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 정숙씨 논쟁과 문자폭탄 그리고 '문빠'

김성곤 2017. 5. 2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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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열성 지지층의 전면 등장
진보언론과 관계·인사청문회 정국서 文대통령 강력 엄호
노사모→친노→노빠→문빠로 진화..문베충·문슬림 혹평도
현실적인 시민권력의 등장..정치지형의 새로운 변화 예고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거처를 청와대로 옮긴 이후 처음으로 여민관 집무실에 출근하기 위해 부인 김정숙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일정총괄팀장 등과 함께 관저에서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주 가량이 지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 소통과 인사에 상대적으로 묻히기는 했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층의 광범위하고 열성적인 현실정치 참여’ 현상입니다. 지난 연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불붙었던 직접 민주주의의 불길이 현실정치에서도 강력한 파워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문빠’(문재인 지지층을 비하하는 표현, 마땅한 대체표현이 없어 이하 사용)의 전면적인 등장입니다. 문빠는 진보언론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왔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당시에는 야당 청문위원들에게 집단적으로 항의성 문자폭탄을 보냈습니다.

평가는 극과 극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지만 극성스러운 문빠들이 오히려 대통령을 망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부터 다소 과도해 보이기는 해도 네티즌의 정치참여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옵니다. 전자의 경우 비판은 신랄합니다. 가는 곳마다 집단적 린치를 반복하는 문빠들의 행태는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입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언론소비자운동이나 주권자의 정치참여라는 강력한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호칭의 인플레 혹은 민주화…김정숙 여사 vs 김정숙 씨

우리 사회에서 호칭은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어떤 호칭을 쓰느냐에 따라서 권력의 역학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과거 대통령을 각하, 대통령의 부인을 영부인이라고 부를 때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자녀는 영애 또는 영식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썼습니다. 지금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예전에는 누구나가 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 이야기입니다. 최순영 전 의원은 유신정권 당시 공장 노동자로 일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이 정말 ‘영애’인줄 알알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당신의 이름이 ‘영애’이고, 남동생의 이름이 ‘영식’인 줄 알았습니다. 많이 배워 똑똑한 줄 알았던 TV 아나운서들이 전하는 ‘영애 양이 어쩌고, 영식 군이 어쩌고’하는 뉴스 덕분이었죠. 당신의 이름이 박근혜이고, 영애(令愛)는 고귀한 집안의 따님한테 붙는 말로 ‘사랑스런 꽃’이라는 예쁜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제 대통령을 ‘각하’로 부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영부인, 영애, 영식이라는 호칭 역시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호칭의 민주화로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반면 우리 사회는 호칭의 인플레 현상이 난무합니다. 한마디로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논리입니다. 국회의원은 보통 “의원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립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져서 전직 의원이 되고 다른 직업을 가지더라도 모두 “의원님”입니다. 더 이상한 게 한 번이라도 내각에 참여하게 되면 주변에서는 해당 의원을 “장관님”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일인지상 만인천하’라는 국무총리를 하다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해당 정치인이 국회의원을 계속 하든, 학교로 돌아가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무조건 ‘전직 총리’라고 표기하고 “총리님”이라고 부릅니다. 아울러 국회부의장 역시 “부의장”이라고 잘 부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의전 때문인지 몰라도 “의장님”이라고 호칭을 격상해서 사용합니다. 여야 정당에서 대표나 원내대표를 하다가 임기가 끝난 뒤 물러나면 그냥 의원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대개의 경우 ‘전직 대표’라고 쓰고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호칭의 민주화와 인플레 현상을 굳이 이야기한 것은 과연 대통령의 부인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 게 맞느냐는 논쟁입니다. 과거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디스맨(This man)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지맨(Easy man)으로 불렀던 것 이상의 논란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한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관련해 지난 10일과 13일 김정숙 씨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수많은 기사 제목에 “유쾌한 정숙씨”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적지 않았지만 기사 본문에 김정숙 여사가 아닌 김정숙 씨라는 표현이 나온 것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오비이락인지 몰라도 청와대는 지난 14일 대통령 부인 호칭과 관련, ‘영부인’이 아닌 ‘여사’라는 표현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문제는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여민관으로 첫 출근할 당시를 다룬 기사입니다. 해당 언론은 ‘김정숙 씨 배웅 받으며 참모들과 걸어서 집무실로 이동’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기사 본문에는 “김정숙 씨” “김 씨”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됐습니다. 대다수 언론이 “김정숙 여사”라고 표기했던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납니다. 온라인공간에서는 이후 엄청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해당 기사에는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대부분 “예의를 지키라”는 비판이었습니다. 해당 언론사는 이에 “2007년부터 내부 표기방침을 정해 대통령 부인을 ‘씨’로 표기하는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단, 필자의 선호에 의해, 혹은 문맥상 필요에 의해 ‘여사’를 쓰는 것도 허용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국립국어원도 ‘씨’와 ‘여사’의 높임 정도에는 차이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 ‘여사’는 ‘누구의 처’라는 의미에서 남성 의존적이라는 지적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를 전후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행태가 극성스럽다고 비판한 일부 진보언론 역시 십자포화를 맞았습니다. 문빠들은 비난댓글은 물론 전화항의, 후원금 중단, 불매운동 등 강력한 압박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이러한 문빠들의 행동에 대해 일부에서는 언론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정당한 소비자주권운동이라는 반박도 거세게 일었습니다.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도중 한 야당 의원이 청문회를 시청 중인 시민으로부터 온 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與 방어 vs 野 공세 고정관념 무너뜨린 ‘문자폭탄 인사청문회’

공직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여야 대결이 기본 축입니다. 여당은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방패를 들고 나옵니다. 야당은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을 들고 공세를 폅니다. 새 정부 들어 첫 인사청문회는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었습니다. 10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지다보니 여야의 태도가 확 바뀌었습니다. 더 특이한 점은 여야의 청문회 과정에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사태 청문회에서도 나타난 현상입니다. 청문회를 지켜보던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해 수많은 제보를 통해 여야 의원들이 진실을 밝히는 데 일조한 바 있습니다.

이번 인사청문회는 양상이 다소 달랐습니다.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으로 여겨지는 네티즌들이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문자항의를 보낸 것입니다. 과거 청문회에서는 볼 수 없는 양상이었습니다. 표적은 이낙연 후보자 검증과 관련해 병역면제, 탈세, 위장전입 의혹 등을 제기한 야당 의원이었습니다. 국민의당 소속 김광수, 이태규 의원은 물론 자유한국당 강효상, 정태옥, 경대수 의원 등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항의성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에 시달렸습니다.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은 문자테러, 문자폭탄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맹비난했습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남아있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비슷한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반론에 나섰습니다. 표 의원은 ‘국회의원에게 주시는 국민의 문자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표 의원의 주장은 큰 틀에서 주권자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현 다시 말해 직접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이해하자는 게 핵심입니다. 표 의원은 지난 연말 탄핵 사태 와중에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한 이후 누적 건수로 수십만 건이 넘는 항의와 비난과 욕설은 물론 응원과 지지 문자를 받았습니다.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경우 “휴대전화에 읽지 않은 문자가 2만7400개 정도라 문자 앱이 잘 작동이 안 된다”고 밝힌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표 의원은 “선거기간 동안 불법 정보수집이 의심되는 정치인들의 국민 대상 무차별 문자세례 부터 반성했으면 좋겠다”며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를 제외하고는 모든 언론보도가 인지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정치인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국민의 문자 관심’에도 적용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이어 “정치인들 스스로 연락달라고 명함뿌리고 연락처를 공개해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욕설, 모욕,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서는 의법 조치를 통해 스스로나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 그외 국민의 연락행위는 당연한 주권자의 권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빠, 盧서거 부채의식에서 출발…文대통령 강력한 호위무사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적 지지층을 뜻하는 문빠는 갑자기 생겨난 말이 아닙니다. 노사모→친노→노빠→문빠로 이어져왔습니다. 문빠의 뿌리는 노사모입니다. 노사모는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으로 자발적인 정치참여의 대명사였습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에는 2002년 민주당 국민참여경선 당시 다른 후보 관계자가 노사모 회원들을 향해 “일당을 얼마를 받길래 점심도 먹지 않고 선거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입니다. 참여정부 이후 ‘친노’라는 표현이 보편화되면서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새정부에서 2선후퇴를 선언한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19대 총선 직전이던 2012년 2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서적 의미에서 친노의 출발은 지난 2000년 16대 총선으로 봐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는 전국적인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열풍으로 이어졌고 ‘바보 노무현’ 바람이 거셌다. 낙선자가 당선자보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이때 만들어졌다.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친노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다. 코드정치, 패거리정치의 의미로 보수 언론이 공격할 때 쓰는 일종의 약간 조롱 섞인 뜻이 강했다. 기원 자체는 좋은 게 아니다.”

시작은 그랬지만 어쨌거나 ‘친노’라는 표현은 정치판의 대세가 됩니다. 특정 정치세력을 상도동계, 동교동계라고 표현했던 3김 시대 이후에는 친(親)이라는 한자와 정치 지도자의 성(姓)을 결합한 표현이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따르던 정치세력을 각각 친이(親李), 친박(親朴)이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입니다. 참여정부 말기에는 열린우리당 해체 과정에서 비노(非盧) 또는 반노(反盧)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사용됐고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주이야박(晝李夜朴, 낮에는 친이계 밤에는 친박계)이라는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다만 특정 정치인들의 열성 지지자들은 대체로 ‘무슨무슨 빠’라는 비하의 언어로 불렸습니다. 노빠, 박빠, 안빠가 대표적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박빠’보다는 ‘박사모’가, ‘노사모’보다는 ‘노빠’가 더 익숙한 표현으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참여정부 말기 ‘노빠’는 정치적 실패의 대명사로 여겨진 언어 프레임이었습니다. 노빠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문빠로 부활합니다. 문빠는 이후 정치적 반대자들로부터 진화된(?) 표현까지 얻습니다. 문베충(문재인 지지자+일베), 문슬림(문재인 지지자+이슬람)이 대표적입니다. 누구는 극성스러운 문빠들의 행태를 촌철살인으로 꼬집었다며 박수를 보냅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지나친 표현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문빠의 시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처럼 실패의 길을 가지 않도록 힘든 일은 도맡아하겠다는 열성 지지층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면이 적지 않습니다. 노빠와 문빠 역시 같은 듯해 보여도 어떤 면에서는 달라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문빠’가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시민권력이 됐다는 점입니다. 언론과 정치분야의 객체와 대상에서 벗어나 주체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마저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자율적인 집단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정치인들의 지지층을 각성시켜서 시민의 정치참여를 보다 활성화시키면서 새로운 정치지형의 변화를 이끌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대선에서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지지층에서 그 싹이 보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느냐 실패한 대통령이 되느냐’ 나중에 어떠한 평가를 받더라도 그 몫의 상당 부분은 이제 문빠들이 함께 짊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진검승부는 시작됐습니다.

김성곤 (skz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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