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맥주의 안방시장 사수작전

2017. 5. 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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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름 성수기 앞두고 수입맥주의 성장세 막기 위해 신제품 속속 선보여

수입맥주가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국산맥주 판매량을 앞지른 가운데,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국내 맥주업계가 잇따라 신제품을 내놓으며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값싼 수입맥주의 맹공과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등의 영향으로 침체에 빠진 국내 맥주업계가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4월 말 출시된 신제품 ‘필라이트’가 20일 만에 6만 상자(1상자=355㎖ 캔 24개 분량)를 팔아치우며 초기 물량 완판을 기록했다. 필라이트는 국내 최초로 출시된 ‘발포주(發泡酒)’다. 주원료인 맥아나 보리의 비율이 3분의 2가 안 되는 맥주로, 맥아 함유량이 10%가 넘어야 맥주로 인정하는 국내 주세법상 ‘기타주류’로 분류됐다. 엄밀하게는 맥주는 아닌 ‘유사맥주’인 셈이다. 대신 100% 아로마호프로 풍미를 살렸다.

서울 서초구의 한 맥주 판매전문점에 수입 병맥주들이 진열돼 있다. / 정지윤 기자

주세법 피해 가격 경쟁력 갖춘 필라이트

하이트진로는 급증하는 가정용 수요를 잡기 위해 가성비를 앞세운 필라이트를 대형마트와 편의점에만 납품하고 있다. 최근 식품가격이 줄줄이 인상되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의 가성비 소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주세법상 맥주는 출고가의 72%로 세율이 매겨지지만, 기타주류는 절반도 되지 않는 30%의 세율이 적용된다. 때문에 필라이트는 기존 동일 용량의 맥주보다 40% 이상 저렴한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성장세가 무서운 수입맥주도 겨냥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대중화된 발포주로 수입맥주가 ‘점령’하고 있는 혼술·홈술족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필라이트의 판매속도는 하이트진로가 매년 한정판으로 출시해 인기를 얻고 있는 ‘맥스 스페셜호프’의 판매량을 훨씬 뛰어넘는다. 맥스 스페셜호프의 월평균 판매량은 2만 상자 남짓으로 20일 만에 6만 상자가 완판된 필라이트의 판매속도가 3배 이상 빠른 셈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출시 직후인 5월 첫 주 황금연휴 기간 주요 대형마트에서 열린 시음회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추가물량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롯데주류 역시 3년 만에 야심작 ‘피츠 슈퍼클리어(이하 피츠)’를 이달 말 출시한다. 피츠는 롯데주류가 2014년 내놓은 클라우드와 같이 섭씨 10도 저온에서 발효하는 라거 계열 맥주다. 하지만 클라우드보다 맥아 함량이 20%, 알코올 도수는 0.5% 낮아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클라우드로 프리미엄 맥주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롯데주류는 한국인 입맛에 가장 익숙한 ‘라이트 라거’ 맥주시장에 본격 진입함으로써 새로운 성공신화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라이트 라거 맥주는 국내 맥주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맥주로, 전체 시장 중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가 신제품을 내놓고 격돌하는 한편,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오비맥주는 제품 다양화로 이에 맞선다. 최근 2년 동안 프리미어 OB 바이젠, 믹스테일, 호가든 유자, 호가든 체리 등 6종의 신제품을 선보이며 고객잡기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메가 브랜드인 카스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만큼 자사 수입맥주를 확대해 다양성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말부터는 오비맥주 모회사 ‘AB인베브’가 별도법인 ‘ZX벤처스’를 세워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미국 시카고 수제맥주 전문 펍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를 운영하는 등 수제맥주에도 발을 들였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한동안 수입맥주 공세에 밀려 안방 자리를 내준 국산맥주들이 신제품 출시와 제품 다양화로 고객잡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특히 올 여름은 이른 더위가 시작된 데다 지난해 못지않은 무더위가 예고돼 판촉활동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주도해온 국내 맥주시장은 최근 수입맥주와 수제맥주, 국산 지역맥주들이 백가쟁명하며 이른바 춘추전국시대다. 대형마트에선 수입맥주의 비중이 전체 맥주 매출 중 절반을 넘어섰고,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수제맥주는 대중화 바람을 타고 영역을 확대해가는 중이다.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수입맥주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반입된 수입맥주량은 총 22만556t으로 2015년 17만t에 비해 30% 가까이 급증했다. 맥주 수입액도 2016년 기준 1억8158만 달러로 전년 대비 31.3%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4년 이후 2년 만에 66%가 늘어났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수입맥주 불모지였던 국내 맥주시장에서 다양한 맛과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수입맥주가 거센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맥주를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가 커진 데다 혼술과 홈술 트렌드가 확산되며 수입맥주의 선전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식당가와 호프집을 제외한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가정채널에서는 올 들어 수입맥주가 국산맥주 매출을 추월하며 안방을 차지한 상태다.

수입, 수제, 지역맥주 등 ‘춘추전국시대’

이마트는 올 3월 수입맥주 매출비중이 51.7%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국산맥주를 넘어섰다. 2014년 33.2%로 국산맥주의 절반 수준이던 수입맥주가 급성장하며 빠르게 전세를 역전시킨 것이다. 롯데마트는 역시 수입맥주 비중이 4월 말 기준 48.6%로 절반을 코앞에 두고 있다. 홈플러스는 500㎖ 기준 병맥주 판매순위에서 국내 중소 맥주제조사인 세븐브로이의 강서맥주가 국산 대기업 맥주를 제치고 2위에 오르는 이변이 발생하기도 했다. 홈플러스는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해 오는 6월 다양한 수입맥주를 할인판매하는 ‘세계 맥주 페스티벌’을 역대 최대 규모로 연다.

편의점에서는 수입맥주 비중이 크게는 60%에 육박하며 수입맥주 매출이 국산맥주를 멀찍이 따돌린 상태다. ‘4캔 1만원’ 묶음 판매로 대표되는 수입맥주의 공격적 마케팅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1인 가구 증가와 혼술 트렌드의 확산, 소비자의 다양화에 따른 맥주 선호도를 볼 때 수입맥주 소비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수입맥주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본격적인 바캉스철이 다가오며 국내 맥주업체들도 판촉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라 올 여름 국내 맥주시장이 더욱 요동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정연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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