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노룩패스로 세계에 알린 '개저씨 갑질'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7. 5. 27.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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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의 노룩패스가 해외까지 회자면서 '개저씨' '갑질'이라는 단어의 뜻까지 알려지게 됐다. tv 화면 캡처.

한국의 ‘갑질’과 ‘개저씨’라는 말을 국제적으로 알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김무성 노룩패스’ 사건이다. 김무성 의원이 지난 5월 23일에 공항으로 입국하면서 보좌진으로 보이는 이에게 자신의 캐리어를 던지듯 밀어줬는데, 받는 사람을 안 쳐다본 것이 문제가 됐다. 만약 서로 눈을 맞추고 웃으면서 그랬다면 보좌진과 장난치는 소탈한 지도자로 받아들여졌겠지만, 보지도 않고 ‘툭’ 던지듯 밀었기 때문에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줬다.

보도진들이 촬영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화질로 기록돼 인터넷에 공개됐다. 그런데 이 영상이 해외에서 터졌다. 마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 우스꽝스러워서 해외에서 뜬 것처럼, 김무성 의원의 영상도 서양 사람들에게 황당함을 안겨줘서 떴다.

우리나라 네티즌이 특별한 영상을 정지화면이 이어지는 ‘움짤’ 형식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것처럼, 김무성 영상도 미국의 ‘레딧’ 같은 사이트에서 움짤로 공유됐는데 한때 인기 포스트 1위에 오르는 등 화제를 모았다. 댓글이 천 개가 넘게 달렸고, 이 움짤이 다시 다른 미국 사이트로 옮겨지며 수백만 건의 조횟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움짤의 제목은 ‘한국 정치인의 으스대기(Korean politician swag)'인데, 외국인들이 이 영상을 특정 개인이 아닌 한국 일반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이 제목으로 알 수 있다. ‘노 룩 패스’(No look pass)라는 별명도 생겼다. 노 룩 패스는 농구에서 자기 편을 보지 않고 패스하는 고난도 기술로 다른 구기 종목에서도 쓰이는 말이다. 캐리어를 미는 모습이 컬링 선수 같다며 ‘무스터 컬링’이란 말도 나왔다.

패러디도 이어졌다. 미국 NBC 방송의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에서 진행자 지미 팰런이 김무성 의원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한 것을 비롯해 다양한 패러디들이 나왔다. 보좌관이 캐리어를 발로 걷어차 김무성 의원에게 날려버리는 영상도 있다.

다양한 서양 매체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한국의 권위주의적 문화를 소개했다.

‘'개'와 '중년의 남성'을 일컫는 두 단어의 합성어인 '개저씨'(gaejeossi)의 이 건방진 행동은 매우 적나라하게 기록되었으며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에서 '갑질'(gapjil)로 칭하는 권력 남용은 지난해 9월 1,289 건이 적발되었는데, 그중 90퍼센트가 남성이었으며 40~5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 인디펜던트(5월 25일)

이런 식인데, 여기서 ‘개저씨’(gaejeossi)와 ‘갑질’(gapjil)이 한국어 발음 그대로 나갔다. 마치 재벌이 우리 발음 그대로 알려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콰르츠도 갑질과 개저씨를 소개했다.

인디펜던트 기사에서도 서양인들이 이 일을 특정인의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의 일반적인 문화가 드러난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가 한국에선 특별한 것도, 노룩패스 같은 권위주의적인 지도자상이 한국에서 일반적이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무성 의원이 정확히 어떤 내심으로 그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캐리어를 받은 사람과 김 의원의 평소 관계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김무성 의원은 어쩌면 억울한 상황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것과 별개로 사람을 보지도 않고 물건을 툭 던지듯 밀어주는 영상은 확실히 충격적인 이미지였다. ‘개저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위주의적인 아저씨들의 태도에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던 차여서 더욱 그랬다.

논란이 터진 후에 김무성 의원이 해당 사건을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표현해 더욱 논란을 키웠는데, 이런 시각은 우리 일부 매체도 마찬가지였다. 한 방송은 이 영상을 그저 ‘재밌는 영상’ 정도로 소개했다가, 해외에서 논란이 터지자 다음날 다시 ‘우리는 재밌는 해프닝 정도로 다뤘는데 해외에서 문제 삼아 당황스럽다’는 식으로 방송했다.

시민적 평등 의식을 가진 사람에겐 상당히 충격적이고 불쾌한 영상이라는 점을 우리 언론인들이 몰랐던 것이다. 이런 권위주의에 대한 불감증이 바로 ‘박근혜’라는 신비주의적 지도자가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원인이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문화가 서구 민주공화국의 시각에서 봤을 때 충격적일 정도로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망신스런 단어 수출은 ‘갑질, 개저씨’ 선에서 끝내는 것이 좋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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