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1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인천공항 앞에 가로놓인 것들

원종진 기자 2017. 5. 2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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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후 첫 외부 일정에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공언한 대통령과 그 자리에서 ‘1만 비정규직 연내 정규직화’를 약속한 사장. 지난 12일 보도된 인천공항의 풍경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십수 년 동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가 단 하루 만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 같은 약속 이후, 물밑에서는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대통령과 사장의 약속이 지켜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고, 노사간 협의할 내용도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새 정부 노동 정책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이 사안의 배경과, 협상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이슈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 실타래처럼 얽힌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역사

IMF 사태로 인한 경제난 속에서 13.25%에 달하는 고금리 채권까지 끌어 건설된 인천공항은 개항 초부터 비용 절감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인천공항이 택한 해결책은 공항업무의 외주화였습니다. 인천공항은 부정적 전망을 깨고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비정규직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수요 증가로 인해 시설확장 비용이 계속 투입되는 상황 속에서 이명박 정부 이후 공공기관 평가의 주요 척도로 ‘비용 절감’이 제시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늘어난 인천공항 외주화 비율은 전체의 85%에 이르게 됐고, 지난 2013년에는 인천공항 내 비정규직 노조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고용 불안정’입니다. 인천공항 아웃소싱 업체의 계약 기간은 3년에 불과하고, 연장심사 통과 시 2년이 더 연장되기는 하지만 최대 5년까지만 계약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들은 업체가 바뀔 때마다 새로 계약서를 쓰고, 퇴직금을 모두 정산하는 등 사실상 계약직 신분입니다. 고용 불안정 문제는 공항 운영에서의 문제점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아웃소싱 협력사에서는 공항공사와의 관계에서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스템과 장비 운영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 데이터 공유를 꺼리는 관행이 생겨났습니다. 또 공항공사는 도급계약 관계의 제약으로 인해 현장에서 협력사 직원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할 수 없으므로 사건사고 발생 시 현황 파악과 대응이 한 박자씩 늦어지는 문제점도 나타났습니다.

이에 지난 2014년 인천공항공사는 ‘인천공항공사 인력운영구조 개선방안 연구용역’을 실시해 공항 핵심운영과 안전 분야에 대해서는 직고용 또는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사는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올해 대테러 상황통제, 폭발물처리 분야 79명을 직고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 비정규 노동자의 1% 조금 넘는 숫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으론 문제를 풀기 역부족이었습니다.

인천공항 모습

● 간담회 뒤 열흘…물밑에 흐르는 긴장감

이런 상황에서 단 하루만에 100% 정규직 전환 약속이 나왔으니, 지난 12일 대통령 간담회 현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전날 밤 대통령 방문 소식을 접한 노동자들은 ‘대통령이 오니까 뭔가 좋은 일이 있겠지’라는 생각은 했지만, 1만 명이 연내에 정규직이 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때문에 몇몇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복받치는 감정에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분위기 어떠냐’는 기자의 카톡에 ‘다들 난리 났어요. 근데 믿기질 않네요.’라는 답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믿기지 않는다’는 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은 그의 기쁜 심정을 대변하는 동시에, 이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간담회가 끝난 뒤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인천공항을 둘러싼 크고 작은 잡음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우선 사측이 정규직화 과정에서 노조를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14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일자리 창출 TF’를 발족했지만, 일부 언론이 ‘사측이 TF에 노조를 배제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부터 삐걱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겁니다. 또, 직접고용 작업이 진행 중인 폭발물 처리반 인력과 관련해서도 ‘사장 약속의 일환으로 폭발물 처리반 인력 14명부터 정규직 전환을 시작했는데, 고용 승계나 가산점 부여 없는 공개 채용 방식이라 약속에 못 미친다’는 한 매체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측이 TF에 노조를 ‘배제’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노조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가 “사측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다”면서도 “공사가 만든 TF에 노조가 들어가는 것은 실무적으로 맞지 않고, 노조는 별도의 TF를 만들어 사측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파장이 더 커지지는 않았습니다. 폭발물 처리반 인력과 관련해서도 인천공항공사 측이 곧바로 해명자료를 내 ‘보도된 폭발물 처리반 인력은 대통령 방문일인 12일 이전부터 직영화가 추진된 사안으로 사실 관계가 잘못됐으며, 고용 체계와 임금 관련 보도 내용도 팩트가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공식적인 노사 협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판이 깨지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만, 보도와 해명의 과정에서 '언론 플레이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노사정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이번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길에 많은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토요일 (20일)에는 이번 정규직 전환 약속의 대상자였던 협력업체 비정규직 근로자가 셔틀열차 점검 작업을 하다 감전 당하는 사고도 일어났습니다. 협력업체 측은 “안전 수칙에 따라 전원이 차단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했지만 불행히 사고가 일어났다”는 입장이지만, 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원-하청의 구조적 문제가 원인인 산업 재해”이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르면 이번 금요일 (26일) 인천공항공사 사장과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간부 6명이 첫 만남을 가질 것으로 보입니다. 실타래처럼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한 첫 자리이니만큼, 노사 양측이 치밀한 준비를 하고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사 협의 과정에서 제기될 이슈들에 대해 공항공사 측은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사례와 국토부, 기재부 등 인천공항과 관련된 정부 관계자들의 입장, 노사 관계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 봤을 때 협의 과정에서 제기될 이슈에 대해 몇 가지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합니다.

● ‘정규직 전환’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1만 명 전원 정규직 전환’이라는 약속의 언어는 단순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규직화’라는 개념에서부터 꼬여있습니다. 과거 기재부가 인천공항공사와 협의했던 내용이나 서울시, 서울메트로 등의 사례를 볼 때 공항공사는 협상 테이블에 ▲기존 공사 정규직과 같은 직제로 직접 고용하는 방식 ▲별도 직제를 만들어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방식 ▲자회사를 설립해 고용하는 방식 등을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사측 입장에서는 모든 비정규직을 공사 직원으로 직접 채용하게 되면 한 조직 안에 다양한 직무군이 갑자기 신설되고, 이에 따라 임금과 승진 체계도 복잡해지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방식을 병행하는 것을 선호할 겁니다. 특히 경쟁 공항인 일본과 유럽의 공항들이 여러 개의 출자회사를 세워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어, 사측은 ‘자회사를 설립해 고용하는 방식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조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자회사를 설립해 고용하는 방식은 또 다른 형태의 하청이며, 업무 효율과 안전성도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노측은 이처럼 또 다른 형태의 하청 방식으로 정규직화가 일어난다면 지난 토요일 감전 사고와 같은 산업 재해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노조는 또 비정규직원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되면 임금과 처우의 질이 기존보다 심각하게 낮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노조에서는 사측이 내세울 것으로 예상되는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8일 학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제대로 된 정규직화 TF'를 발족했습니다.

● 근로조건 하락 없는 정규직 전환 vs 고용 안정에 따른 근로조건 조정은 불가피

인천공항공사는 매년 정부의 경영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때문에 새 정부에서 ‘정규직 전환’이 평가 척도가 된다고 해도, 경영 성과 측정의 기본인 '비용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을 겁니다. 대통령이 지난 간담회에서 구두로 비정규직 비율을 평가 기준에 넣겠다고 했고, 기재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침은 제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사측은 노사 협의 과정에서 근로조건 조정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조의 기본적인 입장은 급격한 근로조건 조정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질 낮은 정규직의 확대’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 12일 문 대통령 간담회의 취지는 공항공사에서 모범사례를 만들어 민간부분까지 퍼지도록 하자는 것이었다”며 “당사자(노동자)가 수긍하지 못하는 모델이 사회적으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또 “사측이 여전히 비용 절감 논리에 매몰돼 행동하면 과거 노사 협상의 문제점을 되풀이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지난 12일 간담회에서 “(정규직 전환으로) 노동자들도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임금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노사정이 함께 고통을 분담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노동자들께서도 한꺼번에 다 이렇게 받아내려고 하진 마십시오.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에 대해서도 간담회 이후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대통령의 심중에 깔린 정규직화의 원칙’이라는 해석과 ‘원론적 발언이고, 간담회의 핵심은 노동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좋은 정규직화’라는 해석이 갈리고 있는 겁니다. 근로조건 문제는 노사 협의 과정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될 수 있는 만큼, 중재자를 자처한 정부가 조금 더 신속하고 명확히 원칙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 노동조합의 참여를 둘러싼 쟁점

노조가 정규직화 작업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지도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14일 ‘좋은 일자리 창출 TF’를 발족하면서 “노조와 적극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협의의 방식이 어떤 것이 될 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인천공항공사 TF에 노동자 대표가 ‘배제’됐다는 논란이 노사정 외부에서 일기도 했습니다.노조 측이 ‘실무적으로 사측 TF에 들어가는 건 어렵고, 별도 TF를 만들어 협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공항공사 측은 이런 논란이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노사정 외부에서 제기되는 논란을 차단하고 노조와의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사측이 “적극 협의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넘어 협의 방식과 일정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요일에 있을 첫 만남은 그런 의미에서 공항공사 측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 엇갈리는 입장들 속, 노사가 함께 바라는 것 

엇갈리는 입장들 속에서도 노사가 모두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입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우리 쪽 (노조 측) TF에서 안을 만들면 공사 측 TF와 협의를 하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정부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항공사입장에서도 정부가 경영평가에서 정규직 비율과 비용 문제 등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평가/감독 기관으로서 이번 정규직화에서 가장 중시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명확히 해주면 협상 과정에서 혼선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입장의 양측으로부터 기대를 받는 만큼, 정부의 역할이 쉽지 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환호 속에 끝난 간담회 이후 대통령 발언을 두고 다른 해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가 원칙과 우선 순위를 정하고 양측에 설득하는 작업은 꼭 필요해 보입니다.

인천공항 구성원들은 ‘비정규직 1만 명 연내 정규직 전환’이라는 낯선 길의 초입에 서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진통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인천공항은 이 산고를 이겨내고 ‘1만 명 전원 정규직화’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노사는 물론이고, 산파 역할을 자처한 새 정부의 책임 또한 무겁습니다.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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