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정규직 고용 350만 중소기업이 전부 반성해야 하나

2017. 5. 2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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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해 업계의 의견을 밝히자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총을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경총이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정권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아주 편협한 발상" 등의 강한 표현을 써가며 경총을 공격했고.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기업들이) 압박으로 느낄 땐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들이 작심하고 기업계를 향해 포문을 연 것이다.

전날 경총 부회장은 "다양한 인력 운용 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정규직·비정규직을) '좋다' '나쁘다' 이분법으로 접근하면 갈등만 부추기고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과보호도 한 원인"이라며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하는 아웃소싱(외주)을 우리만 문제 삼는 건 옳지 않다"고도 했다. 그의 지적은 비정규직 논쟁에서 제기되는 여러 쟁점들 중 하나이며, 기업뿐 아니라 학자나 전문가들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이슈의 당사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대기업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의 9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문제다. 대기업들은 여력이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견디기 어렵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다 일자리를 잃는다. 경총 회원사는 90%가 중소기업이다. 그러니 이런 문제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슨 양극화를 만들었으며 무엇을 반성하라는 것인지 의문이다. 무엇이 편협하고 오독(誤讀)이라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350만 중소기업이 전부 새 정권 앞에서 반성해야 하나.

새 정부 들어 비정규직 문제는 정상 궤도를 이탈해 점점 정치화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 초기의 성과로 집착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경제 문제는 모두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다. 원인을 제대로 찾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명령과 압박으로 눈앞의 성과를 보여주려 하면 결국 다른 곳에서 더 큰 문제가 터진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강제로 바꾸게 하는 것은 몇몇 대기업 계열사에선 가능할지 몰라도 비정규직의 95%가 몰려있는 중소기업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추진하고 대기업 강성·귀족 노조들의 양보로 여력을 만들어 하도급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문 대통령은 엊그제 청와대 회의에서 대통령에게 이견을 말하는 것이 "참모의 의무"라고 했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였다. 그런데 측근도 아닌 민간에서 나온 이견을 즉각 밟아버렸다. 경총의 의견은 사실 이견도 아니다. 참고 삼아 얘기한 견해에 불과했다. 국정기획위 김진표 위원장은 "완장 찬 점령군 행태를 보여선 안 된다"고 했지만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점령군 행세 아닌가. 말로는 소통과 통합을 내세우면서도 행동은 반대다. 전(前) 정부와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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