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우병우와 그의 동기들.. 악연과 인연 사이

강훈 기자 입력 2017. 5. 27. 03:04 수정 2017. 5. 2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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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 19기 동기들.. 우병우 민정수석 된 후人事에서 희비 엇갈려
라이벌이었던 봉욱 검사.. 고검장 승진 탈락하고
'특수통'이었던 조은석, 한직으로 발령나기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법연수원 19기다.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평검사,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중간 간부를 지낸 19기 검사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 전후에 '검찰의 별'인 검사장이 됐다. 10명의 검사장을 배출한 19기는 우 전 수석과의 관계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우 전 수석은 2008년 3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2부장이 됐다. 검찰 내부에선 서울중앙지검의 부장을 하느냐 못하느냐, 한다면 어떤 자리를 맡느냐가 중간 성적표의 역할을 해왔다. 당시 기업 비리와 주가조작 사건 등을 담당하는 인기 부서 부장이 된 우 전 수석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야망'을 드러냈다고 한다. '40대 검찰총장'이 되어보겠다는 것. 당시 41세 우 전 수석 입장에선 향후 인사 때마다 동기들보다 앞선다면 '40대 총장'은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당시 우 전 수석의 한 선배 검사는 "우 부장은 똑똑하지만 명예욕과 경쟁심이 강해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동기나 선배가 많았다"고 했다.

우 전 수석이 넘어야 할 동기 중엔 쟁쟁한 검사가 많았다. 그중 한 명이 봉욱 검사였다. 우 전 수석의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이며 4학년 때 함께 사법시험에 합격한 봉 검사는 평검사 시절부터 법무부 검찰과와 대검 연구관 등 요직을 맡은 19기 선두주자였다. 그리고 우 전 수석이 금융조사 2부장이 되던 인사에서 선임 부서인 금융조사1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동안의 성적을 고려한 자연스러운 인사로 보였으나, 우 전 수석은 선배도 아닌 동기가 금융조사 1부장이 되자 주변에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봉 검사는 이후 대검 공안기획관, 법무부 인권국장 등 중요 자리를 거쳐 2013년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봉 검사는 겸손하고 일 처리가 깔끔해 위아래 모두 호감을 갖는 검사"라고 했다.

하지만 봉 검사는 2015년 초 3대 요직에 꼽히는 법무부 검찰국장에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고배를 마셨고, 그해 12월 고검장 승진에서도 탈락했다. 동기 3명은 고검장에 올랐으나 봉 검사는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수평 이동했다. 당시 검찰 인사에 관여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우 전 수석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우 전 수석과의 관계에 따라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 인사였다"면서 "우 전 수석이 아직도 건재했다면 봉 검사는 지금쯤 변호사가 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봉 검사는 이번 새 정부 인사에서 고검장급인 대검 차장으로 임명됐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파격 발탁으로 검찰이 술렁이자, 조직 안정 차원에서 봉 검사를 승진시켰다는 해석이 나왔다.

우 전 수석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동기 중에는 조은석 사법연수원 부원장도 있다. 고려대 84학번으로 호남 출신인 조 부원장은 대선 자금 사건 등 특별 수사 경험이 많았다. 우 전 수석이 '특수통'으로 알려져 있지만. 검찰 내부에선 19기의 특수통 검사를 고르라고 하면 우 전 수석보다 조 부원장을 꼽는 이가 적지 않았다. 금융조사2부장을 마친 우 전 수석은 대검 대변인이 되길 희망했으나, 한 단계 급이 낮은 중수1과장으로 전보됐다. 그리고 대검 대변인 자리엔 조 부원장이 임명됐다.

조 부원장은 이후 순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거쳐 2013년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반면 우 전 수석은 법무연수원에서 조 부원장과 함께 있다가 검사장이 되지 못한 채 검찰을 떠났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됐고 이듬해 1월 민정수석이 됐다. '40대 총장' 꿈은 접었으나 더 강력한 '40대 수석'이 된 것이다.

조 부원장의 인사가 꼬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대검 형사부장으로 세월호 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청와대와 마찰을 빚었던 조 부원장은 2015년 2월 이미 동기가 검사장을 거치고 간 청주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작년엔 한직(閑職)인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발령났다. 우 전 수석과 조 부원장 관계를 아는 검사들 사이에선 "잔인한 인사"라는 말이 나왔다.

19기 '공안통'으로 알려진 공상훈 서울서부지검장도 우 전 수석과 매끄럽지 않은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공 지검장은 우 전 수석과 같은 TK 출신으로 대학 6년 선배이지만 둘 다 직설적인 성격으로 서울동부지검 부부장으로 근무할 때에도 서로 잘 맞지 않았다"고 했다. 공 지검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동기 중 가장 먼저 검사장에 올랐으나 현 정부에선 작은 검찰청을 전전하다 고검장 승진에 고배를 마셨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우병우 사단이라고 불리는 우 전 수석이 챙겼던 후배나 동기가 있는 반면, 악연으로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한 동기나 선배들도 적지 않았다"면서 "인생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더니, 얼마 되지 않아 정부도 바뀌고 관계도 역전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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