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손주들 생각하며 어떻게든 내 선에서 막아야지

2017. 5. 2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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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사드 반대' 성주 소성리 부녀회장 임순분

[한겨레]

“우리도 처음엔 ‘왜 하필 소성리냐?’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계속 집회하면서 확실히 깨닫게 된 게, 사드는 여기 소성리뿐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있어선 안 되겠다는 거예요.” 4월26일 사드 기습반입 당일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실신해 병원에 실려갔던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은 “그날의 상황이 너무 생생해서 눈만 감으면 사드가 들어온다든가, 탱크가 들어오는 악몽을 계속 꾼다”고 말했다.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작전은 치밀하고 주도면밀했다. 대통령 선거를 2주 남짓 앞둔 4월26일 자정 무렵, 전국에서 차출된 경찰병력 8천여 명이 마을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새벽 2시께, 경찰은 마을회관 앞과 골프장으로 가는 905번 국도를 3~4겹으로 차단하고 통행을 금지했다. 한밤중에 소식을 듣고 소성리로 달려가려는 인근 마을 주민들은 경찰의 통제에 가로막혀 발만 동동 굴렀다. 고립무원의 마을에는 수십 명의 주민들뿐, 그들 대부분은 70~80대의 할머니들이었다.

새벽 4시43분, 사드발사대 6기와 레이더, 요격미사일, 발전소와 냉각기 장비를 실은 군용 트레일러 8대가 마을회관 앞을 통과했다. 불가항력이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뒤인 6시40분께, 울부짖는 할머니들을 완력으로 제압하고 경찰은 군용트럭 10여대를 추가로 통과시켰다. 갈비뼈에 금이 가고,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진 부상자가 12명, 사력을 다해 매달리다 주저앉은 주민들은 망연자실 눈물을 떨궜다. 경찰은 “성공적인 사드 반입”를 자축하며 작전에 공을 세운 경찰관 305명에게 표창장과 격려금을 수여했다.

대선이 끝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한국의 사드 배치를 추진한 전임 대통령은 수인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지만, 그가 임기 중 내린 지시는 해체되지 않은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카운트다운을 계속하고 있다. 새 대통령과 이전 정부의 국방장관이 동거하는 이 기묘한 시기에, 성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난해 7월 이후 300일이 넘도록 사드 반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성주 소성리 주민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16일, 성주 사드 반대 투쟁현장을 찾아갔다.

대선 2주남짓 앞둔 4월26일 자정 무렵
경찰병력 8천명이 마을을 에워쌌다
뒷골목 통해 간신히 마을회관 도착해
울부짖으며 방송하고 비상벨 눌러
70~80대 할머니 80여명으론 속수무책 몸싸움하다 뼈 다치고 실신한 사람들
도로 꽉 막혀 구급차도 제때 못 왔다
“한시간만 버티면 사람들 올 것” 생각
산 세 개 넘어 딱 한 사람만 겨우 도착
‘5·18 광주에서, 이렇게 했겠구나’ “‘사드 레이더 앞에서 참외 깎아먹고
여기 이사 와 살겠다’는 국회의원들, 두말 말고 딱 3년만 와서 살아봐라”
“즈그덜 맘대로 결정하고 들여왔으니
그냥 미국으로 보내버리라 카세요” “여긴 80% 이상 새누리당 찍던 사람들
56% 나온 건 많이 내려간 거예요.”
“이번에 할머니들하고 결의를 했어요,
새 정부 들어서도 해결이 안 된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청와대 앞으로 가자고”

사드만 아니면 조용히 살았을 사람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남김천 톨게이트를 지나서 차로 20여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로 가는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사드 반대’라고 쓰인 깃발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꽂혀 있었다. 동네 담벼락이나 비닐하우스 위에도, 성주 참외가 그려진 화물트럭 컨테이너에도 같은 구호가 쓰여 있었다. 투쟁본부 격인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다다르자, 도로변에 사람 키 높이로 알록달록하게 채색해 쌓아올린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경찰 진입에 저항하는 바리케이드용인 것 같기는 하나, 파스텔톤으로 예쁘게 색칠해서 사드반대 구호를 적어놓은 모양이 정성스레 소원을 빌기 위해 쌓아놓은 돌탑처럼 고왔다. 긴장과 평온, 투지와 해학이 교차하는 풍경이었다.

도로 한가운데 “성주 소성리 주민과 평화를 지키는 시민들”이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두어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진입차량을 검문검색하고 있었다. 4월26일의 사드장비 기습반입 이후, 추가반입이나 공사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비상대책을 세운 것이라 했다. 검색대 뒤 도로를 가로질러, 네 명의 여성주민이 색칠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손팻말을 든 채 일렬로 앉아 있었다. 그들 중에 소성리 부녀회장 임순분(63)이 있었다. 꽃무늬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어서 얼른 알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3월11일,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된 다음날 열린 광화문광장의 마지막 촛불집회에서 나는 그를 처음 보았다.

“저는 사드가 배치된다는 지역, 성주 소성리 마을 주민입니다. 어제는 정말 기쁜 날이었습니다.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케이크를 자르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을 주민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바로 사드 때문입니다. 박근혜가 탄핵된 것처럼 이제 사드도 탄핵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사드는 기습배치 되었고 그는 여전히 아스팔트 지열이 후끈거리는 도로 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소성리 마을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던 할머니들이 넌지시 자리를 비켜주며 우리 일행에게 수박 접시를 내밀었다.

-이곳 소성리 주민 수가 얼마나 됩니까?

“70여 가구, 100명쯤 됩니다. 대부분 70~80대 혼자 사는 노인분들이에요. 나이로 치면 저도 거의 막내급이죠.(웃음)”

옅은 웃음을 지었지만, 그는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성주에 사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40년 되었어요.”

고향은 경북 의성이라고 했다. 머슴 두엇과 유모까지 거느린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갑자기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야간중학교 중퇴를 끝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스무 살에 대구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다.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겠다는 남편을 좇아 마지못해 시가가 있는 소성리로 들어오긴 했으나 농촌생활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농촌살이와 마을에 애정을 가지게 된 건, 소성리에 젊은 주부들 8명과 팔부녀회를 조직하면서부터였다. 산나물을 뜯고 말릴 때 드는 시간과 노임을 계산해 보기도 하고, 부녀회 공동으로 병아리를 키우기도 하는 일이 즐겁고 보람찼다.

지역의 농민회와 여성농민회 일을 두루 경험하며 90년대 초반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으로 일했다. 그러던 그가 문득 모든 대외활동을 정리하고 두문불출 칩거상태에 들어갔다. 남편의 부도로 주변에 큰 폐를 끼쳤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실의에 빠져 자신을 돌보지 않던 남편도 재작년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사드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작은 마을 부녀회장으로 동네 바깥일에는 평생 관여하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드가 소성리로 오게 된 거군요.

“군에서 열리는 사드집회에 나갈 때도 전 멀찍이 그늘에 서 있다 오곤 했어요. 근데, 소성리를 제3부지로 결정하면서 군수가 주민들한테 설명도 안 해주고, 성주지역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사드 반대하면 종북좌빨’이란 소리나 하고 있고. 나도 모르게 마이크를 잡고 ‘소성리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개돼지가 아닌 사람이 살고 있다고요’ 소리를 질렀지요.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주민 80명에 경찰 8000명 투입된 작전

-지난번 사드장비가 들어오던 날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가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 가셨다면서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그날 이후로 몸이 많이 아파요. 오늘도 오전 내내 누워 있다 나왔어요.”

-많이 놀라셔서….

“잘 때마다 악몽을 꿔요. 그날의 상황이 너무 생생해서 눈만 감으면 사드가 들어온다든가, 탱크가 들어오는 꿈을 꾸고 놀래서 깨요. 그날(26일) 이전부터 한 3일간, 계속 비상이었거든요. 사드가 아닌 다른 공사차량이 수시로 들이닥쳐서, 주민들이 그거 막느라고 새벽부터 뛰어나오고, 아침도 굶고 겨우 수습해서 점심 먹으려고 하면 또 차량이 들어오고, 계속 그런 상황이 반복됐어요. 주민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려고 간 보기를 하면서 미리 진을 빼놓는 작전이었죠.”

-26일 사드가 들어오는 걸 언제 아셨어요?

“3일을 밤낮없이 시달리니까, 성주에서 온 활동가들이 ‘부녀회장님, 오늘은 들어가 좀 쉬십시오’ 해서 자정 무렵에 집에 들어가 청소 좀 하고 막 자려던 참이었어요. 새벽 1시5분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사드장비 같은 게 여길 향해 오고 있다’고 우리 지킴이들이 전화를 한 거예요. 벌떡 일어나서 대문을 딱 열었는데, 제 앞에 펼쳐진 광경이….”

-왜요?

“열두시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동네가, 그새 차량으로 꽉 차고 경찰이 새까맣게 몰려오더라고요. 무서워서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어요. 바로 못 나왔어요. 들어가서 친구한테 전화해서 ‘내가 지금 회관으로 가야 하는데 5분 안에 도착 못하면 나에게 무슨 일 생긴 줄 알라’고 했죠. 어떤 주민이 그런 얘길 했어요. 상황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부녀회장님을 연행할 수도 있다. 항상 주변을 감시하고 살피라고요. 그 일주일 전인가 열흘 전부터 저희 주변에 낯선 사람들이 서성이는 게 목격되곤 했었거든요. 사복경찰 같은 사람들.”

-그래서 마을회관까진 어떻게 가셨어요?

“앞의 넓은 길로 못 가고 뒷골목 통해서 겨우 갔죠.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방송을 했어요. ‘지금 긴급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사드가 들어오고 있답니다!’ 울부짖으면서 한 7번 방송하고 비상벨을 눌렀어요. 이거 원래 산불이나 사고 났을 때나 누르는 건데, 도통 쓸 일이 없다가 이번에 첨 쓴 거죠. 그 소리에 주민들이 뛰어나왔는데 다해야 한 80명 정도?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은 전국에서 차출해서 8천 명인가 만 명인가 왔다더만요. 차벽으로 도로에 접근 못하게 길게 막아놓고 양옆으로 경찰이 네 줄씩 섰어요. 사드가 들어오게 가운데 통로만 비우고요. 주민들은 완전히 우물 안에 올챙이 몰리듯이 바글바글 몰려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요. 4시 좀 넘어서 사드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2차로 장비가 들어올 때 경찰 팔꿈치에 인중을 맞아 기절한 임순분 회장은 당시 충격으로 입천장이 찢어지고 잇몸이 터져 결국 이를 뽑았다. 그는 인터뷰를 위해 실내에 들어선 뒤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광주가 이랬겠구나!’

눈앞으로 사드장비가 속속 지나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을주민들과 할머니들이 경찰을 붙들고 애원했다. “느그 어매, 할매 같은 사람들한테 어찌 이럴 수 있냐?”고. 개중에는 같이 울어주는 경찰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상부의 지시를 거스를 수 있는 경찰은 없었다. 몸싸움으로 뼈를 다친 사람들과 실신한 사람들 때문에 구급차를 불렀지만, 꽉 막힌 도로 때문에 응급차가 오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비규환이었다.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죠?

“사드가 들어오는 걸 보고, 혼자 부엌에 들어와서 막 울었어요.(목멘 소리) 엉엉 울고 있으니까 우리 부녀회원 한 분이 와서 ‘회장님, 정신 차리소. 사람들이 밥도 굶고 싸우는데 우리가 밥이라도 해줘야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더’ 그러는데, 내가 어찌나 미안하고 부끄럽던지.(눈물) 그렇게 우리가 환장하고 울고불고하는 동안에도 경찰이 철수를 안 했더라고요. 이상하다 싶었더니, 다른 장비가 들어온대요. 한밤중에 껌껌할 때 시작해서 날이 훤하게 밝을 때까지 주민들을 몰아내고 들어오는 차량을 보면서 저희가 얼마나 분개를 했겠습니까? 6시쯤 2차로 장비가 들어올 때 경찰 팔꿈치에 인중을 맞아서 기절해버렸지. 그때 앞이빨이 가격을 당해서 입천장이 찢어지고 잇몸이 터지고, 결국 지난주에 이빨을 뽑았어요. 그래서 지금 마스크 쓰고 있는 거예요.”

-저런… 그랬군요. 그럼 그때까지 외부에서 아무도 못 들어온 건가요?

“우리가 한두 시간만 버티면 성주고, 김천에서 사람들이 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이 일대 3.6㎞를 경찰이 철저하게 포위해버려서 누구도 들어올 수가 없었어요. 그 와중에 딱 한 분, 웬 남자분이 옷이 다 찢기고 온몸에 생채기가 난 채로 와서는 저한테 옷을 좀 달라고 하더라고요. 경찰이 몇 겹으로 막고 있어서 산 세 개를 넘어서 다섯 시간 걸려 왔다고 하시면서…. 경황이 없어서 성함도 모르고, 어디서 온 분인지도 모르는데, 그분 하나 빼고는 상황 끝날 때까지 어느 누구도 못 들어왔어요.”

-무슨 전쟁 상황 같아요.

“완전히 전쟁이었죠. 그때 원불교 교무님 한 분이 마이크를 잡고 ‘이게 나라냐? 국민의 주권은 이걸로 끝이다’ 절규를 했어요. 경찰이 80~90살 된 어르신들을 방패로 찍어서, 가슴에 금이 가고, 밀려서 다치고, 저처럼 이빨이 나가고, 이런 사람들이 막 생기는데, 이게 나라냐고? 83살 되신 할머니가 경찰 사이를 뚫고 가려다가, 그 다리 사이에 낑겨서 어미 잃은 병아리처럼 움츠리고 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어서 경찰한테 ‘봐라! 이 등 굽은 할머니가 뭔 힘이 있노? 놔줘라. 풀어줘라!’ 울부짖었죠. 할머니가 밟혀 죽을까봐 내 몸으로 덮어서 껴안고 엉엉 울었어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5·18 광주에서, 이렇게 했구나. 이렇게 뺑 둘러싸서 봉쇄해 놓고, 안에 있는 사람들 총으로 쏴 죽였구나’ 하고요. 그 상황들이 너무 처참하고 억울하고 분해서 그때 일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대선 전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을회관 앞마당 한쪽 구석에선 이날 저녁식사를 제공하겠다고 원불교 교무님들이 국수를 삶고 있었다. 소성리는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 종사의 생가가 있어서 원불교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여기저기 걸터앉아 국수를 먹는 동안, 주민들 머리 위로 이따금씩 헬기가 지나갔다. 사드기지까지 지상으로 기름을 운반하는 일이 여의치 않자, 요즘엔 헬기로 저렇게 실어 나른다고 했다.

-19대 대선이 지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상황이 그 전과 후로 달라진 게 있습니까?

“우리도 조금 여유를 갖고 현재 대통령이 하는 걸 지켜보고 있어요. 특사도 파견하고, 후보 시절부터 ‘사드는 다음 정권으로 넘겨라’ 그랬으니까. 대선기간 중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여길 방문했을 때도, 우리한테 ‘당선만 되면 복안이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랬고요. 기대하는 마음으로 우리 마을 주민들은 전부 사전투표에 참여했어요. 정권이 바뀌니 국방부도 조금은 눈치를 보는 것 같고, 경찰도 지난번처럼 강경하게 대응하진 않는 것 같아요. 1300여명에서 200여명으로 수도 줄었어요.”

-올라오는 길에 경찰은 한 명도 못 봤는데요?

“아유, 저기 위에, 골프장 입구에 다 있어요. 경찰이 그 도로를 막아서서 국방부 땅이라고 주민들이 농사지으러 들어가려고 해도 못 가게 해요. 갈 때마다 싸워요.”

-골프장, 아니 이제 사드기지죠. 그 주변에 농지가 있어요?

“원래 거기가 골프장 되기 전에 목장이었어요. 목장 할 때 도로를 내야 한다고 해서, 땅 있는 사람들이 헐값에 길을 내줬어요. 그래서 골프장 도로 양옆으로 지금도 논밭이 있고요. 근데 국방부가 롯데하고 계약을 하고 난 뒤, 그 도로가 자기네 거라고 그 앞에서 입구를 딱 막아버린 거예요.”

-그래도 논밭은 주민들 사유지인데, 왜 못 가게 하죠?

“얼마나 기가 막힌지 압니까? 골프장 도로 입구 50m 거리에 우리 밭이 있어요. 내가 이 밭에 풀 뽑으러 갈 때도 경찰이 딱 막고 못 들어가게 해요.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한번은 내가 다리 아래 계곡으로 내려갔는데, 떨어지면 죽어요. 그래도 그 계곡을 넘어서 내 밭으로 갔더니 앞뒤 좌우로 경찰 아홉 명이 날 따라와서 살피는 거예요. 하도 화가 나서 앞치마를 집어던지면서 항의를 했어요. ‘내가 감옥을 탈옥한 죄수도 아니고, 죄 지은 범인도 아닌데, 그냥 촌동네 여자가 농사짓겠다고 풀 매러 가는데 경찰을 아홉이나 붙이냐? 우리나라에 돈이 그렇게 썩어나냐?’고요. 지금도 주민들이 거기 농사짓거나 산소 벌초하러 가려면 서너 시간씩 실갱이하기도 하고, 벌초하는 데까지 경찰이 따라와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우리가 싫은 것, 다른 동네도 안 된다

-그렇게 고생들 하시면서 사드는 왜 반대하세요? 전자파 피해에 대한 우려는 근거 없는 괴담이라고 국방부에서 발표했는데요.

“도대체 국방부가, 우리가 믿을 수 있게끔 뭘 했습니까? 무기나 비싼 거 사서 이익 남겨가지고 자기들이 다 들어먹고, 그러면서 자기들 말을 믿으라고요? 실질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추천한 전문가하고 국방부 전문가하고 다 함께 전자파고 뭐고 실험해서 우리 앞에서 그걸 보여주란 말입니다. 애초에 성산포대 배치한다고 했다가 주민들 반발이 심하니까,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소성리로 옮긴다고 했잖아요. 뭔가 피해가 있으니까 그런 얘길 하는 거죠. 뻑하면 ‘사드 레이더 앞에서 참외 깎아먹겠다, 여기 이사 와서 살겠다’고 하는 국회의원들도 있는데, 그럼 말로만 그러지 말고, 참외 깎아 먹을 사람들 딱 3년간 여기서 살아봐라 이거예요.”

-그럼 사드를 어떻게 처리하길 바라세요?

“우리 요구는 간단해요. 어차피 사드는 불법으로 들여온 것 아니냐, 주민들 동의절차도 없었고, 환경영향평가도 없었고, 주민들한테 제대로 설명해준 것도 없어요. 사드를 여기 갖다 놓기 위해서 국방부가 터를 닦고 이런 것도 아녜요. 아무것도 없는 골프장에, 심지어 바닥에 시멘트도 안 했어요. 그런데다가 덜렁 사드만 갖다 놓고, 사드문제는 다음 정부로 넘기라고 하는데도 대선 전에 ‘알 박기’ 식으로 들여다 놨잖아요. 우린 사드 부지만 제공하면 된다더니 지금 트럼프가 1조2천억원인가를 달라고 그러고 있고. 즈그덜 맘대로 결정하고 불법으로 들여온 거,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예요. 그냥 미국으로 보내버리라 카세요.”

-소성리에 사드가 오는 걸 반대하는 건가요? 사드 자체를 반대하는 건가요?

“우리도 처음엔 ‘왜 하필 소성리냐?’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계속 집회하면서 확실히 깨닫게 된 게, 사드는 여기 소성리뿐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있어선 안 되겠다는 거예요. 여기 어르신들이 그러세요.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올해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후대 손자들을 생각해야 된다. 내가 부모로서, 할매로서 해준 것도 없는데, 어떻게든 내 선에서 막아야지, 이 아이들 세상은 어떻게 되겠냐?’는 거죠.”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니까 사드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것도요, 사드가 있으면 북한 미사일 막을 수 있다는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말이 되는 거지. 솔직히 믿을 수가 없거든요. 여러 가지 반론이 있는데 효과에 대해서도 못 믿겠고, 사드로 미사일 막는다고 하고 오히려 북한만 자극하는 꼴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싶어요. 우리가 남북문제를 평화로, 대화로 해결해야지, 무기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북한도 좀 자제를 해줬으면 싶고요. 어쨌든 새 정부에선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좋겠어요.”

-보수적인 경북지역 노인들이 이런 평화운동에 나서게 된 건, 외부세력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주민들은 지금 ‘평화운동하고 있다’고 생각 안 해요. 그저 우리 동네 들어와선 안 되는 물건을 다른 동네에 둬서 되겠냐? 우리 국민한테 도움 안 되는 무기를 뭐 하러 우리나라에 갖다 놓느냐? 아무 데도 두지 말자, 이거죠. 우린 그게 평화운동인지 뭔지 모르겠고, 우리 생계랑 직접 연관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예요.”

-이번 대선에서 성주지역 개표 결과를 두고 말이 많았어요. 홍준표가 56.1%, 문재인 18% 나왔는데, 성주군민 대다수는 사드배치에 대해서 크게 반대하지 않는단 뜻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그것 때문에 우리도 욕 많이 먹었어요. 근데, 성주군 여기가 워낙 보수꼴통이에요.(웃음) 여긴 거의 뭐 80% 이상이 한나라당, 새누리당 찍던 사람들 아닙니까? 56% 나온 건 많이 내려간 거예요.”

-만에 하나, 사드 철수가 도저히 안 된다면, 차선책은 뭘까요? 다른 보상책이라든가….

“(도리질치며) 없어요. 무조건 철회해야 돼요. ‘우리는 보상을 원치 않는다’ 그 부분은 지금까지 마을주민 누구든, 단 한명도 예외 없이 명확하게 말씀들 하세요.”

-정부·여당에서도 사드 철회를 명확히 주장하지 않고 있는데요?

“그래서 원망도 많이 했어요. 대선 전에 야3당이 합의만 해주면 롯데가 부지 제공을 미룰 수도 있다는 언질을 줬다는데, 그때 당시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론으로 결정해 줬으면 지금 이 상태까진 안 왔을 거 아녜요? 그 일로 우리 마을 어른들이 지팡이 짚고 국회까지 찾아갔는데 만나주지도 않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드문제에 대해서, 국회 비준이나 청문회 같은 민주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국회 비준도, 청문회도 좋은데 약간 걱정스러운 게 있어요. 어쨌든 야3당 수가 더 많잖아요. 국회의원들이 소신껏 일하는 게 아니고, 정치적 득실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많아서, 솔직히 걱정이 되긴 해요.”

-곧 모내기철도 다가오는데, 언제까지 농사를 작파하고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요.

“할 수 없죠. 농사는 1년 농사고 사드는 평생 농사니까. 하지만 우리도 언제까지나 지지부진하게 지켜보진 않을 거예요. ‘새 정부가 들어서도 해결이 안 된다고 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청와대 앞으로 가자.’ 이번에 할머니들하고 그런 결의를 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뒤, 임순분 회장이 팔을 다쳐 깁스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소성리 할머니들 27명이 군수 면담을 위해 찾아갔다가 군수는 못 만나고 경비들에게 내몰리고 쫓겨나는 과정에서 인대를 다친 거라고 했다. 연로한 노인들이 이렇게 다치고 상하면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사드반대운동이 솔직히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럼요.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끝까지 함께하는 한, 사드는 들어오지 못해요.”

녹취 심지연

성주 소성리 임순분 부녀회장이 이진순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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