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막' 청년들이 말하는 청년문제

김태훈 기자 입력 2017. 5. 27. 13: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창간 25주년 주간경향이 들어본 이 시대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

삼포세대를 표지로 삼은 6년 전 2011년 <주간경향> 창간특집호 표지.

<주간경향>이 스물다섯 살이 됐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의 한가운데를 보내는 나이를 먹었다. 그러나 <주간경향>과 같은 나이의 25세 청춘들의 삶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밝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청년실업률이 최고치를 경신하는 뉴스 이면에는 ‘단군 이래 가장 스펙 좋은 세대’의 절망이 겹쳐진다. 진로 탐색과 대학 공부, 군복무 등을 거쳐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무렵의 청년들이지만 그들의 등에 지워진 짐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6년 전인 2011년 <주간경향> 창간특집호 표지는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가 장식했다. 하지만 삼포세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 뒤를 이어 포기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죄다 포기해 버리게 되는 ‘n포세대’의 시대가 왔다. 개인 화장실은 포기한 고시원에서의 주거, 앉아 먹는 것조차 포기한 노점에서의 컵밥 식사, 여전히 적지 않은 일자리가 최저임금마저도 포기해야 구할 수 있는 지역의 취업 현실이 청년들을 덮쳐온 것이다.

<주간경향>이 인터뷰한 4명의 25세 청년들 역시 모순형용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청춘 혹한기’를 거쳐가는 평범한 청년들이다. 일을 하고 있지만 주머니는 늘 가볍고, ‘대학물’을 먹었지만 그럴싸한 기업에서는 불러주지 않은 이들이다. 이들은 덤덤하게 삶을 이야기했지만 절망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덤덤한 말투 속에는 냉정하게 바라본 현실이 있었고, 현실인식에 걸맞은 생생한 희망도 있었다. 과하게 체념하지도, 반대로 희망에 들떠 있지도 않은 목소리로 전하는 생생한 청년들의 삶을 지면에 옮긴다.

1 알바노동자 길한샘씨
“최저임금 1만원 지켜줬으면”
알바노동자 길한샘씨.
길한샘씨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다.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충북 청주에서 살고 대학도 청주에서 나왔다. 현재로서는 딱히 다른 일자리를 구할 생각도 없다. 그나마 최저임금이라도 지켜서 꼬박꼬박 주기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한 지방도시 청년들에게는 선호 일자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일자리도 감지덕지하면서 다닌다는 뜻은 아니다. “원하는 만큼 일할 수가 없어요. 근무 일정표에 한 주에 3일 일하고 싶다고 쓰려고 해도 실제 일할 수 있는 건 2일 정도니까.”

당연히 손에 쥐는 월급은 넉넉지 않다. 한 달에 60만원에서 80만원 정도 들어오는 돈은 생계를 위한 최저 마지노선이다. 길씨가 바라는 일자리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지금 같은 ‘알바’ 노동으로도 한 달 생계비가 부족하지 않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도 이런 알바 노동을 그냥 거쳐가는 일자리라고 생각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거냐고 묻는데, 전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요. 그냥 이런 일을 하면서도 여가생활도 즐기고, 생계에 모자람 없는 그런 생활이면 좋겠어요.”

지방대를 나와서 취직이 어려운 현실에 적응해버린 나머지 의욕이 사라진 건 아닐까. “물론 주변 친구들을 보면 취업하는 게 쉽진 않죠. 근데 전 저 같은 알바 노동자도 알바생이 아니라 노동자로 대접받고,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페이와 노동환경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길씨는 당연한 걸 요구하고 그 수준에 만족하는 게 의욕 없음으로 읽혀야 하는지 되물었다.

빠른 시간에 햄버거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숙련이 필요한 일이다. 주방일이다 보니 패티를 굽거나 할 때 늘 화상을 입을 위험도 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몸에 걸칠 수 있는 것은 위생비닐장갑 한 짝뿐, 위험에 노출되면서 숙련도를 높인 것 치고는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이라고 길씨는 생각한다. “아무나 와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회사 사람뿐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뭐.”

알바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고 때때로 노조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사실 정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기대보다 실제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대선 공약으로 나온 최저임금 1만원이나 지켜줬으면 좋겠죠. 편의점 같은 곳 알바는 1만원은 고사하고 지금 최저임금도 못 받는 곳이 수두룩해요. 근로감독이라도 제대로 해서 지금 법만 지키게 해도….” 한숨 섞인 말투지만 그래도 길씨의 희망은 분명했다. 온종일 앉을 자리도 없이 서서 몸 다칠 걱정에 조심스럽게 일하는 대신 안전한 일터에서 일한 만큼의 대가만으로도 작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 현실을 보라는 그 어느 기성세대의 말보다 현실적이지만, 그 현실은 아직 저 멀리 있다고 길씨는 생각한다.

2 대학생 권유진씨

“경쟁의 구조부터 갈아치우자”
대학생 권유진씨
“실패할 수 있게 해주는 에어백이 없으니까요.” 대학생 권유진씨는 왜 지금의 청년세대가 움츠러드는지 설명했다. 1992년은 5년 뒤 다가올 외환위기 따위는 걱정할 필요 없는 여유로운 시대였다. 지금의 청년들을 둘러싼 거친 경쟁의 장을 생각하면 꿈과 같은 시절이었다. 그 호황기에 자녀를 낳은 부모세대는 이전까지의 세대보다 훨씬 개방적이었고 자녀의 개성을 보장해줬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과는 달리 이들 세대를 죄어오는 사회적 환경은 낙오하면 죽음뿐이라는 식으로 살벌하게 펼쳐졌다. 그 어느 세대보다도 자유와 개성을 바라지만 그것을 펼칠 공간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경쟁을 내재화한 세대. 남은 것은 ‘어떻게 해도 안된다’는 불안과 무기력, 패배감이다. 권씨가 그린 동세대 청년들의 심리적 지형도는 이렇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을 25년 인생 내내 학습한 세대에게 믿을 만한 구석은 중요하다. “취업해서 보수를 받는 것 그것 말고는 믿을 수 있는 기반이 없는데 실패할 수도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순 없죠.” 권씨 역시 고민 중이다. 서울의 명문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며 지금 4학년을 다니고 있지만 아직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진로는 확실치 않다. 다만 고교-대학-취업으로 이어지는 틀에 박힌 인생길을 꼭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은 남아있다.

의문을 풀기 위한 활동에 나서본 적은 있다.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주거문제로 불편을 겪으면서 민달팽이유니온이라는 단체에서 주거대책 문제 해결에 앞장서기도 했다. “활동을 하면서 ‘아, 나만 느끼는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희망도 봤고, 한편으로는 이런 의제에 여러 사람들이 공감해줘야 힘이 생기는데 아직 정치권에서 제도를 바꿀 정도로 힘이 모이기엔 부족한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어요.”

그렇다고 정치가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권이 바뀐다고 시혜를 기대하듯 변화를 바라는 건 주체의식이 없는 거잖아요. 제도적인 면에서 바꾸는 것 말고도 다양한 원동력이 나올 수 있는데.” 권씨가 보기에 과거 청년과 대학생들에겐 이렇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공간이 남아있었지만, 지금 권씨 세대 청년들에게 그런 공간은 남아있지 않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이 더 크고, 그러다 보니 ‘이 정도에 만족해. 그건 욕심이야’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 청년들 내면의 갈등이죠.” 주거, 취업, 학점, 스펙 등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문제들이지만, 청년들을 패배감의 굴레로 밀어넣는 자비 없는 경쟁의 구조부터 갈아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용한 호소였다.

3 창업준비생 김예린씨
“귀농·창업 장벽 걱정스러워”
창업준비생 김예린씨
김예린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종목은 농업이다. “전북 고창이 어머니 고향인데, 부모님이 귀농하는 거랑 맞물려서 농업 관련 창업을 알아보고 있어요.” 계기는 단순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여렸다. 자연스레 먹을거리와 생태환경에 관심이 많아졌다. 부모님과는 달리 서울에서 줄곧 살아온 도시 청년이지만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부터 귀농과 창업에 관심을 갖고 준비한 이유다.

대학시절 일반 기업에서 인턴도 해보며 사회의 맛을 본 적은 있지만 농촌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더 굳어졌다. “인생에 정해진 경로가 있는 것처럼 당연히 취업을 하거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보니, 주변 사람들 중에도 저를 이상하게 보기도 해요.” 그저 다른 식으로 살아보겠다는 건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이 우선 답답하다. 하지만 비단 김씨 본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의 삶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가는 청년세대들은 폭넓게 공감할 얘기라는 것이다.

김씨가 보는 청년세대의 문제는 아예 다르게 살아갈 가능성 자체가 막힌 데서 나온다. “제가 처음 다니던 대학에서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했는데, 둘 다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인데도 분위기가 완전 달랐어요. 전에 다니던 대학은 다들 취업조차 마음먹은대로 되기 힘드니 일찌감치 공무원을 준비하자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에 편입한 대학은 아무래도 학벌이 더 좋고 학생들 경제적 수준도 더 나아서 그런지 창업해서 자리잡은 사람들도 보이고….” 김씨는 부모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음 자녀세대로 그대로 대물림되는 현실이 갈수록 고착화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국 사회에서 20대의 초반을 보내며 느낀 현실이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바뀌어가길 김씨는 바라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귀농할 지역의 지자체나 귀농 지원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가는 중이기 때문에 아직까진 부딪쳐본 어려움보다 앞으로 만나게 될 장벽들이 걱정이다. 무엇보다 조금 다른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시선이 절실하다. “청년들이 정해진 출발선이 아니라 이전세대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창의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봐요.”

4대학원생 박선민씨
“기초학문 분야 지원책 절실”
대학원생 박선민씨
박선민씨는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동양사를 공부하고 있다. 원해서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기로 마음먹었으니 공부하는 데 대한 불만은 없다. 비싼 등록금에 연구지원은 부족한 환경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저는 그나마 운 좋게도 장학금 지원을 받아서 학비는 걱정 안 하고 다닐 수 있지만 모든 대학원생이 그런 건 아니니까요.” 모든 게 만족스러울 순 없다. 프로젝트도 가뭄에 콩 나는 식으로 선정되는 인문학 기초학문 분야의 공부는 큰 맘 먹지 않고선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같은 이웃나라에서 역사학 같은 분야에 지원하는 것만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가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이 더 떨어진다는 게 납득이 안 돼요. 우리나라도 이제 그럴 만한 여력은 있을 텐데….”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지원은 단지 상징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차원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 박씨의 생각이다. 국가 간의 분쟁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고 국제정세에 따라 국익이 좌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동양사를 비롯한 역사 연구는 그저 옛날이야기만 들여다보는 차원을 넘어 실제의 정치와 연결된다는 주장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원의 연구환경을 예로 들었지만 박씨가 바라보는 현재 한국 사회의 청년문제도 일맥상통한다. ‘이공계가 위기’이고 그 이전부터 이미 인문학은 ‘위기를 넘어서 고사’ 상태인 상황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실제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하다 못해 이공계는 프로젝트 장학금이라도 따올 수 있죠. 인문계열은 대학원생들이 학비 대려고 조교나 교내 알바 구하면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공부하니….” 정작 그렇게 결의에 차서 공부를 마쳐도 사회에서 반겨주지도 않는다. ‘써먹을 데 없는 공부’를 한 탓에 끝까지 남아 공부를 해도, 아니면 버티지 못하고 취업전선에 들어가도 어느 쪽이건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에선 일자리가 남아도니까 눈높이 맞춰 가라고 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설령 그렇게 일자리가 남아돈다고 해도 원하지 않는 직장에 들어가게 만드는 사회가 제대로 된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박씨는 청년들의 시각에 맞춰 청년문제를 접근하기보다는 기존 현실에 청년을 욱여넣고자 하는 움직임이 청년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