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사이버네틱스, 인간을 새롭게 정의하다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2017. 5. 27.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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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이버네틱 오가니즘→사이보그 : 생명체와 기계의 합성 그리고 통제와 소통

[머니투데이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3> 사이버네틱 오가니즘→사이보그 : 생명체와 기계의 합성 그리고 통제와 소통]

그림1. 월터 핏.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던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불량배들에게 쫓겨 동네 도서관에 숨어 들어갔고, 거기에서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쓴 수리철학 책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그는 이 어려운 수리논리학 책을 사흘 동안 독파했다. 소년은 자신이 분석한 책의 1부에 대한 견해를 러셀에게 편지로 보냈고, 이런 인연은 그가 15살 때 시카고 대학교의 교환교수를 했던 러셀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러셀은 월터 핏(Walter Pitts)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년을 시카고 대학교수였던 과학철학자 루돌프 카르납(Rudolph Carnap)에게 소개했다.

카르납은 핏의 천재성을 바로 간파했다. 카르납은 학교에서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푼돈을 벌고, 화장실에서 잠을 자던 소년에게 더 괜찮은 일자리를 마련해 줬다. 핏은 카르납에게 논리학을 배웠고, 러시아 출신의 물리학자 라셰프스키(Nicholas Rasheveky)로부터 생명 현상을 물리학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의 뇌가 ‘논리 기계’일 수 있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한 것으로 보인다.

워런 맥컬럭(Warren McCulloch)은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고, 이후 의대에서 신경과를 전공했다. 그는 의사의 길을 걷는 대신에 대학으로 돌아와서 과학연구에 전념했다. 파킨슨씨병의 이유에 대해서 연구하던 맥컬럭은, 자연현상의 근원에 원자라는 기본 입자가 존재하듯이 인간의 심리현상의 근원에는 가장 간단하고 더 쪼개질 수 없는 싸이콘(psychon)이라는 기본 단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하나의 뉴런(뇌세포)에서 처리하는 신호가 이런 싸이콘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를 밝힐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그는 모든 논리적 연산을 수행하는 ‘보편적인 튜링 머신’을 만들 수 있다는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의 1936년 논문을 접했고, 이 논문이 주는 함의에 매료됐다. 뇌과학을 연구하던 그에게 논리적 연산을 수행하는 튜링 기계와 인간의 뇌 사이의 유비는 너무도 분명했다.

맥컬럭은 1941년, 8년간 몸담고 있던 예일대학교를 떠나서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으로 적을 옮겼다. 이 해에 자신보다 25살 어린 월터 핏을 만났다. 그의 재능에 감복한 맥컬럭은 여기저기 떠돌면서 숙식을 해결하던 핏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다. 맥컬럭은 갈 곳 없는 핏을 따듯하게 감싸주는 멘토가 됐고, 서로를 자극하면서 함께 연구했다. 핏은 맥컬럭의 설익은 아이디어에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틀을 부여했고, 이 둘은 뇌의 가장 작은 신경 단위인 뉴런(neuron)의 모델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림2. 맥컬럭과 핏의 논문에 나오는 뉴런 작용의 모델들. 예를 들어, c의 경우에는 뉴런 3의 임계값이 2인가 1인가에 따라서 각각 AND Gate로도, 혹은 OR Gate로도 작동한다.


그 결과는 1943년에 나온 “신경 작용에 내재한 개념에 대한 논리적 해석학”(A Logical Calculus of Ideas Immanent in Nervous Activity)이라는 논문이었다. 이 논문에서 이들은 뉴런의 작용이 0과 1의 정보의 전달로 이루어지는 2진법 논리 회로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들은 당시 전신에서 사용하던 ‘릴레이’(relay)라는 기계를 쓰면 이런 논리 회로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는데, 나중에 이 논문에 큰 영향을 받은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은 이 릴레이를 진공관으로 대체해서 컴퓨터 에드백(EDVAC)을 설계했다. 뇌의 정신 작용은 전기 회로로 이해됐고, 이를 토대로 컴퓨터가 설계됐으며, 이런 컴퓨터는 거꾸로 뇌를 이해하는 강력한 메타포를 제공했다.

맥컬럭과 핏이 인간 두뇌의 뉴런 활동을 전기공학적으로 이해하는 연구에 몰두하던 시점에 MIT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는 미국 공군이 사용할 수 있는 ‘대공예측기’(anti-aircraft predictor)의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대공예측기는 적기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적기가 몇 초 뒤에 도달할 지점에 포를 쏘게 하는 자동화기였다. 효과적인 대공예측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적기의 기계적 운동만이 아니라 조종사의 심리적인 판단까지도 예측해야 했다. 적의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유능한 파일럿은 포수가 예측하기 힘든 방식으로 비행기 경로를 바꾸기 때문이다.

그림3. 자신이 만든 사이버네틱 장치를 두고 포즈를 취한 노버트 위너.

위너는 미 공군에서 파일럿을 대상으로 한 실험 데이터를 받아 사용했지만, 효과적인 대공예측기를 개발하는 데는 실패했다. 당시 컴퓨터 기술의 한계가 대공예측기 개발에 필요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그렇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조종사가 마치 서보메커니즘(servo-mechanism, 자동제어장치)처럼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엔지니어들은 서보메커니즘을 음성 피드백(negative feedback: 시스템의 출력이 입력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되먹임되는 것) 회로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행동을 고쳐나갈 수 있는 기계장치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위너는 이런 생각을 멕시코 출신의 생리학자이자 오랜 친구 아르투로 로젠블루스(Arturo Rosenblueth)와 나눴고, 로젠블루스는 인간에게서도 피드백 루프가 조금 손상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 같은 질병이 있음을 지적했다. 로젠블루스는 ‘항상성’(homeostasis: 더우면 땀이 나서 체온을 식히듯 생명체가 항상 어떤 평형 상태로 돌아가려 하는 생리적 경향)이란 개념을 제창했던 하버드 생리학자 월터 캐넌(Walter Cannon)과 공동연구를 수행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캐넌의 항상성은 생리학적인 개념이었지만, 위너와 로젠블루스는 공학에서 사용되던 피드백 회로를 이용해서 캐넌의 항상성을 새롭게 해석했다. 이들은 음성 피드백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인간, 동물, 기계 행동의 공통점을 분석한 ‘행위, 의도, 목적론’(Behavior, Purpose, and Teleology)이란 제목의 논문을 ‘과학철학’지에 출판했다. 맥컬럭과 핏의 논문이 나온 1943년이었다.

피드백 회로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인간, 동물, 기계의 행동을 설명한 이 논문에서는 동물의 행동을 의도(purpose)를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의도를 가진 행동을 다시 목적을 따라가는 것(teleological)과 그렇지 않은 것(non-teleological)으로 나누었다. 목적을 따라가는 행동이 바로 ‘피드백에 의해 통제되는’ 행동이다. 개구리가 혀를 쑥 내밀어 파리를 잡는 것은 파리를 잡으려는 의도를 가진 행동이지만, 파리의 위치 변화에 따라 한번 내민 혀의 운동을 지그재그로 바꿀 수 없기에 목적을 따라가는 행동은 아니다.

반대로 야구 선수가 공을 쫓아가는 행동은 목적을 따라가는 것이다. 공의 위치를 순간순간 파악하면서 자신이 갈 방향과 속도를 바꾸기 때문이다. 위너는 배를 쫓아가서 파괴하는 어뢰를 공을 따라가는 야구 선수의 행동과 똑같은 행동으로 보았다. 배가 방향을 바꾸어도 이를 감지해서 쫓아가는 것은 피드백에 의한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었고, 이런 관점에서 어뢰의 행위도 목적을 따라가서 의도를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계 부품으로 구성된 어뢰와 공을 쫓아가는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 둘의 “행동”은 적어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더 크게 허물어졌고, 그 구분이 철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1943년은 월터 핏과 위너가 서로를 알게 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위너는 핏이 전 세계에서 두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뛰어난 연구자라고 극찬했다. 위너는 인간의 뇌를 기계적으로 모델링한 핏의 연구와 인간의 행동을 기계의 피드백 회로로 이해한 자신의 연구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렇지만 위너가 보기에 맥컬럭과 핏의 1943년 모델은 한계가 있었다. 뉴런의 작용을 간단한 전기회로로 이해한 부분은 매우 신선했지만, 뉴런의 복잡한 연결로 구성된 두뇌의 실제 작용을 모사하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너는 핏에게 뉴런 작용의 모델을 실제 두뇌 구조와 비슷하게 만들어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이 무렵 핏을 프린스턴의 수학자 존 폰노이만(John von Neumann)에게도 소개했다. 폰노이만은 맥컬럭과 핏의 논리 회로 논문을 알게 되었고, 이 모델을 채용해서 첫 번째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소위 노이만 아키텍처) EDVAC을 설계했다. EDVAC의 설계에 대한 노이만의 100쪽짜리 보고서는 딱 하나의 참고문헌만을 인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맥컬럭과 핏의 논문이었다.

그림 4.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 EDVAC. 폰 노이만은 이 컴퓨터의 제작에 자문으로 참여했고, 맥컬럭과 핏의 논문을 이용해서 컴퓨터 회로를 설계했다.

위너가 찾아낸 인간과 서보메커니즘의 공통점은 음성 피드백을 통한 통제라는 것이다. 위너는 피드백을 통한 통제라는 개념을 생리학, 심리학, 사회과학 등 인접 분야로 설파하기 시작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나면서 위너와 맥컬럭은 메이시 재단(Macy Foundation)을 설득해서 유기체와 자연,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피드백이라는 공통 현상을 탐구하고 토론하는 일련의 학회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위너, 핏, 맥컬로크, 폰노이만은 물론, 마거렛 미드(Margaret Mead)와 같은 인류학자, 막스 델뷔릭(Max Delbruck)과 같은 분자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1947년, 위너는 자신의 핵심 개념과 이론들을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단어로 집약했다. 이는 위너가 조종, 통제를 뜻하는 희랍어 쿠버네틱스(kubernetics)로부터 만들어 낸 신조어였다. 그는 ‘사이버네틱스: 동물과 기계에서 통제와 소통’(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이라는 전문서(1948)와 이 책의 대중적인 판본을 출판함으로써 사이버네틱스를 세상에 널리 소개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사이버네틱스라는 개념은 통신이론이나 컴퓨터, 제어 공학과 같은 공학 분야만이 아니라, 생물학, 생리학, 사회학, 환경학(ecology) 등에 영향을 미쳤다.

사이버네틱스는 생리학적 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유기체를 피드백과 정보전달이라는 공학적 원리에 기초한 사이버네틱 시스템(cybernetic system)으로 이해했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자동 기계 비슷한 것이 됐다. 하지만 정 반대 방향의 인식도 생겨났다. 가이아(Gaia) 개념을 제창한 러브럭(James Lovelock)은 지구를 “생명계, 기상계, 바다, 토양을 전부 포함하는 복잡한 개체, 또는 생명체가 사는데 최적합한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찾는 사이버네틱 피드백 체계의 총체”로 규정했다. 땅덩어리에 불과하다고 간주하던 지구는 사이버네틱스의 개념이 적용되면서 살아있는 유기체와 흡사한 것이 됐다.

그림 5. 클라이니스와 클라인이 1960년 논문에서 소개한 '사이보그'. 삼투압 펌프를 몸에 결합시킨 이 쥐는 보통 '첫번째 사이보그'로 평가된다.

1960년에 시뮬레이션 과학자인 클라이니스(Manfred Clynes)와 임상 정신병학자 클라인(Nathan Kline)은 “사이보그와 우주”라는 논문에서 우주여행에 가장 적합한 존재는 인간도 기계도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잡종’인 ‘사이보그’(cyborg)라고 주장했다. 사이보그는 사이버네틱 오가니즘(organism, 유기체)의 줄임말이었다. 생명체와 기계가 합성되면서 탄생한 사이보그는 인간의 약한 육체를 초월할 수 있는 트랜스휴먼의 가능성으로 주목받으면서 번식하기 시작했다. 사이버네틱스의 유산이 사이보그 속에 오랫동안 살아남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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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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