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드라마 속 상황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

2017. 5. 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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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황진미의 TV 톡톡]

<군주: 가면의 주인>(문화방송)은 18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 팩션 사극이다. 백성의 편에서 기득권층과 싸우는 세자의 이야기에, 로맨스가 곁들여진다.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보다 허구가 주를 이룬다. 왕과 세자가 등장하지만, 역사 속 인물을 가리키지 않는다. 가령 세자 이름이 사도세자의 본명과 같다거나, 영조가 경종을 독살하고 왕이 되었다는 의혹이 있었다거나, 노론의 힘에 의해 왕위에 오른 영조는 노론의 눈치를 보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드라마 이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드라마는 조선의 권력을 장악한 편수회라는 조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조선 건국 이전부터 존재해온 건축기술자들의 비밀결사조직으로, 건국 이후 더 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건축기술자인 편수(도편수, 대목, 대목장)들의 조합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왕과 조정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실세였다는 설정은 완전 허구다. 아마도 대표적인 음모론인, 프리메이슨 조직이 신전을 짓는 도공들의 모임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편수회는 물을 사유화하여 폭리를 취한다. 19세기 초 한양 인구가 폭증하면서 물장수들이 등장하였고(<이향견문록>), ‘청계 주변에는 건기에도 마르지 않는 몇 개의 샘터가 있었는데, 각각에는 소유주가 있어 철저히 관리되었다’(<서울 600년사,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는 기록으로 보아, 물을 사고파는 일이 실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양수청을 설치하여 전국의 저수지와 우물을 독점 관리했다는 것은 어마무시한 상상이다.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보다 봉이 김선달 설화, <철가면>, <왕자와 거지> 등에서 더 많은 모티브를 얻은 듯하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듯하다. 조선시대는 상공업의 발달이 미비하여, 전일적인 자본의 지배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드라마는 조선시대에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와 모순을 적용시킨다. 그 결과 현대물의 서사를 조선시대에 옮겨놓은 번안물처럼 보인다. 요컨대 은유를 위한 가리개이자, 안구정화용 코스프레로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일 뿐, 드라마의 내용은 현대물에 가깝다.

드라마에서 문제의 발단은 정통성 없는 금녕대군이 편수회와 손잡고 선왕을 죽여 왕위에 오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편수회는 금녕대군을 꼭두각시 왕으로 만든다. 이들은 세자의 목숨을 볼모로 양수청을 설립한다. 홍수에 대비해 전국의 하천을 정비한다는 명분으로 출발하지만, 곧 독점적인 물사업으로 변질된다. 처음에 백성들은 싼값에 편하게 물을 공급받는다며 반겼지만, 가뭄을 거치면서 물값이 오르자 생존을 위협받는다. 양수청은 교묘히 물길을 바꿔 관할 우물이 아닌 모든 우물이 마르도록 하여, 백성들은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양수청의 물을 사야 한다. 양수청은 우물 관리를 명목으로 자율재판권을 지니는데, 이는 물을 훔치는 가난한 백성들을 잔혹하게 처벌하는 근거가 된다. 양수청의 수탈과 횡포가 흡사 일제강점기의 동양척식주식회사나 남만주철도회사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독점재벌에 의한 공공재의 민영화 과정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다. 토목사업을 전담해온 세력인 편수회는 토건산업에 뿌리를 둔 한국재벌의 상징처럼 보인다. 편수회는 ‘대목’을 권력의 정점에 두고 왕을 비롯해 여러 대신들이 가입한 단체이다. 이는 재벌 회장을 중심에 둔 채, 정치자금으로 정치권을 옭아매고, ‘×성 장학생’이라 불리는 관료들을 요직에 포진시켜 ‘×성 공화국’이란 쓴소리를 들었던 대한민국의 지배구조와 다를 바 없다. 편수회가 하필 물사업을 벌이는 것도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이 대규모 이권이 얽힌 토건사업이자 물 민영화 사업의 전초작업이었음을 반영한다. 또한 비밀조직이 강력한 환각과 금단증상을 일으키는 약물을 이용하여 왕을 인질 삼는 대목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서 불거진 청와대 ‘약물 게이트’를 연상시킨다.

편수회는 물사업에 그치지 않고, 조폐권을 가지려 한다. 이를 위해 백성들에게 돈을 풀어 빚을 지게 한 뒤 갑자기 회수하여 생존을 압박한다. 화폐의 유통을 가로막아 돈 가뭄을 일으키고, 동전의 재료인 구리를 독점한다. 조폐권을 얻은 뒤, 통화와 금융을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금융자본의 힘을 절감하였고, 신용카드 대란을 거쳐 가계부채 1360조 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속 상황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편수회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세자는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보부상 조직에 들어가, 공제회를 연상시키는 복지제도를 통해 내부의 신망을 얻어간다. 보부상 두령이 된 그는 물류권을 활용하여, 중소상인들과 연대해 독점자본인 편수회의 전횡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한다. 이러한 세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과 해법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새 정부의 리더십과 정책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것처럼. 드라마 안팎에서 새로운 희망이 도출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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