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5·18 당시 美에 '가짜정보'.."공산주의자 소행"(종합)

최문선 기자 2017. 5. 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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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 "미국, 계엄군 집단발포 묵인"
"한국 정부, 미국에 기밀문서 공개 요청해야"
5·18 당시 계엄군이 버스에 탄 시민들을 끌어내기 위해 올라타고 있으며, 한쪽에는 폭행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5·18기념재단 제공)/뉴스1 © News1

(광주=뉴스1) 최문선 기자 = 1980년 당시 신군부가 미국 측에 왜곡된 정보를 흘려 5·18 민주화운동을 '공산주의자 소행'으로 몰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계엄군의 집단발포 등 광주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면서도 묵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는 24일 오후 시청 브리핑룸에서 '팀 셔록 기자의 광주방문 연구결과 설명회'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팀 셔록은 5·18 당시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를 입수해 최초 공개했던 미국 언론인으로, 미국 정보공개법에 따라 생성된 2급 비밀문서 2000건을 입수해 왔다.

이중 3530페이지 분량의 59개 기밀문서를 지난 1월 광주시에 기증했으며, 지난달 다시 광주를 찾아 시, 5·18 단체 등과 함께 기증 문서에 대한 연구분석을 진행해 왔다.

분석을 마친 셔록은 이날 회견에서 "신군부가 5·18 당시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맞서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 참여를 '공산주의자들의 방식으로 강제동원이 이뤄졌다'고 왜곡했다"고 밝혔다.

그 증거로는 1980년 5월27일 작성된 '미국 국방부 정보보고서'를 들었다. 신군부 세력이 한미연합사 미국 쪽 군사정보통에 제공한 정보가 담겨 있는 문서다.

그중 '군중들이 쇠파이프, 몽둥이를 들고 각 집을 돌며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집을 불질러버리겠다고 위협하고, 폭도들이 초등학생들까지 동원하기 위해 강제로 차에 태워 길거리로 끌고 나왔다'는 대목을 제시했다.

셔록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증거가 없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며 왜곡된 정보임을 강조했다.

또 '광주에서 세무서와 관공서들을 파괴한 폭도들은 인질을 붙잡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몇 명의 도청 공무원들도 포함돼 있음'이라는 첩보는 실제와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의 5·18 기밀문서를 공개한 미국 저널리스트 팀 셔록(66)이 24일 오후 광주시청 브리핑실에서 5·18기밀문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2017.5.24/뉴스1 © News1 남성진 기자

신군부는 또 보고서를 통해 '폭도들이 전투경찰에게 무차별 사격,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시민들에게조차 쏘아댐, 군중을 향해 쏠 기관총을 설치함, 군중들 교도소 공격, 300명의 좌익수 수감돼 있음, 폭도들이 지하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었음'이라고 전달해 5·18을 마치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인 것처럼 몰아갔다고도 했다.

분석에 참여한 5·18 연구자는 "5월27일 도청이 진압된 뒤 폭도들 수백명이 무등산 기슭으로 도망가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도청 앞 광장에서 폭도들이 인민재판을 열어 사람들을 처형하고 있다는 등 신군부가 만들어 퍼뜨린 소문이 마치 광주시위가 공산주의자 또는 북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5·18 당시 구체적인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1980년 5월21일 미국 국방정보국이 작성한 '광주상황'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증거로 내놨다.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이뤄진 당일 작성된 이 문서는 시간대별 보고가 적혀 있어 미국이 당시 광주의 상황을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한다.

해당 문서 오후 6시30분 보고 내용으로는 '광주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음. 폭동이 나주와 다른 지역을 포함한 전남 전역으로 오늘 중 확산됐음. 양측 사상자는 숫자 미상의 사망자를 포함해 대략 최소 5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적혀 있다.

특히 '군인들은 만약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나 그들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면 발포할 수 있는 권한을 승인받았다'고 적혀 있다.

셔록은 "미국이 1980년 5월21일 도청 앞 집단발포 당일, 발포 명령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발포를 묵인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보고서에는 오후 4시 '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시각 광주 지역 전화가 두절됨', 오후 7시30분 '서로 다른 정보원들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반미 분위기가 점증하고 있다고 보고함' 등 시간대별 내용이 드러나 있다.

이에 대해 셔록은 "미국은 한국의 여러 정보원들을 통해 시간대별로 광주의 구체적인 모든 정보를 전달받고 파악하고 있었다"며 "CIA 정보의 경우 매일매일 수집돼 미국 대통령에게 브리핑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분석한 문서 대부분은 기밀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계엄군의) 실제 발포 시점이라든지 발포명령자 등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기밀해제 된 문서를 공개요청한다면 다른 내용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에 충분히 문서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moon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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