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이유 있는 '지방 엑소더스', 해답은

선명수 기자 입력 2017. 5. 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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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방의 젊은층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 전국 157곳 지자체서 청년층 순유출

지난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7학년도 수시 전문대학 입학 정보 박람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행사장 입구에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지방에서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 참가하는 등 관심이 컸다. 김준영 고용정보원 박사의 연구 결과, 지방 청년 인구의 수도권 쏠림은 대학 진학과 취업 시기에 가장 크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상훈 선임기자

189만9604명.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등재된 지난 4월 기준 전라남도 인구 규모다. 전남 인구는 지난 3월 사상 처음으로 190만명 선이 무너졌다. 이는 행자부의 인구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2004년 200만명 선이 붕괴된 지 약 13년 만이다.

한반도가 유사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문제에 직면했다. 인구 감소다. 과거에도 전쟁이나 전염병 등 질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자연적 축소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2031년 5296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이 추세대로라면 약 100년 후인 2115년에는 인구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어떤 곳에선 이미 ‘다가온 미래’다. 전국 266개 시·군·구에서 지난 10년(2005~2015년)간 인구가 순감소한 지역은 총 130곳, 전체의 57.5%에 이른다. 인구의 수도권 쏠림 현상 탓이다. 두드러지는 것은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이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도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출한 사람은 약 23만명, 이 중 청년층이 9만6000명으로 40%가 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이 인생의 절반도 되지 않아요. 고향에서 딱 16년 살았네요.”

홀로 서울살이 중인 직장인 안모씨(36) 얘기다. 그는 청년층의 ‘지방 엑소더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안씨의 유학생활은 고등학교 진학 때부터 시작됐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초·중학교를 다닌 뒤, 전북 익산에 있는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지역 국립대를 나왔다. 취직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서울에서 했다. 김제→익산→서울로 이어지는 그의 이주의 이유를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어요.”

청년층의 ‘지방 엑소더스’

“고졸이면 대기업 공장 취직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데, 지역 대졸자들은 전문직이 아니면 맞는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익산에 남아 일하는 고교·대학 친구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되는데, 15~29세 청년층의 고용률은 비수도권이 수도권보다 5%포인트 안팎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그 격차가 더 확대되는 추세다.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2015년 한 해 동안 웹사이트에 등록된 기업의 신규 채용공고를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전체의 73.6%가 수도권에 쏠려 있었다.

서울생활 9년째. 가장 큰 고민은 혼자 살아도 좀처럼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싼 거주비에 집은 ‘집’이 아니라 여전히 잠시 머무르는 ‘자취방’ 느낌이다. 그는 “최근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고향에 다시 내려갈까 고민도 했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거긴 공무원 아니면 ‘노답’”이라고 말했다.

인구 감소의 문제는 생산 가능인구의 축소와 이에 따른 국가경제의 약화에만 있지 않다. 인구의 수도권 쏠림, 즉 ‘인서울 광풍’은 고향을 떠난 이에게도, 남는 이에게도 힘겨운 일이다. 사람들이 떠나 인구가 줄어든 지방은 사회 인프라 축소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존속 기반까지 위협 받는다. 떠난 이들은 수도권의 높은 거주비와 사회적 네트워크의 부재 속에서 점차 무한경쟁으로 내몰린다. 그래도 이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강화된다. 이유 있는 탈출이다.

“전체 인구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이지만, 중·단기적으로 인구 변동을 좌우하는 것은 출산율이 아니라 지역 간 인구의 전출·전입이다. 그 중 핵심은 청년층의 이동이다.”

한국고용연구원 김준영 박사의 분석이다. 김 박사는 5월 25일 전남 순천에서 전남복지포럼 주최로 열린 ‘정해진 미래 지방 소멸, 청년에서 답을 찾다’ 포럼에서 청년인구의 지방 유출 및 수도권 집중의 특징을 분석해 발표했다. 출산율의 경우 지역 간 격차가 크지 않고 농촌이 오히려 대도시보다 출산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인구가 쏠린 탓에 신생아 수는 수도권이 압도적이지만 합계출산율을 따졌을 때는 지난해 기준 서울(0.94), 부산(1.10) 등 대도시가 가장 낮고, 세종(1.82), 전남(1.47), 제주(1.43) 순으로 높았다. 젊은 공무원이 몰려 있는 세종시의 지역적 특성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도시보다 농촌지역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지역 간 인구 변화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인구의 이동이 가장 잦은 청년층의 유입·유출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 김 박사의 주장이다.

김 박사는 전국 226곳의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자료가 미흡한 7곳을 제외한 219곳의 청년층 인구 변화를 분석했다. 지역별로 1995년 5~9세 인구 대비 2015년 25~29세 인구의 비율을 계산했다. 1995년 5~9세였던 인구를 100으로 봤을 때, 20년 후인 2015년 25~29세 인구가 50이라면 절반가량의 인구 순유출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219개 시·군·구를 분석한 결과, 72.3%에 해당하는 157개 시·군·구에서 청년층의 인구 순유출이 확인됐다. (그래픽 1)

순유출이 가장 심한 곳은 전남 고흥군으로, 5~9세가 25~29세가 되면서 10명 중 약 6명(59.3%)이 고흥을 빠져나갔다. 고흥은 고령화율(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2%로 전국 평균(10.9%)을 크게 웃도는 지역이다. 청년인구 순유출이 심했던 상위 20개 지역 모두 고령화율이 평균보다 크게 높았다.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따지면 전국 16개 시·도(세종시 제외) 가운데 11곳에서 청년층 인구 유출이 발생했다. 가장 심한 지역은 전남으로, 1995년 대비 2015년 청년인구 비율이 66.5%였다. 10명 중 4명은 전남을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반면 같은 기준에서 인구 비율이 110을 넘은 곳(10% 이상 청년 순유입)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이었다.

지방소멸, 청년에서 답을 찾다
분석 결과 청년인구 유출의 주요 원인은 예상대로 학업, 그리고 취업이었다. 먼저 첫 번째 모멘텀인 대학 진학. 비수도권 전 지역에서 청년인구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대학 진학기인 20~24세에 처음으로 큰 폭으로 감소한다. 반면 대학의 ‘수도권 쏠림 현상’에 힘입어 경기와 서울, 인천은 20~24세 인구가 늘어난다. 이들이 취업할 시기인 25~29세가 되면 비수도권의 청년인구는 더 주저앉는다. 앞서 언급한 안씨의 사례처럼, 지방 소재 대학을 다니다 상경해 취업하는 경우가 보태지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고령화율이 높고, 인구 규모가 작은 지역일수록 청년인구의 순유출 경향이 뚜렷했다”면서 “특히 청년여성이 남성보다 순유출 규모가 더 큰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가임기 연령 여성 수의 빠른 감소를 초래해 지역의 존속을 크게 위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행정자치부가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표시한 이른바 ‘출산 지도’를 만들어 파문을 일으키긴 했지만, 연구자들은 가임기 연령(20~39세) 여성인구 수를 지방 존속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로 본다. ‘지방 소멸론’으로 2014년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마스다 히로야(전 일본 총무대신) 역시 가임기 연령 여성의 인구 동향을 주요한 지표로 사용했다. 출생아의 대다수가 이들 연령군의 여성에게서 태어나기 때문인데, 이 연령대의 여성인구가 절반 아래로 떨어지는 2040년에는 일본 지자체의 절반가량(49.8%)인 896곳의 지역이 소멸한다는 내용이다. 이 방법론을 적용해 국내에서도 지난해 비슷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소멸 위험지역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의 분석 결과 2014년 기준 전국 226곳의 지자체 가운데 소멸 위험지역은 79곳이었는데, 2017년 3월 기준 85개로 6곳이 더 늘었다.

문제는 이런 ‘지방 소멸’이 낙후된 농·어촌만의 미래는 아니라는 점이다. 도시도 위태롭다. 최근 국토연구원이 펴낸 ‘저성장 시대의 축소 도시 실태와 정책방안’ 보고서를 보면, 인구가 줄어들면서 방치되는 빈집도 늘어나는 등 도시 기능을 상실해가는 ‘축소 도시(shrinking city)’가 전국에서 20곳에 달한다.(그래픽 2) 축소 도시란 1980년대 독일에서 처음 나온 개념으로, 지속적이고 심한 인구 손실로 방치되는 부동산이 증가하는 도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어촌지역에서나 나타나던 빈집 증가 등 공동화 현상이 지방 중소도시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전북 김제의 경우 정점 대비 인구 감소율이 61%에 달했다. 과거 석탄산업 부흥으로 1975년 인구 수 11만7000여명을 찍었던 강원 태백시 역시 정점 대비 인구 감소율이 59%에 육박했다. 2015년 태백 인구는 4만6000여명으로 채 5만명도 되지 않는다. 지방자치법상 시가 되려면 전체 인구가 15만명 이상이거나 인구 5만명 이상의 도시 형태를 갖춘 지역이 있어야 한다. 시(市) 기준에도 미달하는 시가 된 것이다.

이런 축소 도시들은 인구 급감으로 세수 역시 줄어 2015년 기준 재정자립도가 30%를 넘지 못했다. 연구팀이 이들 도시 주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주민들이 진단한 인구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일자리 부족(66.3%)’이었다. 특히 사회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30대의 답변은 76.5%로 더 높았다.

성장 위주 패러다임 변해야
지방의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지자체들도 인구 유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국 60곳이 넘는 지자체가 이미 ‘인구 늘리기 지원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경남 산청군과 함양군은 셋째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 1000만원을 지원한다. 이밖에 여러 지자체에서 귀농·귀촌 유도정책부터 시작해 신규 전입자 우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혼남녀 맞선 행사부터 결혼축하금을 지급하는 곳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 출산율을 끌어올려 인구 감소를 막는 것에 말 그대로 사활을 건 것이다.

기업 투자유치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제조업 일자리에 집중된 기업 유치는 지자체 간 ‘제로섬 게임’에 불과해 이런 대책이 큰 효과를 보는 시기는 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순천대에서 열린 포럼에서 한 30대 남성은 “순천에서 자라 이곳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순천과 여수 등 인근 산단의 대기업들은 지역 대학 출신을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생산직은 대부분 고졸을 채용하고, 사무직의 경우 수도권 대학 출신들이 대다수다. 인프라가 없는데 청년더러 고향을 떠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지역 인재의 지역 내 취업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준영 박사 역시 “불행하게도 공장 유치, 지역특화산업 육성으로 인구 증가에 성공한 지역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향을 떠나는 청년들은 탈고향의 가장 큰 이유로 ‘일자리’를 꼽는다. 지역 인재의 지역 내 취업이란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지 않는 것이다. / 권호욱 선임기자

문제는 분명하지만 인구 문제에 있어 해법은 쉽지 않다는 것, 그게 문제다. 우리보다 앞서 지방 붕괴를 경험한 일본은 이른바 ‘콤팩트 시티’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도시의 주요 기능을 중심에 밀집시킨 일종의 고밀도 도시로, 주거는 물론 행정·의료·복지·상업시설 등을 집약해 생활의 편의성을 높이는 한편, 지방 인구 유출을 일차적으로 저지하는 댐 역할을 하는 도시다. 김 박사는 “한국 역시 청년 유출이 크게 일어나는 지역에 일차적인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방 거점도시 구상이 필요하다”면서 “농촌지역의 급속한 고령화 측면에서도 소수가 넓은 곳에 산개된 현 상황에 대한 사회복지 차원의 접근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 및 저성장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낙관론에 기댄 성장 위주의 도시 정책은 이제 시효를 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시 기능을 인구 규모에 맞게 재조정하는, 일종의 ‘도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토연구원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인구 감소의 늪에 빠진 도시조차도 각종 계획을 수립할 때 달성 불가능한 인구 성장치를 전망하며 어떻게든 많은 개발용지를 확보하려고 경쟁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은 많은 도시가 축소현상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발사업만 벌이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구형수 책임연구원은 “축소된 인구에 맞게 도시의 규모 역시 축소하고, 도시 생활거점으로 공공서비스의 재배치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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