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저 집 아이, 백신 안 맞았어요"..독일 '안아키' 부모 신고 추진

심진용 기자 2017. 5. 2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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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한국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젊은 부모가 대다수인 안아키 회원들은 아이들의 예방접종이 건강에 해롭다고 믿는다. 부작용이 뒤따르고 자연면역력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백신이 위험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며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사회 전체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의학계는 반박한다. 하지만 예방접종을 기피하는 현상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2003년 무렵부터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의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백신이 여아를 불임으로 만들거나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헛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주지사까지 나서서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1년가량 금지하자 이곳은 금세 소아마비의 온상이 됐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주민들이 ‘미지의 질병’ 에볼라를 이해하지 못해 백신을 거부했다. 2014년 기니에서는 주민들에게 에볼라의 무서움을 알리려던 자원봉사자 8명이 살해되기도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미국과 탈레반의 싸움이 문제가 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이곳에서 ‘가짜 접종요원’들을 정보수집요원으로 활용한 사실이 발각됐다. 파키스탄 탈레반 등 무장단체들이 백신 접종을 금지하면서 파키스탄은 소아마비가 근절되지 않은 마지막 나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최근 국내의 ‘안아키’를 이끄는 한의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수두 파티’를 언급했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어울리며 수두를 겪게 해 자연적으로 면역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준다는 수두 파티는 미국에서 처음 유행했다. 199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홍역·볼거리·풍진의 혼합 백신인 MMR이 아이에게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게 발단이 됐다. 논문은 표본 수가 모자라는 등 허술한 것으로 곧 판명됐지만 백신 공포는 가라앉지 않았다.

2000년 미국 정부는 홍역이 사실상 근절됐다고 선언했지만, 2014년 들어 갑작스럽게 홍역 환자 667명이 발병했다. 2012년에 비해 4배 가까이 많았고, 2013년과 비교하면 10배가 넘었다. 2015년에는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1~2월 두 달 동안 150건이 넘는 집단 홍역 발병 사태가 벌어졌다. 자녀의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는 상대적으로 소수다. 그러나 전염병은 이 작은 구멍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수 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만, 이는 주변의 다른 아이들이 백신을 맞아 전염병이 퍼질 조건을 미리부터 차단한 덕분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율라 비스는 저서 <면역에 대하여>에서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자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라고 썼다. 개인의 몸이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내 아이의 자연적인 건강’만 주장하다가, 공동체 전체의 보건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피해는 빈곤한 취약계층 아이들이 덮어쓸 가능성이 높다.

예방접종 거부가 늘자 독일과 이탈리아 등은 규제 강화에 나섰다. 독일 정부는 다음달 1일 자녀의 예방접종을 입증하지 못한 부모를 유치원 등 육아기관이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탈리아는 지난주 자녀의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에게 벌금을 매기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4월까지 독일에서는 홍역 환자가 583명 나왔다. 이탈리아는 올 들어 발생한 홍역 환자가 2000명이 넘어 지난해 전체 발생자의 3배에 가깝다.

그러나 정치권이 공포를 부채질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백신을 맞은 아이가 자폐아가 되는 등 부작용 사례가 많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취임 초에는 백신 안전을 검증하는 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에 백신 위험론자를 앉히려 했다가 논란을 낳았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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