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전자 변화'로 규명

김기범 기자 2017. 5.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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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서울대 연구진, 화학물질과 연관된 DNA 분석 통해 추적
ㆍ판정 어려워 보상·지원 못 받는 피해자들에게 도움 줄 듯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유전자 변화로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실시된다. 정부가 피해자 찾기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피해자 확인 및 피해 여부 판정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진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DNA 변화 상태로 피해 여부를 확인하는 연구에 착수했다고 25일 밝혔다. 유전체역학 전문가인 성주헌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받은 예산을 통해 DNA 변화 여부를 확인할 피해자 50명 정도를 모집 중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정부에 신고한 이는 5566명이지만 피해자로 판정받은 이는 18%가량인 982명에 불과하다. 판정을 받은 이들 가운데 1단계(거의 확실), 2단계(가능성 높음)로 인정받은 이는 28.5%인 280명뿐이다.

정부가 폐질환 일부에 대해서만 피해를 인정하고 있는 탓에 폐렴·천식 등 다양한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등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은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서울대 연구진의 이번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흡연자의 경우 DNA에서 특이한 메틸화 변화가 일어나고, 거의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것에 착안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DNA에서도 피해를 일으킨 화학물질들과 연관된 부분의 변화를 찾아내기 위해 연구 중이다.

서울대 연구진은 이미 국제암연구소(IARC)와 흡연으로 인한 DNA 변화에 대한 공동연구를 수행해 변화가 나타나는 부위를 찾아낸 바 있으며 관련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성주헌 교수는 “흡연 연구에서는 외국 연구진의 연구결과와 정확히 일치하는 변화 부위를 10개 정도 발견했다”며 “흡연의 경우 타르를 분해하는 유전자 부위의 확인을 통해 흡연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전체 DNA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분해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분석할 계획이다.

여기서 의미 있는 변화를 찾아낼 경우에는 앞으로 해당 부분만 따로 분석하면 되기 때문에 피해자 판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구매 영수증이나 의료기록, 사진 등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용 여부를 스스로 입증하지 못해도 유전자 변화 여부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성분에 노출된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DNA의 기능이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대물림될 수 있음을 뜻하는 후성유전체 연구는 최근 학계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다. 해외 연구에서는 조부모가 굶주림을 겪은 경우 손자손녀에게서 유전자 변화가 나타난다는 내용도 밝혀진 바 있다.

성 교수는 “이번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앞으로 피해자의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며 “피해 여부를 판정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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