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女 선수 라커룸에 男 감독 안 들어가듯

김동석 스포츠부장 2017. 5. 26.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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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스포츠부장

새 정권은 장관의 30%를 여성으로 채우고, 장차 남녀 동수로 구성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선도하겠다는 선언이다. 국내 스포츠계의 여성 지도자 비율은 얼마나 될까. 둘러보면 남성 천국이다. 남자 프로야구, 축구, 농구, 배구 39개 팀 감독 전원이 남성인 건 그렇다고 치자. 여자 프로농구 6개 팀 감독이 전원 남성이고, 여자 축구는 8개 실업팀 중 7팀 감독이 남성이다. 6개 팀인 여자 프로배구도 지난 시즌까지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 유일한 여성으로 버티다가 올 시즌에야 이도희 감독이 합류했다.

기업이나 공공 기관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스포츠에서 여성 지도자 비율은 선수 시절 공헌도에 비해 별나다고 할 정도로 낮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한국의 금메달 13개 중 여자 선수가 5개를 가져왔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때는 한국 금·은·동메달 합계 8개 중 7개를 여성이 따냈다. 남성들 분발을 촉구해야 할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 단체의 임원 여성 비율은 6% 수준이다. 많은 여성 스포츠인은 "우리에게 무슨 유리 천장이 있느냐"고 한다. 은밀한 차별이 아니라 남성들이 노골적으로 철벽을 둘러쳤다는 항변이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여성에게도 감독은 쉬운 자리가 아니다. 한국마사회 감독으로 10년째 활동하는 탁구 스타 출신 현정화는 "많은 걸 버렸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2013년부터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 4학년이던 딸을 외국에 보내고 혼자 지낸다. 한국에서 감독직과 엄마의 역할을 도저히 병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버려야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건 현실이다. 바꾸려고 노력해 봤지만 헛일이었다"고 했다.

4월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예선 수원 삼성과 이스턴 SC의 경기 시작전 이스턴 SC 찬유엔팅 감독이 벤치에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OSEN

시대가 바뀌는 만큼 스포츠도 남녀 감독 비율을 맞추는 쪽으로 나가야 하는 걸까. 성별 문제가 아니라 효율성의 문제를 짚어 봤으면 한다. 신체 능력엔 남녀 간 차이가 있지만 감독 역할에 필요한 '스포츠 지능, 운영 능력'에는 차이가 없다. 유능한 여성이 남자팀을 지휘하는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홍콩 프로축구 이스턴SC의 찬유엔팅(29)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남성 1부 축구팀을 우승시킨 여성 감독이 됐다. 영국 BBC는 지난해 그를 100대 인물에 선정했다. 애덤 실버 NBA커미셔너(총재)는 올해 "이른 시일 안에 NBA에 여자 감독이 등장할 것"이라면서 "감독은 점프력이나 파워를 보고 뽑는 게 아니다"고 했다.

지금껏 "여자팀을 남자 감독이 어떻게 지휘하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남자팀을 여자 감독이 어떻게 지휘하느냐"는 말은 통하지 않게 됐다. 남자들이 벌거벗고 다니는 라커룸에 여자 감독이 들어갈 수 있겠느냐는 현실론도 번지를 잘못 짚었다. 여자 선수 라커룸에도 남자 감독들 안 간다. 그래도 팀 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스포츠는 승리의 효율을 위해 할·푼·리, 0.001초까지 다투는 분야다. 그러면서도 '감독=남성'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결과적으로 우수 능력자를 사장하는 비효율을 저지르고 있다. 스포츠계의 남성 철벽은 남녀를 떠나 우수한 인물, 뛰어난 지도력과 승부 감각을 가진 인물을 발탁하는 과정에서 깨질 걸로 기대한다.

2014년 10월14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진행된 '‘NH농협 V-LEAGUE 2014-2015 여자부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각 팀 감독들이 트로피를 앞에 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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