이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찔렀다. Ejection. 퇴장 선언이었다.

삼진, 퇴장 선언을 놓고 격렬한 언쟁을 벌이는 카펜터와 구심. mlb.tv 화면

가뜩이나 열받은 타자는 폭발했다. 맹렬하게 달려들어 코 앞까지 대들었다. ‘추파춥스, 고추참치, 빽투더퓨처투….’ 있는 대로 침을 튀겼다. ‘미스트 그렇게 많이 뿌려주면 피부 너무 고와지는데.’ 보다 못한 감독이 달려나왔다. 흥분한 타자를 편들어 슬쩍 한 마디했다.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니요?’ 귀도 밝은 심판이 그걸 또 어찌 알아들었다. “당신도 나가!”

올해 4월 24일(한국시간). 밀워키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즌 14호와 15호 퇴장의 주인공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1루수 맷 카펜터와 마이크 매서니 감독이었다.


테임즈의 삼진 판정을 내려줬던 34살짜리 심판

카펜터가 통산 세번째로 퇴장 당한 경기였다. 한편으로 이해되는 점도 있다. 이날 그는 3번의 타석에서 모두 삼진을 당했다. 참다, 참다, 끝내 폭발한 것이리라.

카펜터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날은 파이널 보스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시즌 5세이브째를 올린 경기였기 때문이다. “내 살다살다, 일주일에 세이브 5개 올린 적은 처음이네요.” 그랬던 게임이었다.

9회 말 시작은 6-2였다. 세이브 상황이 아닌 탓에 조나단 브록스턴이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올라가자마자 솔로 홈런, 안타를 허용하며 비틀거렸다. 결국 퇴장 당한 감독 대신 코치가 불펜으로 119 콜을 보냈다.

갑자기 호출된 끝판 대장은 영 시원치 않았다. 볼넷(에넌 페레스)과 안타(조나단 비야)를 내주며 불길을 키웠다.

6-4로 급박해진 1사 1, 3루에서 만난 타자가 에릭 테임즈였다. 여기서 카운트 2-2에서 던진 5구째가 기가 막혔다. 92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가장 먼쪽 라인을 절묘하게 통과했다. 구심의 손이 올라가며 세번째 스트라이크가 선언됐다. 관중석에서는 ‘우~’ 하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테임즈는 군소리 한 마디 못하고 뒤로 돌아섰다. 그럼, 감히 어디서. 카펜터와 매서니를 퇴장시켰던 서슬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테임즈와 두번째 만남에서 삼진 잡는 장면. 가장 먼쪽 코스를 통과했다.  mlb.tv 화면

심판의 이름은 존 텀페인이다. 일리노이의 에버그린 파크라는 시골 출신이다. 1983년생으로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끝판왕 보다 1살 어리다). 27살 때인 2010년부터 트리플A와 ML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총 431게임의 경력을 쌓은 뒤 작년 7월 1일 풀타임 메이저리그 심판으로 정규직을 따냈다.

19개조로 돌아가는 빅리그 심판진의 12번 크루(crew)의 막내로 활약(?)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백넘버가 있듯이 심판들에게도 번호가 있다. 그의 넘버는 74번이다.

그는 2015년 5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마이크 파이어스가 다저스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할 때 구심을 맡았다. 당시 97.1%의 높은 정확도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별해냈다. (3볼넷, 10K) 물론 야스마니 그란달은 그때도 “심판의 존에 문제가 있었다”며 투덜거렸지만.

투수들의 무덤에서 첫 등판

콜로라도 덴버는 아름다운 곳이다. 로키산맥의 절경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파랗고, 높은 하늘과 더할 나위 없이 맑은 물이 넘쳐나는 낙원이다.

하지만 야구하기는 별로다. 해발 고도가 높아 덕아웃과 불펜 등 곳곳에 산소 호흡기를 비치해놓고 있어야 한다.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악명은 익히 알려진 터다.

게다가 어제(한국시간 5월 28일)는 날씨까지 변덕을 부렸다. 오후에 쏟아진 비 때문에 양 팀은 경기 전 훈련도 건너뛰었다. 기온도 뚝 떨어졌다. 화씨 54도(섭씨 12도)의 초겨울 날씨였다.

처음 이곳에서 마운드에 오른 끝판왕도 그랬던 것 같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엠스플 뉴스>와 인터뷰에서 그런 심정이 드러난다. “처음 말로만 듣던 쿠어스 필드에서 던졌는데 확실히 투수로서 마운드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볼카운트 싸움도 쉽지 않았고 볼을 던지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74번 심판과 카디널스는 어제 쿠어스필드에서 다시 만났다. 원정 팀은 퇴장의 추억을 지닌 맷 카펜터 대신 1루수 자리에 제드 저코를 내보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화해의 시도는 성공한 것 같다. 경기는 꽤 부드럽게 흘러갔다. 선발 애덤 웨인라이트의 공 109개 중에 66개가 스트라이크로 판정됐다. 덕분에 7회까지 무실점(1볼넷, 6삼진)으로 버텨냈다.

반면 홈 팀의 불만은 알게 모르게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못마땅함은 막판으로 갈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마치 ‘3-0은 말도 안돼. 우리가 30개 구단 중에 득점력 2등(267. 1등은 워싱턴 274) 하는 팀인데…’ 하는 표정이었다.

피치 존에 드러난 명백한 진실, 스트라이크

3-0의 마무리를 위해 끝판왕이 9회를 맡았다.

“오늘따라 공이 유독 미끄러웠다. 손가락 끝에 실밥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에 온 뒤로 마운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날인 것 같았다.” 그런 말처럼 첫 타자 마크 레이놀즈부터 애를 먹었다. 카운트 3볼로 몰린 끝에 중전 안타를 허용했다.

다음 타자는 이안 데스몬드. 1-2에서 바깥쪽 사인이 나왔다. 92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경계선즉 보더라인을 걸쳤다. 아슬아슬한 코스였지만 텀페인의 판정은 단호했다. 스트라이크.

데스몬드가 격렬한 동작으로 반발했다. 하지만 그 순간 TV 중계 화면에 떡~하니 피치존 그래픽이 뜬다. 분명히 라인에 물렸다. 구심은 경고 사인을 보낸다. ‘계속 그러면 너도 퇴장시킬 거야.’

데스몬드가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피치존을 보면 4구째는 분명히 존을 통과했다.    mlb.tv 화면

한 고비를 넘겼나? 그런데 파이널 보스의 불편함은 여전하다. 다음 타자 트레버 스토리를 맞아서도 볼 3개로 시작한다. 한 타자 더 내보내면 신경쓰일텐데….

4구째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한다. 한 가운데만 보고 밀어넣었다. 91마일 직구가 높은 존으로 향했다. ‘빠졌나?’ 걱정되는 공이었지만 다행히 심판의 콜을 얻었다.

하지만 쿠어스 필드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특히 백스톱 바로 뒤에서 있던 남성 팬이 격하게 흥분했다. 아기를 안은 채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지른다. 마운드의 보스는 짐짓 모른 체 먼 곳을 보며 딴청이다. 결국 트레버 스토리는 슬라이더에 걸려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만다.

백스톱 뒤 관중까지 벌떡 일어나서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역시 4구째는 가장 높은 존에 물렸다.  mlb.tv 화면

파이널 보스는 자신만만했다. “나는 스트라이크가 맞다고 생각한다. 숙소에 가서 다시 영상을 자세히 봐야겠지만 확실한 건 심판의 콜이 스트라이크였다는 점이다. 타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도 있을 지 모르지만 그것도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투수 역시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한 공이 볼로 판정되는 경우도 있다.”

30번째 세이브는 그랬다. 마치 그의 야구 커리어 같았다. 매 순간이 아슬아슬하다. 약간 빠진 것 같은데, 조금 벗어난 것 같은데, 그래도 어쨌든 꾸역꾸역 존을 통과시킨다.

마치 전혀 불가능해 보이던 도전을,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은 상황을 끊임없이 이겨나가는. 그래서 치열하게 보더라인(borderline)을 통과해 나가는 야구 인생의 역정(歷程)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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