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커쇼도 홈런은 맞는다"..임기영은 이런 투수다

광주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2017. 5. 29.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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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투수 임기영이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광주 | 김은진 기자

임기영(24·KIA)은 요즘 가끔 4월6일 아침을 떠올린다. 올시즌 첫 선발 등판, 임기영의 야구인생 1군 선발 데뷔전이 있었던 그날이다.

아직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유망주’였던 임기영은 등판 예정이던 4월5일 경기가 비로 취소됐지만 다음날 다시 기회를 얻었다. 역시 비 예보가 있던 그날 오전, 임기영은 혹시 비가 내릴까봐 창문의 블라인드를 굳게 내린 채 열어보지 않았다. 간절했던 그날, 무사히 열린 경기는 임기영의 야구인생 전환점이 됐다. 6이닝1실점으로 완벽한 선발 데뷔전을 치른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KIA 선발 임기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29일 현재 개막 이후 9차례 선발 등판해 완봉승 포함 6승, 평균자책 1.82를 기록중인 임기영은 올시즌 KIA의 보배 중 보배다. 성적으로 따지면 양현종·헥터 노에시(이상 7승)에 이어 3선발 노릇을 제대로 하며 KIA의 선두 질주를 이끄는 실질적인 중심이 돼있다.

세 달 전만 해도 5선발을 다퉜지만 그렇다고 유력한 후보도 아니었던 임기영은 올시즌 KIA 팬들 사이에서 가장 행복한 미스터리다. 도대체 어디서 뚝 떨어졌나 싶은 이 ‘선발 루키’를 파헤치기 위해 인터뷰를 했다. 아직은 소년 티가 잔뜩 남아있지만 어쩌면 이미 오래 전부터 선발로 준비된 투수였다.

■경기 안에서는…승부사

임기영이 시즌 초반 좋은 기록을 쌓고 있는 비결은 볼넷에 있다. 59.1이닝 동안 6개로 9이닝당 볼넷 비율은 전체 2위(0.91)다. 볼넷이 적으니 투구 수가 줄어 경기마다 6~7회 이상을 던진다. 볼넷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이 2017년 임기영의 가장 큰 변화다. 임기영은 “전에는 1군과 2군에서 나 자신이 달랐다. 2군에 가면 편하니까 볼넷이 나오지 않다가도 1군에서 등판하면 어떻게든 맞지 않으려고 코너부터 보고 도망가다보니 볼넷이 많았다. 그런데 상무에서 2년간 즐기는 법을 배운 것 같다”며 “올해는 1군에서도 편해진 느낌이다. 매 타자마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첫번째로 생각하고 들어가는데 무조건 가운데만 보고 공격적으로 던진다. 전에는 맞지 않으려고 던졌다면 지금은 맞더라도 피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던진다”고 말했다.

첫 선발 등판 이후 자신감을 얻으면서 공격적인 피칭은 더욱 강해졌다. 여기에 배짱있고 솔직한 성격이 선발 보직을 맡으며 최상의 효과를 내고 있다.

김기태 KIA 감독이 평가하는 임기영 최고의 장점은 ‘포커페이스’다. 위기 상황에서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 신예임에도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임기영은 “좋든 싫든 표현을 잘 안 하는 데다 금방 잊는 편이다. 한 경기 털리더라도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 거다’ 생각하고 넘어간다. 아버지가 ‘분하지도 않냐’고 뭐라 하신 적도 있다 ”고 웃으며 “홈런을 맞더라도 금세 잊는다. 헥터나 (양)현종이 형도 맞을 수 있는 것이 홈런이다. 메이저리거들, 심지어 (클레이튼) 커쇼도 홈런은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만의 기준은 있다. 결정적인 상황에 수 싸움에서 진 뒤에는 반드시 되갚아야 되는 성격이다. 상대가 대선배든 후배 타자든 자기만의 승부 포인트가 있다. 임기영은 “생각하고 던졌는데 그걸 맞았을 때는 굉장히 분하다. 그런 때는 우리 팀 공격하는 동안 더그아웃 벽에 붙어있는 상대 라인업에서 그 선수 이름만 쳐다보면서 다음 타석을 생각한다”며 “일단 경기가 끝나면 그 뒤에는 잊지만 그 경기 안에서는 꼭 다시 잡아야 마음이 풀린다”고 말했다.

KIA 타이거즈 제공

■경기 밖에서는…아직 막내

임기영의 ‘포커페이스’ 뒤에는 비밀이 있다. 마운드 위에서도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을 글러브로 가릴 때가 많다.

임기영은 “상무 때 형들이나 아는 타자들이 나오면 자꾸 웃음이 난다. 같이 훈련소에 입대해서 2년 동안 지낸 형들과 상대로 만나 대결하는 게 왠지 웃기다”며 “지난 번 삼성전(4월25일)에서는 (이)원석이 형을 첫 타석에서 삼진으로 잡았는데 다음 타석 때 대기 타석에서 형이 자꾸 째려보는 거다. 그게 너무 웃겨서 고개를 돌리고 안 보느라 고생했다”고 말했다. 유격수 김선빈과는 상무 시절 룸메이트였다. 대구 출신 임기영이 전역 뒤 광주에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절친한 형이다. 임기영은 “(김)선빈이 형은 어떤 장난을 쳐도 다 받아준다. 선빈이 형이랑 눈이 마주쳐도 웃기고, 포수 (김)민식이 형이 마운드에 올때도 웃음이 난다. 그럴 때마다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고 웃는다”고 털어놓았다.

이제 선발은 처음인 임기영은 선배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상대는 양현종과 헥터다. 임기영은 “체력은 항상 자신있지만 선발이 처음이라 경기 후반까지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현종이 형에게 많이 물어봤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괜찮아진다’고, ‘매이닝 한 타자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던지라’고 했다. 그래서 매경기 6회부터는 모든 타자를 오늘의 마지막 타자로 생각하고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타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타자에게 묻기도 한다. 임기영은 “코치님들께서 ‘가운데로 들어가는 공도 친다고 다 안타가 되는 게 아니다’고 하지만 정면승부하는 데 대해 조금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지완이 형에게 물어봤다. ‘타자들은 타격감이 좋지 않을 때는 공이 보이더라도 야구장이 꽉 막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타자 생각을 하지 말고 나 자신을 믿고 공격적으로 가운데로 자신있게 던지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선발 수업…아마 그때부터?

임기영이 올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주변의 반응이다. 한화에서 KIA로 이적한 지 2년이 넘었지만 곧바로 군 복무를 했던 터라 올시즌 처음으로 KIA 유니폼을 입었다. 그동안 임기영이 KIA 선수인 줄조차 몰랐던 팬들도 이제 길에서 만나면 몰려들어 사인을 요청해온다. 고향인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께도 친구분들로부터, 동네 아저씨들로부터 ‘기영이’의 경기와 뉴스를 봤다는 연락이 쏟아진다. 데뷔 5년 만에 유명해진 아들 이야기는 요즘 부모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지금 임기영을 선발로 잘 출발하게 해준 성격과 인성은 부모님이 만들어주셨다. 임기영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운동선수는 예의와 인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투수로서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잡아주셨다”며 “낚시에 자주 데려가셨다. 투수는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며 절대 못 움직이게 해서 몇시간이고 낚싯대만 보고 앉아있어야 했다. 담력을 키워야 된다고 캄캄해진 뒤에 차에 갔다 오라고 하셨다. 손전등 하나 들고 나가보면 일부러 산길을 지나가도록 차를 집 반대편에 대놓으셨었다. 그런 것들이 지금 마운드 위에서 특히 선발로 뛰면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목표는…지금처럼

캠프 내내 준비는 했지만 얼떨결에 선발로 데뷔했고 자리를 지키게 된 임기영은 목표를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고 시즌을 시작했다. 아직은 배우는 과정이라 큰 목표는 없다. 등판하는 경기에서 최대한 KIA가 많이 이기는 것, 볼넷 없이 많은 이닝을 던져 선발 역할을 잘 해내는 것뿐이다. 야구인생의 목표는 하나 있다. 임기영은 “지금처럼, 항상 마운드에서 도망가지 않고 배짱있게 던지는 투수가 되고 싶다. 모든 사람이 나를 생각하면 ‘맞더라도 시원하게 정면승부해 맞는 투수’라고 기억할 수 있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임기영의 오늘을 만든 부모님에게도 올시즌 목표가 한 가지 있다. 아들이 마운드에서 던지는 모습을 야구장에서 직접 보는 것이다. 넘치는 배짱과 달리 징크스에 예민한 임기영은 “아는 사람이 야구장에 오면 신경쓰여 못 던진다”며 부모님의 ‘직관’을 극구 말리고 있다. 아들이 첫승을 거두고 2승째를 거둔 뒤 야구장을 방문하려다 실패한 부모님은 “그럼 7승을 하면 그때 가겠다”고 아들과 타협했다. 임기영은 “부모님과 통화를 매일 한다. 잘 던지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지만 정말로 2군에서도 아는 사람이 오면 꼭 못 던진 경험이 있어 오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다”며 “행운의 숫자로 7승을 고르신 것 같은데, 아마 몰래 오실 것 같다. 그래도 난 알 것 같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걱정”이라며 웃었다.

그날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그때는 몰랐다. 벌써 6승, 임기영은 이제 7승에 도전한다.

<광주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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