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뷰] '노무현입니다' 우린 모두 노무현이었다

한예지 기자 2017. 5. 2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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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무현 입니다 리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노무현입니다'는 지난 2002년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고 '시민혁명'을 일으켰던 노무현, 그 이름이 지닌 보존적 가치를 담은 영화다.

5월 25일 개봉된 영화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제작 영화사 풀)는 장미 대선이 아니었다면 암흑 속에 묻혀야 했을지 모를 영화다. 제목에서도 당당히 말하고 있듯, 세월호 참사만큼 금지 콘텐츠였던 故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기 때문. 영화는 지난 2002년 지지율 2%의 만년 꼴찌 후보가 대선 후보 1위에 오른, 한국 정치사에 다신 없을 기적 같은 경선 과정을 생생히 담고 있다.

처음부터 한 가지 의문점이 들지 모른다. 대선 후보 1위 그 이후, 대통령 당선이라는 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완성도 있었을 텐데 왜 영화는 2002년 경선 당시에 초점을 맞췄을까. 이유는 확실하다. 색깔론, 지역주의, 정치모략이 판치는 한국 정치의 축소판이자 확장판, 언론과 정치인들이 좌지우지하던 경선판. 그곳에서 노무현이란 콘텐츠와 시민, 이 둘의 '케미'로 '시민혁명'이 일어난 순간이기 때문. 실제 영화는 노무현과 보통 사람들의 뜨겁고 벅찬, 순수와 열망의 순간들을 담아냈다.

영화는 요란스럽고 격동적인 '사계'를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삼아 화려한 오프닝을 연다. 88 올림픽부터, 전두환에 삿대질을 하며 "그럼 국민의 비난은 누가 책임질 거냐" 외치는 패기 넘치는 한 남자는 이후 김영삼의 삼당합당에도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라고 발끈하며 튀어 오른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개구리소년 실종사고,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던 뉴스 방송사고, '장군의 아들' 대흥행 기록, IMF 사태…돌고 돌아가는 8~90년대 한국 현대사, "타협하는 정권에서 순수한 영혼이 승리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고집을 꺾지 않는 한 남자는 '노무현입니다'란 타이틀롤과 만난다. 노무현이 치열한 삶으로 거쳐온 과거의 시대를 이처럼 함축적이고 리듬감 있게 그려낸 연출적 센스가 돋보인다.

이어 경선의 시발점이다. 정치인으로선 굴욕적인 내리 낙선을 거듭하면서도 정치 심장부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서 버티는 노무현은 별명도 많았다. 고집쟁이. 돈키호테. 바보 등등. 하지만 그 '바보 노무현'의 미련한 우직함은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었다. 처음엔 딱하거나 흥미로운 감정의 발단 일지 모르나, 그들을 차츰 변화시킨 건 노무현이 꿈꾸는 진정한 가치였다. 그는 네 번 낙선 이력을 지닌, 당의 비주류임에도 나라를 바꾸기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 나섰다. 우스울 정도로 무모하고 순수한 사람이지만, 그 용기에 승복한 시민들도 결국 기꺼이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요즘 말로 하면 '쇼미더머니'라 할 수 있다는 대한민국 최초의 경선판에서 노무현은 특유의 '불꽃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군중을 사로잡고, 통칭 '노사모' 시민들은 그의 용기와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 알리려 발 벗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은 자신을 야유하는 타 후보 지지자에 "말 끊지 마세요"라고 꾸짖기도 하고 이를 신기한듯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16번의 경선이 치러지는 동안, 수많은 고비의 순간들이 있었다. 비주류 노무현의 점층적 도약은 상대에겐 불쾌하면서도 위협적인 것이었고, 이를 찍어 누르기 위한 온갖 공격적 행위들은 기득권 집단의 씁쓸한 단면을 보인다. 하지만 강원도 경선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뿌려진 '삐라'를 충돌 일으키지 말자며 몰래 숨었다 떼어내고,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맞춤형 선거유세 방식을 공유하거나, 한 트럭분의 신문을 돌리는 등. 자발적으로 조직된 시민의 힘을 발휘하는 노사모의 긍정적 기운이 이를 상쇄한다. 그리고 "이런 아내는 제가 버려야 하느냐" "언론에 고개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대통령은 되지 않겠다"며 지긋지긋한 '좌빨'과 '날조' 프레임에 맞서는 노무현의 당돌하고 저돌적인 기개는 결국 세상을 뒤흔든다.

실제 영화 속 경선장의 열기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이 온몸에 차오르는 느낌이다. 흥겨운 광기와 애잔한 슬픔 등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적 효과는 여느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시도다. 노무현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형식 또한 새롭다. 거리감을 주며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관찰자적 입장을 취하는 기존 다큐 방식과 달리 정면을 향한 앵글은 얼굴을 마주하며 그들의 호흡과 눈빛, 그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담아낸다. 언제나 솔직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기피하지 않았던 노무현스러운 방식이다. 그렇기에 어떤 기교 없이도 아련하고 따뜻한 진심을 전한다.

그들의 이야기 속엔 몰랐던 노무현이 가득해 그 여운 또한 상당하다. 학교 분납금을 못내 뺨을 맞았던 작은 소년, 자신을 감시하는 중앙정보부 요원에 금지 서적인 5.18 책을 읽어보라 추천하는 배짱의 인권 변호사, 돈 없이 정치하는 법 어디 없느냐며 고뇌하던 정치인, 콤플렉스가 있었고 무시당하면 좀처럼 참질 않던 성깔 있던 대통령, 그러나 국민들 앞에선 한없이 자신을 낮췄던 사람.

실제 영상 속에서 노무현은 꼬마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어린아이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제 손으로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망가뜨리면서 즐거워했다. 카메라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불쑥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못 말리는 개구쟁이 면모도 보였다. 이처럼 격의 없고 한없이 짓궂은 듯 다정했다. 다른 한편 피할 수 없는 화살이 빗발치는 들판에 홀로 서 있음에도 결코 타협하지 않던 고결한 '사람' 노무현이 그들의 이야기에 녹아있다.

결국 영화는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사람 노무현의 다양한 단면을 통해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런 노무현과 시민들이 꿈꿨던 열망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었음을, 시대를 넘어 다시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영화다.

누군가는 노무현 대통령을 외롭고 가엾은 사람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임기 내내 온갖 지독한 역경과 풍파 속에서, 오직 국민을 바라보며 한길을 걸어왔던 그가 '저를 버리시라'는 말을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처와 허망함. 바스러진 삶의 조각들이 원통하고 씁쓸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인생을 걸어 지키고자 했던, '상식과 원칙의 시대'를 만들기 위한 헌신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제2, 제3의 바보 노무현이 생겨나 2017년 5월의 역사를 만들었다.

영화에 담긴 지난 2009년 봉하마을,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어도 줄을 이탈하지 않고 길게 늘어선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행렬. 그리고 '선봉에 서서'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특유의 걸음걸이로 걷다가 지나가는 시민들에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라고 살가운 인사를 건네는 그 사람의 아련한 뒷모습까지. 우리 모두는 노무현이었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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