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조선소의 피눈물..은행 보증 기피로 일감 포기

경남 고성/전수용 기자 2017. 5.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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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통영·고성 르포
"이러다간 모조리 말라 죽는다"
영업이익 100억 넘는 회사도
은행 보증 받기 '하늘의 별 따기'
낙찰 받고도 최종계약 포기 속출
국내외 선사들, 중국으로 발길 돌려
수수료도 0.5%→4%로 껑충
은행 "덤핑 수주 의혹 때문에.."
국내 소형 조선소들이 선박을 수주하고도 은행에서 RG(선수금환급보증)를 발급받지 못해 수주가 취소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5일 경남 고성의 조선소인 한국야나세 작업장(야드)에는 신규 수주가 중단돼 선박 부품 제조나 수리 작업만이 진행되고 있다. /고성=전수용 기자 ([GIJA] 전수용 기자 jsy@chosun.com[/GIJA])

경남 고성의 조선·기자재 업체인 삼강엠앤티의 송무석 회장은 요즘 밤잠을 자지 못 한다. 천신만고 끝에 따낸 수주 물량이 한순간에 날아갈 위기이기 때문이다. 송 회장은 작년 8월 우민해운이 발주한 케미칼 탱커선 3척(516억원)을 수주했는데 1척만 은행 보증(RG·선수금환급보증·키워드 참조)을 받았고, 나머지 2척은 은행 측이 보증을 거부해 거의 취소 직전이다. 그나마 1척도 0.5% 정도인 수수료를 4%로 올려줬고, 주식과 예금을 담보로 맡기면서 은행에 6개월 동안 사정 끝에 겨우 RG를 발급받았다. 송 회장은 "100억원 넘는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인데도 RG 발급을 해주지 않는 건 이해가 안 된다"면서 "일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은행 보증(RG)을 받지 못해 수주한 선박 계약을 날려야 한다는 현실이 정말 답답하다"고 말했다.

◇은행, 소형 조선소에 RG 발급 거부… "비 오는데 우산 빼앗는 격"

지난 25일 경남 고성군의 덕광중공업. 4만3000㎡(1만3000평) 야드(선박 건조작업장)엔 100t이 안 되는 소형 어선(漁船) 다섯 척을 50여 명의 근로자들이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야드의 10분의 1은 텅 빈 상태였다. 회사 한 직원은 "일감이 없어 어선을 만들고 있지만 이마저도 7월이면 끊겨 회사문 닫아야 할 판"이라며 "RG 때문에 수주가 안 돼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덕광중공업은 작년부터 동남아 등 국내외 선사들로부터 소형 유조선 등 10여 척 수주를 추진했다. 하지만 은행에서 RG 발급을 받지 못해 계약은 최종 단계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회사 관계자는 "선박 발주가 있어도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다른 소형 조선소 사정도 마찬가지다. 컨테이너선 고박 장치를 생산해 대우조선해양에 납품해온 한국야나세는 작년 11월 국가가 발주하는 어업지도선 2척을 수주했다. 하지만 낙찰을 받고도 은행에서 보증을 받지 못해 최종 계약이 무산됐다. 설상가상으로 계약 무산 책임을 지고, 위약금 21억원(계약금의 5%)까지 물어야 할 처지이다. 한국야나세는 RG 때문에 아예 신규 선박 수주 영업을 포기한 채 수리 영업으로만 연명하고 있다. 이상석 덕광중공업 대표는 "은행에 새로 대출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선박 건조 보증만 해달라는 건데 그것도 안 된다"며 "업황 좋을 때는 수수료 챙기려고 서로 RG를 발급해 주겠다더니 이젠 은행 때문에 소형 조선소들이 모조리 말라 죽을 지경에 처했다"고 말했다.

◇소형 선박 발주 잇따르는데… 중국 조선소 찾는 선사들

소형 조선소들이 RG를 받지 못하자 외국 선사는 물론 국내 선사조차 중국 조선소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올해 국내 해운사가 발주한 선박 20척 중에서 13척을 중국 조선소가 가져갔다. 중국 정부는 선사에 선박 건조 대금을 90%까지 대출해주고, 가격도 우리보다 10%가량 싼 이유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RG 발급이 안 되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우영준 한국야나세 대표는 "외국 선주사들은 해양 사고에 대비해 선가가 10% 비싸더라도 기술력이 좋은 한국 조선소에 배를 맡기려 한다"며 "하지만 RG 발급이 아예 안 되는 분위기이다 보니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다가 중소 조선소는 신규 대출 중단, 대출금 상환 연장 거부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E 중공업 관계자는 "이 지역 조선소 3분의 2가 문을 닫았고, 살아남은 조선소도 직원들을 절반 이상 내보냈다"며 "이들은 건설 일용직이나 조개잡이 일당직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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