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량 빌미로 노사 문제까지 관여..원청업체 첫 기소

김상범 기자 입력 2017. 5. 24. 22:03 수정 2017. 5. 2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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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현대차 ‘유성기업 노조 파괴 개입’ 법정에

유성기업범시민대책위 회원들이 2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의 공소장을 공개했다. 공소장에는 검찰이 원청회사인 현대자동차의 임직원을 노조파괴 혐의로 기소한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현대자동차와 임직원들에 대한 기소는 노조파괴 개입 혐의로 원청업체를 처벌할 길을 터줬다는 의미가 크다. 그동안 현대차는 납품업체인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작업의 한 축으로 지목돼 왔다. 증거를 확인하고도 공소시효 만료 직전까지 기소를 늦춘 검찰은 늑장 수사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 현대차의 노조파괴 직간접 개입

지난 19일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이 법원에 낸 공소장을 보면, 납품업체를 관리하는 현대차 구매본부 직원들은 유성기업 2노조 운영과 조합원 확대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2011년 7월 유성기업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자문에 따라 사측에 우호적인 2노조를 설립했다. 대립이 격화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1노조·유성지회)를 견제하려는 목적이었다.

공소장에 따르면 현대차는 그해 9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유성기업으로부터 2노조 운영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다.

구매본부 최모 실장은 2노조 가입 속도가 더뎌지자 2011년 9월 부하 직원에게 “신규노조 가입 인원이 최근 1주일간 1명도 없는데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9월20일까지 220명, 9월30일 250명, 10월10일 290명의 (가입 인원) 목표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1명도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강하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엔진부품개발팀 강모 차장은 이를 유성기업에 전달했고, 같은 팀 황모 팀장 등은 2011년 9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회의실에서 유성기업·창조컨설팅 관계자들과 함께 관련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해 10월 유성기업은 현대차에 “2012년 12월31일까지 유성노조(2노조) 조합원 수가 (총원의) 80% 이상을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사용자가 노조 조직과 운영에 지배·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검찰은 유성기업에 대해 지배적 지위를 갖고 있던 현대차 직원들도 부당노동행위의 공범이라고 간주했다. 현대차는 납품량 감축을 구실로 유성기업 노사관계에 관여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현대차는 2011년 유성지회 파업으로 부품 납품에 지장이 생기자 “결품 우려 없는 안정적 생산구조를 정착시키지 못할 경우 납품구조 2원화 방침에 따라 주문량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 공소시효 만료 사흘 전 늑장 기소

검찰은 유성기업 노조파괴의 ‘몸통’인 현대차의 개입 증거를 손에 쥐고도 4년 넘게 기소를 미뤄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소장에 적시된 주요 증거들은 모두 2012년 말에 검찰이 창조컨설팅과 유성기업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e메일과 회의 문건에 담긴 내용이다.

천안지청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유성기업 사건을 고의로 지연시킨다”는 지적을 받았고, 그해 12월 유성기업·현대차 관계자의 핵심 혐의 대부분을 불기소 처분했다. “안정적인 부품 공급을 위해 확인 차원에서 유성기업 자료를 받아본 것에 불과하다”는 현대차 측 주장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유성지회는 지난해 2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직원들과 유성기업·창조컨설팅 관계자에 대한 고소장을 다시 냈다. 검찰이 현대차 기소를 미루자 두 차례 재정 신청까지 했다. 천안지청이 현대차를 기소한 건 지난 19일로, 공소시효 만료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서다.

천안지청 관계자는 “새로 부임한 수사팀이 증거를 검토한 결과 기소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공소시효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유성지회 대리인인 김상은 법률사무소 새날 변호사는 “현대차 직원들의 변명이 종전과 다르지 않고 추가 증거가 없었던 점으로 볼 때, 2012년 말 기소할 수 있었던 사건을 4년 반 이상 방치하다가 비로소 기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민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지회장은 “이번 기소는 기쁜 일이지만, 진작 법과 원칙대로 수사를 했다면 유성기업은 일찍 정상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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