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짓돈, 검은돈, 뻔뻔한 돈..특수활동비 흑역사

입력 2017. 5. 26. 11:36 수정 2017. 5. 2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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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이승준의 핑퐁_'솔선수범'으로 특수활동비에 칼뽑아든 청와대

[한겨레]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여민관 3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 시작 전 손수 커피를 따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깜깜이 예산’으로 지적돼온 특수활동비에 칼을 빼 들었습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127억원 중 42%에 해당하는 53억원을 아껴 이를 청년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 예산에 보태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또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및 합동감찰반에 정부의 특수활동비 사용 내용 전반을 들여다볼 것을 지시했습니다. 청와대는 대통령 가족의 식비, 칫솔, 치약 등의 생활비부터 ’퍼스트 도그’, ‘퍼스트캣’의 사료값까지 대통령 급여로 부담할 것이라는 방침까지 밝혔습니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하면서 특수활동비 제도 전반을 전폭적으로 손보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특수활동비란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나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가리킵니다. 수사·감사·예산·조사 등 특정업무수행에 소요되는 특정업무경비도 있습니다. 표현부터 애매모호합니다. 그런데 예산은 엄청납니다. 최근 한국납세자연맹이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특수활동비 예산은 총 8870억원으로 2015년보다 59억3400만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또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정부의 특수활동비는 모두 8조5631억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10년간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쓴 정부 기관은 국가정보원(4조7642억원)이었고 국방부(1조6512억원), 경찰청(1조2551억원), 법무부(2662억원), 청와대(2514억원)가 뒤를 이었습니다. 2016년에도 편성된 특수활동비 역시 국가정보원 4860억원, 국방부 1783억원, 경찰청 1298억, 법무부 286억원, 청와대(대통령 경호실, 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266억원 순이었죠.

특수활동비는 매년 9000억원 가까이 국민들의 세금으로 편성되지만 누구에게 얼마나 지급되고, 어디에 쓰였는지 알 수 없는 ‘묻지마 예산’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수사와 정보수집 등 사용처를 밝히면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생략할 수 있다”는 각 정부 부처의 지침 때문에 영수증 처리를 안 해도 되는 경우가 많아 사후 검증도 쉽지 않죠. 그렇다 보니 특수활동비는 본래 용도 외에도 고위 공무원들의 ‘쌈짓돈’이나 권력기관의 ‘검은돈’으로 빈번하게 사용돼왔습니다. 특수활동비의 ‘흑역사’를 짚어봅니다.

유흥비, 돈 봉투, 접대비…고위 공직자들의 ‘쌈짓돈’

특수활동비가 공직자들의 식사 접대나, 유흥비, 골프 접대 등에 사용된 사실은 그동안 끊임없이 드러났습니다. 사실상 고위 공직자들의 쌈짓돈으로 사용돼 온 것이죠.

2007년 5월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부산시의회 의장 등과의 저녁 식사에 특수활동비로 600여만원을 써서 논란에 올랐습니다. 당시 비서가 신용카드로 결제했는데 법무부는 특수활동비라고 인정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김 장관은 뒤늦게 사비 처리했죠. 2009년 11월 김준규 검찰총장은 출입기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특수활동비로 기자들에게 50만원이 든 봉투를 돌려 입길에 올랐습니다. 그는 2011년에도 검찰 고위간부가 참석한 워크숍에서 검찰 간부들에게 200만~300만원씩, 총 9800만원의 특수활동비를 봉투에 담아 격려금으로 돌려 물의를 빚었습니다.

2010년 9월, 당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문화부 제2차관 재임 시절 13개월간 1억9000만원에 이르는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개인 유흥과 골프 접대비로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죠. 2013년 1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사퇴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 30가지에 가까운 의혹이 제기됐지만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건 부적절한 특정업무경비 사용이었습니다. 월 400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통장에 넣어두고 주말 휴일에 수차례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이 전 재판관에 대해 “이동흡 후보자의 별명이 돈을 흡입한다고 해서 '이돈흡'이라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2013년 1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서 낙마한 이동흡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을 맡았다. 이 변호사가 3월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판결에 앞서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정원 댓글에도 특수활동비…권력기관의 ’검은돈’

특수활동비의 핵심은 국가정보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년 전체 특수활동비의 절반을 국정원이 사용하죠.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예산은 2013년 4672억원, 2014년 4712억원, 2015년 4782억원, 2016년 4862억원으로 매년 늘어났습니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예산은 세부 내역을 알기 힘든 데다, 그마저도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비공개로 결산이 이뤄져 사실상 ‘깜깜이 예산’입니다. 물론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특수성을 이해해 달라는 입장이죠.

하지만, 2013년 11월 국회 정보위 국감에서는 국정원이 불법 대선개입 혐의를 받는 심리전단 소속 여직원 김아무개씨의 댓글 작업에 동원된 '알바'에게 월 280만원씩 11개월 동안 3080만원을 특수활동비로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역시 대선개입 의혹을 받은 군 사이버사령부도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지원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또 2015년 7월 국정원이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특수활동비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국정원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해킹해 실시간으로 도·감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대선이 있던 2012년에 구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때 특수활동비가 사용됐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구매한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의 소개 영상 갈무리

국정원뿐만 아니라 특수활동비는 권력의 그늘에서 ‘검은돈’으로 사용돼왔다는 정황이 심심치 않게 드러나곤 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공직윤리관실 특수활동비에서 매달 최대 200만원씩 “이영호 전 비서관 등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에 상납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9년 구속돼 결국 징역 6년을 선고받기도 했죠.

최근 감찰을 받게 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현 부산고검 차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현 대구고검 차장)의 ‘돈 봉투 만찬’ 역시 권력기관의 인사들이 특수활동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수사 책임자인 이영렬 전 지검장과 ‘조사 대상’이었던 안태근 전 국장은 수사 종결 직후 휘하 간부들을 거느리고 부적절한 만찬을 한 것도 모자라 특수활동비로 돈 봉투를 주고받았습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두 사람에 대한 감찰을 직접 지시했습니다.

생활비, 유학자금…정치인의 ‘뻔뻔한 돈’

특수활동비 논란은 2년 전 국회에서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왔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발언 때문이었죠. 2015년 5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홍 전 지사는 자신의 ‘무죄’를 밝혀줄 아내의 비자금 출처로 자신이 2008년 원내대표 시절 쓰던 ‘국회 대책비’(특수활동비)를 꼽았습니다. 앞서 그는 2011년 한나라당 당 대표자 경선 기탁금을 성 전 회장에게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이자 아내 비자금으로 경선 기탁금을 냈다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홍 전 지사는 2015년 5월11일 기자회견에서 “2008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매달 국회 대책비로 나온 4000만~5000만원 중 남은 돈을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줬고 집사람이 이를 비자금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당당하게 ‘커밍아웃’했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 불법을 시인한 것입니다. 홍 전 지사가 언급한 돈은 국회사무처가 국회 운영위원장에게 매달 지급하는 의정활동 지원비와 위원회 운영지원비로 특수활동비에 해당됩니다. 국회에는 보통 80억원 정도의 특수활동비 예산이 편성되는데 국회 의장단과 여야 원내대표, 국회 상임위원장 및 상임위 간사들에게 배분됩니다.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하는 여당 원내대표는 원내 활동지원 명목으로 매달 5000만원에 달하는 특수활동비를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입법 로비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 의원도 특수활동비를 “자녀 유학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밝혀 논란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국가 예산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의원들이 의정활동 보장을 위해 세금에서 지급되는 돈을 생활비나, 자녀 유학자금에 쓴 것에 대해 “뻔뻔하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투명한 돈은 투명한 활동으로…

문 대통령이 특수활동비 제도 전반 개선에 칼을 뽑은 것은 단순히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위 공무원들의 ‘쌈짓돈’, 권력기관의 ‘검은돈’, 정치인들의 ‘뻔뻔한 돈’을 투명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국내 정치 개입 의혹에 논란에 수시로 휩싸이는 국정원의 경우 특수활동비 쓰임새가 투명해지면 국내 정보수집 활동도 변화가 있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옵니다. 물론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이 고위공직자와 정보기관의 본연의 업무를 위축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투명한 돈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투명한 활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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