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의 워싱턴Live>미 FBI의 메모 'FD-302'가 의미하는 것

워싱턴/강인선 특파원 2017. 5. 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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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코는 지난해 10월 기사에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을 '매우 정치적인 제임스 코미'라는 제목으로 다뤘다. /폴리티코

며칠 전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2004년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의 병실에서 백악관의 영장없는 도청 허용 연장을 막아냈다는 에피소드를 썼다. 그가 어떻게 워싱턴의 전설이 됐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은 2007년 3월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코미가 증언한 내용을 기초로 쓴 것이다. 코미의 자화자찬 영웅담인 셈이다. 코미의 증언에 대해선 당시에도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몇 차례의 취재와 조사 등을 통해서 코미의 설명이 대체로 맞다는 게 그간의 평가였다. 그럼에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코미를 설명하는 건 무리다. 그래서 다른 시각에서 코미를 바라봤다.

코미의 메모: 그는 왜 트럼프 대화를 낱낱이 기록했나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를 해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뉴욕타임스에서 '코미 메모'를 보도했다. 코미가 기록해둔 바에 따르면,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를 만나 마이크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러시아 내통설 조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사실이라면 사법방해죄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코미 전 FBI 국장은 트럼프와의 대화 내용을 낱낱이 기록했다. /CNBC

여기서 아주 기초적인 의문이 들었다. 코미는 왜 트럼프와의 대화를 기록해두었을까. 그리고 그 기록은 어떻게 이렇게 적시에 언론에 보도될 수 있었을까.

코미의 메모는 특이한 게 아니었다. 미국 정보기관 사람들은 중요 면담 후 반드시 기록을 남긴다. FBI는 면담을 녹음하지 않는다. 대신 만난 직후 대화 내용을 정확하게 복기해 기록해 메모를 남긴다. 여기서 메모는 주요 사항 정리해놓은 개인적인 기록이 아니라 좀 더 공적인 형태의 서면 기록을 말한다.

코미 역시 트럼프를 만난 직후 자동차에서 급하게 기록을 남겼다. 대화가 있은 후 거의 동시에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메모는 법정에서 증언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FBI에서는 이런 기록 양식을 FD-302라고 한다. 하지만 코미가 쓴 것은 이 양식과는 조금 다른,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 개인적인 느낌까지도 적은 것이었다.

정보기관들에게 메모와 기록은 생명과도 같다. 아담 골드먼 뉴욕타임스 기자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CIA (중앙정보국)에선 "써놓지 않았다면, 그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If you didn't write it down, it doesn't exist)"라고 하고, FBI에선 "모든 것은 기록해두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Everything exists because everything is written down.)"라고 한다.>

코미는 트럼프가 걸려들 때를 기다렸나

정보기관을 아는 사람들은 뉴욕타임스가 코미 메모를 보도하기 전에 이미 그런 폭로가 있을 것을 예상했다고 한다. 매튜 밀러 전 법무부 대변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뉴욕타임스가 코미 메모를 보도하기 닷새 전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법무부에서 코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가 뭔가 부적절한 일이 일어났다고 판단할 때면 서류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대하시라..." 고 썼다.

/트위터 캡쳐

워싱턴포스트가 밀러를 인터뷰했다. 그 중 흥미로운 내용을 요약하면...

FBI 사람들은, 누군가와의 대화 내용이 다른 사람이 나중에 부적절하다고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을 때 기록을 남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전화를 걸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청을 했다고 하자. 그러면 대개 "그것은 부적절하다. 그렇게 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밑에 사람에게 통화 내용에 대해 이메일을 보내둔다. 훗날 누군가 그 당시 대화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경우에 대비해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는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냥 기록을 남겨둘 수도 있고 법무부 내의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든지 이메일을 쓸 수도 있다.

코미 메모에 대한 뉴욕타임스 보도가 "코미 메모를 본 몇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코미는 이미 법무부와 FBI 내부에서 당시 상황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다.

밀러는 의문을 제기한다. 법무부 소속이 아닌 사람이, 어떤 사건에 대해 FBI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건 부적절한 일이다. 더구나 플린의 러시아 내통설 조사는 트럼프 캠프가 관련된 사안이니 더욱 그렇다. 그걸 가장 잘 아는 FBI 국장은 대통령이 그 말을 꺼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부적절하니 그런 얘기는 꺼내지 말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코미로부터 세 번 확인받았다고 했다. 어쩌면 코미는 트럼프가 계속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둔 게 아닐까. 탄핵사유가 될 수도 있는 '사법방해죄'가 될 것을 알면서도? FBI가 어떤 조직을 조사한다면 그게 마피아든 뭐든 당연히 최고위직 인물을 조사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지금도 스포트라이트가 코미를 비추고 있다

밀러는 코미가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람(showboat)'이라고 한 트럼프 주장에 동의한다. 코미는 지난해 7월 클린턴의 이메일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대선 직전에는 재수사를 발표했다. 대선판을 뒤흔든 이 중요한 발표를 통해 코미는 뉴스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7월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코미를 보고 있으면 '뭐 저렇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확하고 명쾌해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코미에게 집중됐다.

/FBI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 병실로 뛰어가 백악관의 영장없는 도청 허가 연장을 막아낸 무용담을 증언한 2007년의 의회 청문회에서도 코미는 멋진 주인공이었다. 미국 청문회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의 하나로 꼽히는 장면이다.

2005년 부시 행정부가 고문 수사를 사실상 허용하기로 했다. 코미는 부장관으로서 동의했지만 곤잘레스 법무장관을 만나 정부가 고문을 허용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이고 국제적인 신뢰를 허무는 일인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비서실장과 만나 다시 한번 얘기해 기록을 남겼다.

2009년 이 사건과 관련해 법무부에 대한 조사가 있었을 때, 놀랍게도, 요술처럼, 코미가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보냈던 이메일이 언론에 등장했다. 코미가 그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 이메일을 가지고 있다가 4년 후 문제가 됐을 때 뉴욕타임스에 준 것일까. 코미는 그때도 당시 일어난 일이 훗날 가져올 파장을 예상해 메모를 남겨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공개되도록 한 것이다.

밀러는 이 인터뷰에서 한번 더 정확한 예측을 내놓았다. 그는 코미가 "불가피하게 증언을 해야 한다면 의회 청문회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길 것이다"라고 했다. 며칠 후 코미는 정말 증언을 하기로 했다.

어쩌면 코미는 트럼프 못지 않게 스포트라이트를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와는 비교가 안되게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사람인 것 같다. 트럼프는 기존의 정치인들을 누르고 대통령이 될 수 있을만큼 혁신적인 데가 있지만 선거는 선거고 통치는 통치다. 코미는 어떻게 워싱턴을 움직이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다. 곧 상원 청문회가 열리고 코미가 다시 증언대에 설 것이다. 이전보다 더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참고로 엄청나게 주목받았던 2007년 청문회에서 코미의 증언을 입증해준 것은 당시 FBI 국장이었고 지금은 특검을 맡은 로버트 뮬러가 기록해둔 메모였다. 그때도 역시 FBI에 남겨둔 메모. 기록이 이 도시를 지배한다. 메모가 폭탄같다.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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