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심용환 "국정교과서 폐지에 안심하면 미래 없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입력 2017. 5. 2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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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소녀상 뒤에 앉아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커다란 국민적 저항을 부른 박근혜 정권의 국정 역사교과서가 문재인 정부 들어 폐지되는 가운데, "국정교과서 폐지는 끝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교육의 새 틀거리를 만들 시발점이 돼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저술·강연 등으로 역사 대중화에 힘써 온 역사가 심용환은, 최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정교과서 폐지 문제는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꿈이 한때 역사학자였고, 그만큼 뚜렷한 역사의식을 지닌 분이기 때문에 최근 불거졌던 교육부의 자잘한 저항은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여요. 당장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써야 할 검인정교과서의 졸속 우려가 나오는데, 이것 역시 능력을 갖춘 분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다면 잘 풀릴 겁니다. 다만 문제는 이제부터 역사교육의 모든 것이 원점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데 있습니다."

심용환은 "국정교과서가 폐지 수순을 밝으면서 오히려 뿌리 깊은 역사교육 문제가 묻히는 분위기여서 걱정이 크다"며 "저 역시 (국정교과서 폐지를 끈질기게 주장해 왔던 터라) '고생했다' '축하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데, 역설적이게도 정치 이슈와 분리되면서 역사교육 개혁을 위한 사회적 동력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교과서 폐지에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뻔한 암기과목 수업으로 원상복구 되는 것일 뿐,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국정교과서가 멈췄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해결이지만, 그간 타올랐던 역사에 대한 관심,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질 이유도 상실되는 분위기입니다.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죠. 현재 우리나라 역사 교육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 딜레마 안에서 역사학계·교육계에서 얼마나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느냐가 과제로 떠올랐어요."

◇ "단 하나의 변화로 역사교육 개혁 물꼬 트는 데까지 나아가야"

역사가 심용환(사진=심용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그는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공적 지식으로서의 비판적 역사의식을 심어 주지 못하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매체가 다양해지는 반면 책을 점점 안 읽는 환경에서 학생들은 미디어를 통해 파편적인 정보만 얻고 있어요. 유일한 공적 체제로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는 공교육입니다. 국정교과서 폐지를 위해 치열하게 싸울 당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지했던 데도 지난 2004년 이래 진행된 근현대사 교과의 힘이 컸다고 봐요."

"이러한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치려면, 어떻게든 역사교육을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심용환은 역설했다.

"역사교육이 암기 교육으로 인식되고 있어 내용이 너무 많고 재미 없어요. 초·중·고등학교 때마다 고대사부터 현대사를 반복하는 방식이죠. 분량이 너무 많다보니 학생들은 옛날 이야기 위주로 단순하게 기억합니다. 교사들도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다급해지기 일쑤죠. 공적 지식으로서 역사교육의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는 "일례로 교과를 나눠 중학교 때까지 근대 이전 역사를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는 근현대사와 세계사 교육에 집중하면 학생들이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제안했다.

"역사교육을 단군부터 광개토대왕, 조선왕조까지 가다 보면 머릿속에 남는 게 뭘까요? 흔히 말하는 '국뽕' 식의 역사교육은 이제 벗어나야죠. 근현대사의 경우 우리가 주체성을 상실한 채 냉전이라는 국제질서에 갇혀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기예요. 미국 등과의 국제 관계·정세 속에서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이를 아우르지 못하면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겠죠."

결국 "한국사가 필수인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로서 흥선대원군부터 김대중 정부까지를 체계적으로 배우면, 학생들 입장에서 입시 부담을 덜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 효과도 남는다"는 것이 경험에 바탕을 둔 심용환의 지론이다.

"학생들과 공부해 보면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한정돼 있어요. 전반적으로 최근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입니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에게 과감한 자율권을 부여해 토론 수업을 진행하는 식으로 수업 시스템을 변화시킬 필요를 느끼는 이유예요. 현재 입시 상황에서 적어도 고등학교 1, 2학년까지는 자유로운 시도들이 가능합니다.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만 가르치든, 법제화로 토론 수업을 의무화하든, 단 하나의 변화로 역사교육 개혁의 물꼬를 트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역사교육이 공적 지식으로서 의미를 갖도록 돕는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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