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나 떨고 있니?'..세종 관가는 태풍전야

CBS노컷뉴스 박상용 기자 2017. 5. 2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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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인사에 인사폭 커질 것으로 전망, 승진 못하면 집으로 가야한다는 위기감
(사진=자료사진)
문재인 정부의 장·차관 인사를 앞두고 정부세종청사의 공직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특히, 새 정부의 조직개편과 관련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직사회는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정권은 유한하고 정부는 영원하다'는 말로 위안을 삼았지만, 이번에는 9년 보수정권 이후 새로운 진보 정권 출범으로 정부조직에 대 변화가 나타날 것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부처 간 희비 교차…국토·산업 '울상' vs 환경 '희색'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15일이 지났지만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뜬소문만 무성하지 구체적인 윤곽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행정자치부가 부처 간 업무조정 등 조직 개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른바 '청사 복도통신'이 난무하면서 해당 부처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장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손에 움켜쥐고 막강한 권한을 누렸으나 청와대에 정책실장 자리가 생긴데다 기존의 국민경제자문회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일방적인 독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 조직이 청와대 정책실과 경제자문회의 등 옥상옥 구조가 형성됐으나 앞으로 협의 과정에서 기재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조직이 그대로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만약에 과거 이명박 정부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다시 쪼개지면 지금의 기재부의 역할과 권한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자료사진)
국토교통부는 수십 년 동안 갖고 있던 물 관리 권한을 환경부에 넘겨줘야 한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인력과 조직은 물론 예산 1조8000억 원도 이관해야 할 판이다.

그동안 국토부는 1차관과 2차관 직제를 갖고 거대 공룡으로 군림했지만 이번에 조직이 대폭 축소될 경우 앞으로 인사 태풍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통상 업무가 외교부로 넘어가면서 조직과 인력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산하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부로 승격하면 일부 산업정책마저도 이관해야 한다.

거대 부처가 하루 아침에 산업과 에너지 정책만 다루는 중소 부처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흐르고 있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도 직원들의 표정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초.중.고등학교 교육정책 업무가 전국 시.도 교육청으로 대폭 이관되면 조직의 위상이 반토막 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교육부장관의 사회부총리 직위도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팽배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돼 있다 보니 하루하루 숨죽이면서 새로운 정부의 조직 개편 방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체부가 정부의 국정홍보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만큼 문재인 정부도 큰 수술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지만 어찌됐건 조직 축소와 인력 개편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환경부는 그동안 국토부 2중대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면서 힘없는 부처의 설움이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국토부의 물 관련 업무가 넘어오고, 미세먼지 주무 부처로서 에너지 정책까지 관여하게 되면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환경부 관계자는 "그동안 워낙 작은 부처였기 때문에 소관 업무가 늘어날 경우 어떻게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며 "하지만 조직과 인력, 예산이 늘어나 힘이 실리게 되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그동안 업무적으로 잘못된 평가를 받은 부처들은 걱정이 많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작은 개편을 얘기하지만 업무조정까지 포함하면 큰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정부 조직개편과 관련해 중소기업을 살리고 국민안전을 챙기겠다는데 야당도 발목을 잡을 수 없는 형국"이라며 "결국은 공직사회도 변화에 따라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자료사진)
◇ 문재인 표 인사…세종청사 공직사회 '떨어지면 죽는다' 촉각

통상 공직사회에서는 정권교체기에 인사 대상에 휘말리면 하소연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중간 중간 실시되는 인사에서 승진을 못하고 옷을 벗는 경우, 산하 공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실제로 이번에 정권이 교체되기 전인 지난해 연말에 해수부 1급 실장 자리에서 퇴직한 A씨는 산하 공기업 사장으로 말을 갈아탔다. 지난해 6월 중앙부처 차관으로 퇴직한 B씨도 공기업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정권 교체기에 공직을 떠날 경우에는 갈 곳이 마땅찮다. 새로운 정부가 대선 기간 동안 고생했던 참모와 캠프 관계자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과거 정부에서 일했던 고위 공직자를 챙겨 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로운 정부가 '관피아'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떠안으면서까지 퇴직공무원들에게 자리를 주기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따라서, 정권교체기에는 공직사회가 인사와 관련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동료를 밟고 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팽팽해진다.

국토부의 한 고위직 간부는 "젊었을 때는 퇴직 걱정이 없기 때문에 동료들 눈치 볼 필요가 없었지만, 퇴직할 나이가 되면 주변 동료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살피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긴다"며 "똑 같은 1급 실장을 하다가 누구는 차관으로 영전해 가고, 누구는 집으로 가야하는 처지를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세종청사 공직사회는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의 탕평인사가 오히려 공무원들의 인사 폭을 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의 경우 장·차관을 제외한 본부 1급 실장 5명 가운데 차관 2자리를 놓고 눈치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관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조만간 퇴직 수순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의 경우도 1급 3명 가운데 차관 승진 인사가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농식품부는 2급 국장과 3급 과장 고참 간부들의 인사 적체가 심하기 때문에 차관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후배들을 위해서 길을 터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관련 공약은 '인사추천실명제'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며 "전에는 아름아름 눈치 보고 줄서기 하면서 승진기회를 잡았지만, 이제는 능력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공무원들 사이에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 박상용 기자] saypar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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