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세계읽기]트럼프 '특검정국'에 월가가 호황인 이유는?

김진호 선임기자 2017. 5. 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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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CNN방송이 전한 미국 자본시장의 24일(현지시간) 공포&탐욕 지표. 미국 법무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특별검사를 임명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투자자들의 심리는 1주일 전에 비해 오히려 호전됐다. CNN홈페이지

역시 월스트리트다! 민주주의 국가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라는 두개의 기둥에 의해 유지된다. 이중 정치적으론 연방의회가, 경제적으론 자본시장이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해 선거캠프와 러시아와의 유착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특별검사 로버트 뮬러가 임명된 지 1주일이 지났다. 연방의회는 민주, 공화 양당이 각각 정파적 이익에 코를 박고 있어 특검정국이 탄핵정국으로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당분간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다면 미국 사회의 향방에 대한 후각이 가장 발달한 월스트리트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트럼프 ‘탄핵정국’ 비웃는 월가의 호황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특검임명 1주일이 된 24일(현지시간) 마감가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21,012.42)를 기록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74.31포인트가 늘었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0.36%포인트 올랐다. 한마디로 특검이건, 탄핵이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채 경제적 호재에 따라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실적 호조와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자산축소 방침 발표 등이 호재가 됐다.

이는 1주일 전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장(FBI) 국장을 전격해임(15일)하고 특검임명(17일)으로 이어지던 지난주 시황과 사뭇 대비된다. 17일 다우지수는 올해들어 최대 하락폭(1.78%)을 기록하며, 지난 한달 간의 상승분을 반납했다. S&P500지수는 1.82%, 나스닥은 2.57% 주저앉았다. S&P500지수의 벤치마크 11개 업종 중 9개 업종의 주가가 주저앉았다. 하지만 24일에는 그중 10개 업종에서 기업실적이 호전됐고 특히 금융과 정보기술(IT) 업종의 순익증가율이 가장 컸다.

취임후 첫 해외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협의회에서 유럽 지도자들과 회담을 하기에 앞서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 외교정책 고위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브뤼셀|EPA연합뉴스

어떻게 이런 반전이 가능했을까. 이른바 정·경 분리가 이뤄진 것일까. 아니다. 정치, 특히 트럼프의 정치가 돈이 된다는 시장의 전망이 가미됐기 때문이다. 1조달러 규모의 기간시설 투자계획과 총 3조달러의 경기부양예산, 금융규제 완화, 감세안, 오바마케어(the Affordable Care Act·지불가능한 건강보험법)의 폐지, 국방예산 증액 등 시장에 던져진 정치적 호재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경 유착까지는 아니더라도 ‘정·경 수렴’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불분명한 악재보다는 뚜렷한 호재에 반응하는 시장의 기제

뉴욕증시에는 7개의 공포(Fear)&탐욕(Greed) 지표가 있다. 25일(현지시간) 현재 매도·매입옵션과 마켓 모멘텀 지표는 ‘극도의 탐욕’이고, 정크본드수요·마켓 변덕(VIX)는 중립, 주가견고성(SPS)·주가폭(SPB)은 ‘공포’를 가르켰다. 조세회피지역 수요(SHD) 만이 ‘극도의 공포’였다.

이를 종합한 월가의 공포&탐욕 지표는 이날 54(중립)를 가르켰다. 0은 극도의 공포를, 100은 극도의 탐욕을 뜻한다. 1주일 전의 45와 마찬가지로 ‘중립’이지만, 탐욕 쪽으로 9이동한 것이다. 1달 전의 39(공포)보다 오히려 개선됐다. 물론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이 확실시됐던 1년 전의 탐욕(63) 보다는 악화됐지만 트럼프 특검정국에도 불구하고 ‘탐욕’을 향해 이동중이다. 아무리 트럼프가 대통령답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해도 월가는 그의 당선과 취임 이후 여전히 호황을 구가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성숙단계에 접어들어인지 정치상황과 정치를 보는 시장의 시각은 다르다. 공포와 탐욕 등 투자자들의 감정이 시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정·경 수렴은 굳이 실물경제나 현실정치를 온전히 반영하지 않는다. 시장은 윤리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치의 위기가 오히려 미국 경제의 힘을 보여주었다”

세계 곳곳에서 정서적으로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월스리트의 반응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시장이 정치적 격변에 결정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시장의 길을 가는 것은 나쁜 소식이 아니다. 세계경제까지 흔들린다면 곧바로 동아시아 분단국가의 장바구니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뉴욕증시는 물론 세계증시의 전반적인 호황은 글로벌 차원의 경제의 펀더멘털 향상과 글로벌 기업들의 높은 수익률 덕분이다.

미국 뉴욕증시. NYSE홈페이지

뉴욕증시에는 특히 트럼프가 취임 초 약속했던 조세제도개편과 3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예산으로 대표되는 ‘트럼프 거래(trade)’의 전망이 다소 약해졌지만 그 것 역시 반영한 수치로 봐야할 것 같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바람직하지만 시장은 시장의 길을 간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처럼 엄청난 격변이 닥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유효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화 질서가 바뀌지 않는 한 반복될 현상이다.

코미 국장의 해임과 트럼프의 대 러시아 기밀누설, 러시안 커넥션 수사중단 요구 등의 정치가 악재가 쏟아진 한주를 보낸 뒤인 2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초조한(nervous) 한 주가 (오히려) 미국의 힘을 보여준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제도들이 트럼프 변수를 극복할 것이라는 강한 신뢰와 좋은 실적의 기업들, 원활한 유동성, 경제 저변의 탄력성 등 미국의 힘이 입증됐다”고 진단했다. 아직까지 트럼프가 일으키는 정치적 혼란이 미국 시장에 결정적 타격을 주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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