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장벽없는' 평창, 당신가게 문턱은 몇cm입니까

전영지 2017. 5. 2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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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문턱 1cm가 제게는 에베레스트입니다." 경추장애인인 이정근 명주장애인 자립재활센터소장이 23일 평창 패럴림픽 개최도시 민간시설 접근성 현장 실사에서 전병극 문체부 체육협력관(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호텔방으로 진입하는 휠체어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사진 제공=문화체육관광부
"당신의 문턱 1cm가 제게는 에베레스트입니다." 경추장애인인 이정근 명주장애인 자립재활센터소장이 23일 평창 패럴림픽 개최도시 민간시설 접근성 현장 실사에서 전병극 문체부 체육협력관(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호텔방으로 진입하는 휠체어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사진 제공=문화체육관광부
"저 같은 장애인들에겐 휠체어가 들어갈 수만 있으면 '맛집'입니다."

23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한 식당 입구, 휠체어를 탄 채 5㎝ 넘는 문턱을 마주한 이정근 명주장애인 자립재활센터소장이 말했다. "TV에 연일 맛집 정보가 쏟아지지만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우리는 휠체어만 들어갈 수 있으면 맛집입니다." 정곡을 찌르는 직언이 폐부를 찔렀다.

23~24일 양일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평창패럴림픽 개최도시 민간시설(식당, 숙박, 관광) 접근성 현장 실사에 나섰다. 지난 1월, '평창 동계패럴림픽 무장애 관광도시 창출 관계기관 협약식'이 '접근성'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문체부,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평창조직위원회, 강원도, 강릉시, 평창군, 정선군, 한국관광공사 수장들이 한 목소리로 '장벽 없는' 평창,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패럴림픽을 결의했다.

'평창 성공'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제1순위다. 부서 수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뀐 과도기, 현장은 멈추지 않는다. 23일 실사에서 전병극 체육협력관(국장)이 직접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패럴림픽이 대한민국 평창에 남길 아름다운 유산, '평창 레거시(legacy)'를 염두에 뒀다. 스키선수 출신 김미정 대한장애인골볼협회 사무국장(시각장애), 김미랑 한국장애인연맹 강원DPI 회장(지체장애), 이정근 소장(지체장애) 등이 '접근성 점검단'으로 나섰다.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지닌 '사용자'들이 '매의 눈'으로 현장을 점검했다. '접근성 개선 사업' 시행을 맡은 새건축사협의회 박인수 부회장, 박훈 강원대 교수, 김혜미 강원대 교수 등 젊은 건축가들도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창, 강릉 지역의 행정 실무자, 취재진도 동행했다. 번드르르한 현장을 보여주는 '전시 행정'이 아니었다. 접근성 개선을 위해 치부를 직시했다. 잘된 곳, 잘못된 곳을 두루 방문했다.

경추장애인인 이정근 명주장애인 자립재활센터소장이 휠체어를 탄 채 도움을 받아 강원도 평창군의 한 식당에 간신히 들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문화체육관광부
경추장애인인 이정근 명주장애인 자립재활센터소장이 휠체어를 탄 채 도움을 받아 강원도 평창군의 한 식당에 간신히 들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문화체육관광부
▶"1cm 문턱도 우리에겐 에베레스트"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기준을 엄수해 지은 경기장 등 공공시설과는 달리 민간이 운영하는 식당, 숙박 시설은 접근성의 사각지대다. 평창군, 강릉시의 실사 현장 10곳 중 일부는 민망한 민낯을 드러냈다. 휠체어 이동을 위한 경사로가 없는 곳도 많았다. 오래된 건물엔 엘레베이터나 리프트 시설이 없었다. 30개 이상 객실을 보유한 경우 1개 이상의 객실은 장애인 전용으로 만들어야 함에도 전용 객실이 없는 모텔도 있었다. 장애인 전용 객실의 경우에도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배려는 부족했다. 입구부터 문턱에 가로막혔고, 휠체어 폭에 비해 출입문은 대단히 좁았다. 수시로 휠체어를 들어올려야 했다. 목욕탕, 화장실에 장애인 전용 안전바가 설치된 곳도 드물었다. 장애인 화장실을 아예 창고로 용도변경한 곳도 눈에 띄었다. 도움을 받지 않고는 화장실로 들어갈 수 없는 경우도 속출했다.

평창 패럴림픽 접근성 점검단이 강원도 평창군의 식당 화장실을 실사하고 있다
이정근 소장은 "비장애인, 흉추장애인이 씽씽 달리는 낮은 문턱도 우리같은 경추 장애인들에게는 에베레스트다. 어떤 분은 '1cm 정도면 상관없다고 하는데 그 1cm가 높디높은 장벽이다. 장벽을 낮춰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시각장애를 지닌 김미정 국장은 "경사로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아직 시각장애인에 대한 준비는 많이 부족한 것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출입문, 계단 시작과 끝에 유도블록이 없다. 엘레베이터에 점자 표시가 있는 곳도 드물다"고 지적했다. "점자나 유도블록은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관심과 배려의 문제"라고 했다. "저같은 시각장애인들은 유리문을 보지 못해 부딪쳐서 다치는 경우도 많다. 유리문에 평창패럴림픽 마스코트 스티커를 붙여주면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미랑 사무국장은 "장애인 유형이 다양해서 모든 걸 다 맞추려면 힘들다는 것을 안다. 꼭 돈을 많이 들여야 한다는 생각보다 세심한 곳까지 챙기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벽 없는 평창, 모두를 위한 위대한 유산

반면 현장에서 마주한 의식 있는 업주들의 모범 사례는 훈훈했다. 신건혁 건도리횟집 대표(32)는 가게를 설계하면서 자비로 경사로를 만들었다. 화장실로 통하는 계단도 목재로 막아 경사로를 설치했다. 휠체어 장애인인 지인을 불러 직접 시뮬레이션도 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통로부터 테이블까지 장벽은 없었다. 신 대표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사실 세입자라서 이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더 개선해나가겠다"고 했다. 비용이 드는 경사로, 장애인 화장실 공사, 입식 테이블 교체 등은 업주의 확고한 주관과 의지가 필수적이다. 강원도 봉평 미가연의 오숙희 대표 역시 정부가 '배리어 프리'를 선언하기 전에 일찌감치 경사로를 설치했다. 지난달엔 수백 만원의 비용을 들여 좌식 테이블을 장애인들을 위한 입식 테이블로 바꿨다. "우리집엔 장애인 동호회 분들이 자주 오신다. 오시는 손님 한분도 불편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표했다.

현장 실사를 정리하는 토론회, 전병극 체육협력관은 "시설을 점검하면서 내내 걱정이 앞섰다. 평창패럴림픽 시작 후 장애인 관중들이 느낄 불편함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예산이 많지도 않고, 티가 많이 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 이 점검은 장애인 체육발전, 인식 개선에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을 체험하면서 심각하게 문제를 인식했다. 중요한 과제를 안게된 현장 탐방이다. 많은 제안을 달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반드시 개선하겠다"며 분명한 의지를 드러냈다.

참석자들은 패럴림픽 접근성 개선 정책은 비단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깊이 공감했다. 내 아이의 유모차, 노부모의 휠체어, 은퇴 세대, 교통 약자 등 우리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 박인수 새건축사협의회 부회장의 코멘트는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시설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법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평창패럴림픽은 우리의 철학이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체부는 장애인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경사로, 자동문 등 접근성 확보를 위해 식당, 숙박시설 등 733개 후보지에 38억5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25명의 유수한 건축가들이 현장을 실측해, 오는 11월까지 경사로, 리프트 등 접근성 관련 시설을 디자인한다.

이동의 장벽, 마음의 장벽, 장애의 장벽이 없는, 평등하고 행복한 무장애도시는 2018년 평창이 대한민국에 남겨야할,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평창=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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