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또는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됩시다

2017. 5. 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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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SNS 악플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하여

지난 휴일 하루를 오로지 세차에 매달렸다는 분의 사연을 들었습니다. 차를 청소하고 닦는 데 무려 6시간이나 보냈다고 하니 소중한 휴일 낮을 세차에 매달린 셈입니다. 분명 정상적 상황은 아닌 것 같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이러다 무슨 일 일어나겠더라고요, 정말! 너무 어이가 없고 한편으로는 미칠 것 같아서 그걸 잊느라 차를 닦는 데 몰두했습니다.”

사연인즉, 얼마 전 소셜 미디어에 특정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 춤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악성 댓글에다 자정 넘은 시각까지 메신저 공격에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서로 논리적인 의견을 기대했는데, 헛된 기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신상정보까지 공개되어 회사에서 ‘소셜 미디어 활동 주의하라’는 주의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더욱 화가 났던 것은 평소 자기와 친한 척하던 사람이 비난하는 사람들의 글에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는 이중적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세상과 소통을 좀 더 잘하기 위해 남다른 애정으로 소셜 미디어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했습니다. 모르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좋아요’ 숫자가 늘어나는 소소한 재미는 건조한 일상에 오아시스 같았는데, 어느 날 하루아침에 융단폭격을 맞아 소셜 계정을 폐쇄하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비통해했습니다. 허망하고, 사람들을 대하기 두려워졌다고 합니다.

요즘 이런 부작용을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특히 선거를 치르면서 가까웠던 사람들의 관계조차 찢어지고 멀어졌습니다. 소셜 시대의 그늘입니다. 큰 생각 없이 올린 작은 글 하나가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집단, 정치 세력이 비난받으면 곧 그것을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위 ‘팬덤’이라고 표현되는 현상입니다.

대부분의 불행은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정확하게는 사람들과의 언어에서 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칭찬과 ‘좋아요’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칭찬이 언제 나를 향하는 화살로 바뀔지 모릅니다. 조심해야 할 이유입니다.

한국의 대학에서 평균 5000시간을 수강해야 졸업한다고 하니, 듣는 훈련 시간이 긴 만큼 당연히 경청의 힘이 대단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흔히 ‘논쟁에서 지면 기분 나쁘고 이기면 친구를 잃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논쟁적인 글이 진행될수록 소셜 미디어에서 친구들은 떨어져나갑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입장과 처지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 때문이고, 그만큼 소통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명예입니다.

우리는 파리공과대학의 안토니오 카실리 교수의 표현처럼 서로가 서로를 상호 감시하는 ‘빅 아더’(Big Other)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빅 브라더’ 개념을 패러디하여, 과거에는 국가가 중앙 집중화된 형태로 시민을 감시했으나, 오늘날에는 시민들이 서로서로 감시하는 ‘빅 아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순기능이 있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역기능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폐해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칼럼 쓰는 사람들이 댓글 싸움에 지쳐 그만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생각과 관점이 다른 사람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하는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도 심각합니다.

우리는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임을 확인할 때입니다. 단체카톡방에서의 집단 언어폭력, 평소 조용하거나 소극적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다른 말과 행동을 할 때입니다. 이를 독일의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은 <침묵의 나선>이란 저서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다수 의견에 속해 있다 생각되면 자신 있게 겉으로 표명하지만, 소수 의견에 속한다 생각하면 침묵한다.”

다수 의견은 마치 나사의 바깥 선을 돌면서 점점 커지는 것처럼 세력이 늘고, 소수 의견은 나사 안쪽 선을 돌면서 줄어드는 이치를 설명한 이론입니다. 사람들은 따돌림당하고 낙인찍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선거 때, 회사의 주요 의사 결정 때, 다수가 내 의견에 동조한다고 생각했다가 착각임을 깨닫게 되는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받고 싶어합니다. 남에게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소셜 미디어는 인간의 그런 본능을 절묘하게 파고든 매체입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반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위대한 종교지도자들도 자신을 반대하는 ‘안티’ 때문에 고초를 겪었습니다. 안티를 두려워하면 큰 인물이 되기 어렵습니다. 안티란 결국 나를 객관화하기 위한 하나의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닐까요? 멋진 인물들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줄 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타인들의 시선은 차갑고 냉혹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고통을 통해 자기 자신이 남과 얼마다 다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진정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분별하는 법도 배우게도 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댓글과 좋아요 숫자에 신경 쓰느라 우리는 얼마나 자기 자신의 고유한 재능과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을까요? 정작 진짜 친구에게는 얼마나 소홀했을까요?

불행은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지만, 역설적으로 행운의 바람 역시 사람들에게서 불어옵니다. 이제 허망한 대상을 쫓지 말고 진짜 친구에게 달려가보세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글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 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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