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협의 없이 兆단위 사업 덜컥 발표.. 재정 감당할수 있나

2017. 5.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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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위 업무보고]검토없이 쏟아지는 공약이행 방안

[동아일보]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각 부처가 공약 이행 방안을 본격적으로 발표하면서 조 단위의 예산 집행 계획이 잇달아 쏟아지고 있다. 누리과정 국비 지원, 사병 월급 인상 등 대부분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사안들이다. 이르면 6월 발표될 추가경정예산 편성안에, 늦어도 9월 나오는 내년 예산안에 들어갈 것이 유력하다.

문제는 새 정부가 대규모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고(國庫) 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 곳간 열쇠를 쥔 재정당국은 ‘대통령 공약 이행’이라는 명분에 눌려 타당성 검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내부적으로 공약 우선순위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재정적자가 심해져 나라살림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크다.

○ 부처 협의 없이 ‘연 2조 원’ 사업 밀어붙이기

교육부는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 예산 전액을 국고로 부담하겠다고 보고하면서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하지 않았다. 연 2조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재정사업을 당국과 논의 없이 덜컥 발표하면서 정부 내부에 혼란이 빚어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기재부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기재부는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공약 이행은 추후 국정기획위가 국정과제로 확정하면 세부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엎질러진 물이다. 이 정도 발표가 됐는데 집행 시기를 미루거나 예산 투입액을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누리과정 예산 전액 국비 지원이 실현되면 수년간 되풀이됐던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간 갈등은 일단 해소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육과 육아를 ‘국가의 책임’이라며 누리과정을 확대했지만 비용을 시도교육청에 부담하도록 하면서 갈등이 컸다.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계기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제도 개선을 추진하려 했던 기재부로서는 개혁 동력을 잃게 됐다. 현행법상 정부는 내국세의 20.27%를 시도교육청에 교육교부금으로 줘야 한다. 문제는 초중고교생은 2014년 61만5000명에서 2020년 54만5000명으로 7만 명 감소하는데, 교부금은 2014년 40조9000억 원에서 2020년에 58조9000억 원으로 오히려 늘어난다는 점이다. 정부는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드는데도 예산이 증가하는 현 시스템이 나라살림 전체를 왜곡시킨다고 보고 손을 댈 예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농업 예산도 더 불어날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국정기획위 업무보고에서 이개호 경제2분과위원장은 “쌀값이 가마당 12만 원까지 추락해 가격 안정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쌀 과잉 공급이 우려되는데 올해 2조3000억 원인 쌀 직불금을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 국방예산, 개혁 없이 ‘눈덩이’ 증액

국방예산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는 국방개혁과 정예강군 육성의 필수조건으로 국방예산의 안정적 확보를 꼽으며 예산 증액을 약속했다. 참여정부 집권 기간 연평균 국방예산 증가율은 8.76%였다. 문재인 정부가 내년부터 매년 8%씩 증액할 경우 2018년 43조5614억 원. 2020년에는 50조8100억 원으로 국방예산이 각각 추산됐다. 2021년(54조8748억 원)과 2022년(59조2647억 원) 추정치를 포함하면 5년간 총 255조5572억 원의 국방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예상됐다.

당장 사병 월급 인상에서 대규모 예산이 소요된다. 문 대통령 공약대로 내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의 30% 수준까지 병사 월급을 올리려면 3000억 원을 넘어 연 7000억∼8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급격한 증가를 두고 일각에선 경제상황과 정부 재정 실태를 감안할 때 과도한 목표라는 지적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어느 한 해에 치우치지 않도록 국방예산의 안정적 증액 계획과 더불어 예산 효율성을 제고하는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 기초연금 인상, 일자리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조 단위의 재정 사업들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기초연금 인상의 경우 문 대통령은 연 4조4000억 원이면 충분하다고 한 반면에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대 연 8조2000억 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딱 부러지는 재원마련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주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방안에 “담뱃세보다 훨씬 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중앙정부 재원을 지방으로 돌릴 계획을 내놨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새 정부가 준비된 정부의 면모를 보이려면 공약 실천 계획을 발표하기에 앞서 재정건전성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 / 유덕영 기자·윤상호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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