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그 이후] 한화의 치졸한 책임전가, 3류 막장 드라마

장강훈 2017. 5. 25.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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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박종훈(왼쪽) 단장과 김신연(오른쪽) 사장, 박정규 사업총괄본부장 등이 24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클럽 하우스를 찾은 김성근 전 감독과의 만남을 준비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한화가 김성근(75) 감독을 사실상 경질한 과정을 살펴보면 한 편의 3류 막장 드라마 같다. 재계 9위에 해당하는 ‘공룡’ 한화의 저열한 민낯이 낱낱이 공개돼 더 큰 상처가 됐다.

한화와 김 감독이 이별하는 과정은 매우 거칠었다. 미리 각본을 짜놓고 그 책임을 언론에 돌리는 행위까지 적나라게 포착돼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김 감독 영입을 주도했던 김승연 회장의 의중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전개된 책임을 스포츠서울의 단독보도 탓으로 돌렸다. 이 과정에 구단이 감독 인사권을 정상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상왕정치’의 전형을 보여줬다. 프로구단으로 볼 수 없는 구조다.

김 감독의 퇴진까지 시간대별로 뜯어보면 그룹과 구단의 불통, 구단 내부 세력의 정치싸움이 얼마나 저열했는지 알 수 있다. 김 감독이 일부 선수들의 특별타격훈련 금지령을 전해들은 뒤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며 구장을 떠난건 지난 21일 오후였다. 22일 하루의 시간이 있었지만 구단은 손을 놓은 대신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그룹에 보고했다. 김 감독도 그룹내 스포츠단 담당 임원에게 “못하겠다”는 취지로 하소연을 했고 23일 오후 3시 께 대전 시내 한 일식집에서 면담 일정을 잡았다. 그룹 임원이 직접 대전까지 내려가 김 감독을 만나는 것을 김 감독 측근에서는 ‘시즌 끝까지 지휘봉을 맡기려는 회장의 뜻’으로 풀이했다.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감독직 사의 표명이 수락된 이후 24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클럽 하우스를 찾아 선수단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여성팬에게 꽃송이를 선물받아 손에 쥐고 있다. 대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여기서 엇박자가 생겼다. 박 단장은 23일 오후 1시께 김광수 수석코치에게 “(김성근 감독 체제는)이제 끝났다. 대행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사실상 퇴진이라는 뉘앙스가 짙었다는 게 당시 함께 있던 코칭스태프의 전언이다. 김 수석코치와 몇몇 베테랑 코치들은 이미 “감독께서 나가시면 함께 나가겠다”고 의중을 모은 상태였다. 김 수석코치가 거부의사를 밝히자 이상군 투수코치에게 권한대행을 맡겼다. 박 단장은 오후 1시 20분께 코칭스태프 회의를 주재하고 이 사실을 통보했다. 그룹과 구단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결코 박 단장의 독단적인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룹 임원의 지시 없이 김 감독의 거취를 결정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김 감독과 면담을 잡은 상태에서 경질을 결정했고, 이를 어떤식으로 포장할지 고심했다는 의미다.

오후 2시 30분께 본지가 김 감독의 경질사실을 단독보도 했고 김 감독도 지인을 통해 사실을 접했다. 오후 3시께 김 감독과 면담에 나선 그룹 임원은 “오늘 하루만 대행체제로 가고 내일부터 다시 지휘봉을 맡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질이나 사의표명 등의 기사가 언론에 나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 “스포츠서울이 보도를 했기 때문에 감독도 책임이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미 현장에서는 “김 감독의 시대가 끝났다”며 대행체제로 전환한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감독과 이별의 책임을 떠넘길 상대가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구단 관계자는 오후 3시 30분께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감독 퇴진이 그룹 임원과 면담을 통해 뒤집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그룹 관계자는 “김 감독의 경질을 결정이 난 상태였다. 어떤식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할지 고민하던 중에 보도가 나와 당혹스러운 분위기와 편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는 분위기가 공존했다”고 귀띔했다.

한화 이글스 이상군 감독이 23일 대전 한화 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진행된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국민의례를 준비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대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공공연하게 ‘현장복귀’를 외치던 박 단장과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사활을 걸던 김 감독은 처음부터 공존할 수 없는 관계였다. 둘 다 그룹에 “나와 그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추태를 보였다. 그룹은 회장의 눈치를, 구단은 그룹의 눈치를 살피는 어정쩡한 상황이 결국 파국으로 귀결됐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남은 사람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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