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文정권 '코드맞추기'..채권소각·정규직전환 발벗고 나서

이승주 기자 2017. 5.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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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의 새 정권 코드 맞추기 정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민생 금융 공약으로 발표했던 ‘장기·소액 연체채권 소각’의 경우, 시중은행들이 먼저 나서서 보유 중인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최우선 공약인 일자리 공약 중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경우 시중은행들은 무기계약직 직원들을 정규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시중은행, 2달만에 1.6조 채권 소각…13만여명이 혜택

우리은행은 2013년 이후 소멸시효 기일이 도래한 개인채무자 1만8835명의 연체대출 원금 및 이자 등 총 1868억원 규모의 특수채권을 전량 소각했다고 26일 밝혔다. 우리은행은 이번에 일괄 소각한 특수채권 외에 향후 소멸시효가 완성하는 채권은 즉각 소각할 방침이다.

앞서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지난 3월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각각 9800억원(9만7000명), 4400억원(1만9424명) 소각했다. 2개월여만에 13만5259명의 채무자가 1조6086억원의 채무를 탕감받은 것이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은 채권자가 돈 받을 권리를 소멸시효 기간 안에 행사하지 않아 채무자의 갚을 의무가 사라진 채권을 말한다. 금융사의 채권은 통상 5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변제 의무가 사라진다. 그러나 채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금융사들은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임의으로 대부업체 등에 매각해 왔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사들인 대부업체와 추심업체는 채무자에게 소액만 갚으라 한 뒤 채무 상환 의무를 부활시켜 잔여 채무를 받는 방식 등으로 악용해 왔다. 채무자가 변제의사를 내비치면 소멸시효가 부활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민 등 채무자는 채권자가 다른 금융사나 대부업자로 일방적으로 변경돼 불법 추심에 노출되는 피해를 입었다.

문 대통령이 장기·소액 연체채권 소각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채무자들이 이런 불법 추심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은행이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소각하면 채무자들의 채무기록이 완전히 사라지고 계좌 지급정지와 법적절차 등도 해지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미 회수 불가능 채권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소각하더라도 추가 손실은 없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소멸시효 완성채권 규모는 4조9760억원이다.

문재인 정부가 장기·소액 연체채권 소각 정책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자 은행들도 이에 맞춰 스스로 채권 소각을 위해 팔을 걷어부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 소각은 기존에도 은행에서 꾸준히 진행해왔던 업무라 새 정권의 코드 맞추기라는 지적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며 “다만, 문 정부에서 불법 추심을 막는 것을 법제화하려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부분은 일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영업점·인력 감축 올스톱…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러시

은행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것도 문재인 정부 코드 맞추기로 풀이된다. 금융권은 대부분 일찌감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진행한 만큼 다른 업권에 비해 비정규직 비중이 적은 상황이지만, 문 정부 정책에 맞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영업점·인력 감축을 고민하고 있던 시중은행들도 당분간 대규모 희망퇴직이나 인위적인 영업점 감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나선 은행은 한국씨티은행이다. 씨티은행은 무기 일반사무 전담직원과 전담창구직원 등 약 300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올해안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들은 전환 이후 정규직 행원과 동일한 직급인 정규직 5급 대우를 받게 된다.

IBK기업은행도 지난해 8월부터 무기계약직 3000여명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농협중앙회도 최근 ‘범농협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하고 계열사 비정규직 약 5200명을 정규직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신한은행도 사무인력 170여명 가운데 60~7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3월말 기준 신한은행 직원 중 기간제 근로자는 781명으로 임원을 제외한 전체 근로자의 5.4%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맞물려 보일 수는 있지만, 무기계약직 등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꾸준히 논의가 돼 온 문제"라며 "정부 정책에 맞춰 사전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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