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

2017. 5. 2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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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젊은층은 비판적 기류 우세
이념지형 갈수록 기울어
자유시장 이해 확산 절실
복거일소설가
19세기 사람들은 “혁명을 하려면 인쇄기 먼저 장만하라”고 했다. 인쇄기로 격문들을 찍어내 널리 퍼뜨려야 혁명을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화폐와 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인쇄기가 필요했다. 20세기엔 “방송국 먼저 점령하라”고 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먼저 인터넷에서 우위를 확보하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제 인터넷에서의 관심을 반영한 ‘구글 트렌드’가 여론조사보다 정확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중요하다.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들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정보를 제공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의 중요성은 바뀌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특히 중요한 정보는 이념이다. 이념은 사람의 천성, 사회의 구조와 작동 원리, 개인들과 사회 사이의 관계 같은 근본적 문제들에 관한 정보들의 거대한 복합체다.

이념들은 사람의 뇌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런 경쟁에서 이긴 이념에 따라 사람은 행동한다. 선거도 내전도 실은 개인들의 뇌에서 벌어진 이념적 경쟁의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이념이 운명을 결정한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사람에게 자신의 이념은 소중하다. 재산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놓는 사람은 없지만,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는 많다. 문화 현상을 설명하는 ‘밈(meme) 이론’은 그래서 이념과 같은 생각들이 우리 마음을 지배한다고 지적한다. 유전자들이 궁극적으로 우리 몸을 지배하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구성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호의적인 후보들보다는 비판적인 후보들이 젊은 세대들의 열정적 지지를 받았다. 박근혜 정권의 과오들로 보수의 도덕적 권위가 추락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선택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오랫동안 학생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비판적인 교과서들을 비판적인 교사들의 지도 아래 배웠다는 사정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을 크게 바꾸었다.

이런 위험에 보수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좌파 정권들 아래 이념적 지형이 위태롭게 기울었어도 보수 정권들의 지도자들은 무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념을 넘어서 실용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누구도 이념을 넘어설 수 없다. 자신은 이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미숙하고 혼란스러운 이념을 가졌을 따름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을 인도할 체계적 이념이 없으므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인기가 떨어지자 이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해 일시적으로 인기를 높였다. 덕분에 우리와 일본 사이의 관계는 완전한 회복이 힘들 정도로 허물어졌다.

평생을 이념적 무임승차자로 살아온 대통령 아래 편향된 이념적 지형을 바꿀 기회가 그렇게도 허망하게 지나갔다. 뒤를 이은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사회주의 경제 정책인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삼았다. 그리고 임기 초기엔 그것을 실제로 추진했다.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가 크다면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은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던 시기보다 훨씬 더 기울었다. 중등교육 역사 교과서 파동에서 위태로운 상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부가 만든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용감하게 채택한 학교가 집중 공격을 받았어도 정부가 그 학교의 권리를 전혀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원래 시장경제는 이해하기 어렵고 직관에 맞지 않는다. 이념들은 옳아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천성에 맞기 때문에 받아들여진다. 우리 마음은 오랜 원시시대에 다듬어졌다. 그때엔 인류는 혈연이 기본 질서여서 작은 부족을 이루어 살았고 거의 모든 재산들을 공유했다.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의 분업과 교환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는 원시시대에 다듬어진 우리 마음에 너무 낯설고 거대하다. 비록 거대하고 복잡한 시장 속에서 살지만, 우리 마음은 소박한 공동체를 늘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런 성향에 어울리는 민중주의(populism)에 끌린다.

사회화의 과정을 밟는 학생들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는 일은 중요하다. 특히 자유 시장이 개인들을 정치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일은 긴요하다. 젊은이들이 그런 지식을 얻을 기회가 줄어들면 대한민국 사회는 바탕부터 허물어진다.

우리 사회의 편향된 이념적 지형을 조금이라도 바로잡는 일은 정권의 차원을 훌쩍 넘는 과제다. 우리 후손들이 현실적 세계관을 지니도록 해 마음이 병들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복거일 소설가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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