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공동체 건강 위협하는 세계의 '안아키'들

심진용 기자 2017. 5. 28. 17: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조류독감 백신에 독성물질이 들어있다는 주장을 담은 백신 거부 운동가들의 포스터.

최근 국내에서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젊은 부모가 대다수인 여기 회원들은 아이들의 예방접종이 건강에 해롭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부작용이 뒤따르고 자연면역력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안아키 설립자인 한 한의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마음 같아서는 전국민 ‘수두파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수두 예방접종을 할 것이 아니라 수두 걸린 아이와 어울려 놀게 해 적극적으로 수두를 퍼뜨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수두를 한번 겪고 나면 다시 걸릴 일도 없고 면역력도 강해진다는 논리죠. 의학계는 안아키의 주장은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예방접종 거부는 사회 전체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커버스토리]병원부터 가면 무지한 엄마? 이들은 왜 ‘안아키’에 빠졌나

대한한의사협회, 방통위·네이버에 ‘안아키’ 카페 폐쇄 요청

예방접종을 기피하는 현상은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2003년 무렵부터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 많은 부모들이 자녀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신이 여아을 불임으로 만들거나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헛소문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주지사까지 나서서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1년 가량 금지하면서 이곳은 금세 소아마비의 온상이 됐습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주민들이 ‘미지의 질병’ 에볼라를 이해하지 못해 백신을 거부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부가 없는 질병을 꾸며냈다는 음모론이 나돌았습니다. 2014년 기니에서는 주민들에게 에볼라의 무서움을 알리려던 자원봉사자 8명이 살해되기도 했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미국과 탈레반의 싸움이 문제가 됐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이곳에서 ‘가짜 접종요원’들을 정보수집요원으로 활용한 사실이 발각된 탓이 컸습니다. 파키스탄탈레반 등 무장단체들이 백신 접종을 금지하면서 파키스탄은 소아마비가 근절되지 않은 마지막 나라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파키스탄 자폭테러로 15명 사망···‘백신 접종 반대’ 탈레반 소행?

보건의료 인프라가 잘 돼 있는 서구 사회에서도 예방접종 거부 운동은 여러 형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아키 한의사가 언급한 ‘수두파티’는 미국에서 처음 유행했습니다. 1998년 영국 소화기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홍역·볼거리·풍진 혼합 백신인 MMR이 아이에게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게 발단이 됐습니다.

논문은 표본 부족 등의 이유로 금방 허술한 것으로 판명됐지만 백신 공포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순수 자연을 완전무결한 것으로 여기고 백신 같은 인공물은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극단적인 이분법도 백신 거부 운동을 부채질했습니다.

2000년 미국 정부는 홍역이 사실상 근절됐다고 선언했지만, 2014년 들어 홍역 환자 667명이 갑작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전 해에 비해 4배 가까이 많았고, 2012년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많은 숫자였습니다. 2015년에는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1~2월 두 달 동안만 150건이 넘는 집단 홍역 발병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백신 거부 운동의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자녀 예방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는 상대적으로 소수입니다. 한국 안아키 회원도 6만명에 이른다고 하지만 전체 인구로 따지면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이지요. 그러나 작은 구멍으로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전염병은 소수를 시작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집니다. 2015년 미국에서도 최초 홍역 발병 환자 12명 중 6명이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만, 이는 주변의 다른 아이들이 백신을 맞아 전염병이 퍼질 조건을 미리부터 차단한 덕분입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율라 비스는 저서 <면역에 대하여>에서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자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라고 썼습니다. 개인의 몸이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내 아이의 자연적인 건강’만 주장하다가, 공동체 전체의 보건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피해는 빈곤한 취약계층 아이들이 덮어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Now in 워싱턴]우리에겐 낯선 '백신 찬반 논쟁'

예방접종 거부 운동이 확산되고 문제가 잇따르면서 독일과 이탈리아 등은 규제 강화에 나섰습니다. 독일 정부는 다음달 1일 자녀 예방접종을 입증하지 못한 부모를 유치원 등 육아기관이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는 지난주 자녀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에게 벌금을 매기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지난 4월까지 독일에서는 홍역 환자가 583명 나왔습니다. 지난해 전체 발생자 325명을 이미 크게 넘어섰습니다. 이탈리아는 올해 들어 발생한 홍역환자가 2000명을 넘습니다. 지난해 전체 발생자의 3배 가까운 숫자입니다.

그러나 백신에 대한 불신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나서 공포를 부채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백신을 맞은 아이가 자폐아가 되는 등 부작용 사례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의사들이 거짓말을 한다”며 백신을 불신하는 주장을 여러차례 해왔습니다. 대통령 취임 초에는 백신 안전을 검증하는 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에 백신이 자폐아를 만든다는 이론을 지지하는 로버트 케네디 2세를 앉히려 했다가 논란을 낳았습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