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에 "O같은 마사회" ..국내 1호 '말 마사지사'의 죽음

곽희양·강진구 기자 2017. 5. 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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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부산경남 경마장(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마필관리사가 마사회에 항의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산 강서경찰서와 유족 등에 따르면, 27일 새벽 1시 30분 부산경남 경마장 내 마사(마굿간)에서 이곳에서 일하는 마필관리사 박경근씨(39)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 박경근씨가 생전에 경주마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를 하고 있는 모습.

마사로부터 80m가량 떨어진 박씨의 숙소에서 유서가 발견됐다. A4용지 한장에 보드마카로 휘갈겨 쓴 것이었다. 3줄의 유서 중에서 첫 줄은 ‘O같은 마사회’였다.

지난 26일 박씨는 마주, 조교사와 말 상태 관리 방법에 대해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2004년부터 경마장에서 일한 박씨는 책임감과 리더십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그의 동료는 전했다. 그는 11명 가량의 마필관리사들이 속해 있는 팀의 팀장이었다. 또 국내 최초로 ‘말 마사지사’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말을 마사지하고 나면 땀범벅이 되지만, 마사지로 인해 말의 성적이 좋으면 보람을 느낀다고 그는 생전에 말해왔다. 그만큼 자기 일에 열심이었다. 박씨는 아내와 자녀 2명이 있다.

박씨가 유서의 첫 줄에 마사회에 대한 욕설을 적은 까닭은 마사회가 불안정한 고용환경을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마사회는 개인사업자인 조교사에게 용역비를 제공하고, 조교사는 자신이 채용한 마필관리사에게 말을 맡긴다. 마필관리사는 조교사로부터 월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고 그 이외에는 성과급을 받는데, 부산경남 경마장은 그 성과급 지급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 조교사 손에 마필관리사의 노동환경과 처우가 좌지우지 된다는 이야기다.

경마장 측은 “마방 운영은 개인사업자인 조교사들의 경영자율권에 속하는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양정찬 마필관리사노조 부산경남지부장은 “마사회가 사실상 조교사의 임금 착취를 방조하고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마필관리사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불안정한 고용관계는 오랜 문제로 꼽힌다. 2011년 11월 부산경남경마장에서 박용석씨(당시 35세)는 불투명한 임금구조 등을 유서에 적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다.

이날 부산경남 경마장 측은 박씨의 죽음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경마장 측은 이어 “박 관리사는 젊은 나이에도 경주마 훈련의 전문지식을 인정받아 경마전문가 해외 연수 및 전문 교육을 착실하게 이수하여 빠른 승진(팀장)을 했다”며 “임금 수준에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 할 때 임금 수준 등을 자살의 배경으로 보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박씨의 사망 경위에 대해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희양·강진구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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